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92)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전북이 아닌 서울 효창공원 입니다.
위치는 서울 용산구 효창원로 177-18에 있습니다.
서울 효창공원(孝昌公園)은 사적 제330호로 지정된 시립 공원입니다.
효창공원은 원래 5살 어린 나이에 죽은 정조의 첫째 아들 문효세자와 몇달 후 죽은 그의 어머니 의빈 성씨의 무덤으로 효창원(孝昌園)이었으나,
두 무덤은 경기도 서삼릉으로 강제 이장 당하고, 현재는 백범 김구 선생의 묘소를 비롯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이었던
이동녕, 군사부장 조성환, 비서부장 차이석의 묘소와, 윤봉길·이봉창·백정기의 묘소 등 임시정부 요인들의 묘지가 있습니다.
효창공원은 원래는 지금의 공원 형태가 아닌 송림(松林)이 우거지고 인적도 드물었던 곳이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조선왕실의 묘역으로, 정조의 맏아들로 태어나 왕세자로 책봉받았으나 일찍이 요절한 문효세자의 무덤이 있어 당시에는 '효창원' (孝昌園)이라 불렀습니다.
같은 묘역에는 정조의 후궁이자 문효세자의 생모인 의빈 성씨의 묘, 순조의 후궁인 숙의 박씨의 묘, 숙의 박씨의 소생인 영온옹주의 묘 등이 있었습니다.
1894년 청일전쟁 당시 일본군 300여명이 효창원 앞 송림 내의 선혜청 (宣惠廳)의 창고였던 만리창이 있던 곳에 야영을 하며 숲이 파헤쳐지기도 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일제에 의해 '구(舊)용산고지' 라 불리며 일본군이 숙영 목적과 독립군 토벌 및 소탕 작전 등을 펼쳤던 비밀작전지로도 사용되었으며,
문효세자의 묘 등을 경기도 고양의 서삼릉으로 이전하면서 1940년 조선총독부 고시 제208호에 의해 '효창공원'이 되었습니다.
1956년 이승만 정부에서 독립운동가들의 묘를 이장하고 효창운동장을 건립하겠다는 발표를 하자 6월 9일 대한민국 국회에서 김두한 의원은 "선열에 대해서는 물질보다
추모의 정신으로 보답해야 만큼 우선 정부는 분묘에 대한 모든 절차를 결정한 후에 운동장 설비공사에 착수했어야 할 것이라." 말하고 "효창공원의 선열 묘지는 성묘이다.
이 성묘를 함부로 파서 헐어 트리는 것은 생명을 조국광복에 바친 선열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고 피력하였습니다.
공사중지건의안은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되었지만 효창운동장의 공사는 강행되었고, 1960년에는 운동장이 준공되었습니다.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 역시 골프장을 만들려는 공사를 시도하다 저지당하고,
1969년에는 효창공원에 반공투사 위령탑, 1972년에는 김구의 묘 옆에 노인회서울시연합회와 대한노인회중앙회 시설을 세웠습니다.
효창공원은 공원면적이 0.317㎢에 달했으나 효창운동장·도로·숙명여자대학교의 부지로 잠식됨에 따라 현재는 0.142㎢로 축소되었습니다.
2018년 8월 16일 국가보훈처는 2019년 3.1 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국가가 관리하는 독립운동기념물로 꼭 한번은 답사해야 할 유적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