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성 36

인권누리 웹진 제192호 회원의 붓

정관성(원광대)점심시간에 닭장에 갑니다.닭장에 가서 알을 꺼내고, 닭 모이를 주고 옵니다.집에 알을 갖다 놓고 저도 점심을 간단하게 먹습니다.오늘은 두 알, 어제도 두 알, 그제는 다섯 알 암탉은 마음대로 낳아주고 저는 ‘이게 어디냐?’라며 고맙게 주워 옵니다.참으로 알찬 한 해가 아닐 수 없습니다.해가 점점 짧아지면서 11월부터는 도저히 퇴근 후 갈 수 없었습니다.어두워진 후 방문하면, 닭들이 모두 홰에 올라가 있다가 놀라고 흥분합니다.모이를 주고, 구멍 난 곳을 살펴야 하는 임무 수행에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어쩔 수 없이 점심시간에 닭장을 찾게 되었습니다.점심을 같이 먹던 직원들이 있습니다.해가 길 때엔 점심을 인근 식당이나 공공기관 구내식당에서 먹고 닭장엔 퇴근하고 갔으니, 점심시간은 대체로 여..

인권누리 웹진 제189호 회원의 붓

햅쌀밥정관성(원광대)지난 주말에 보니, 11월 10일이 되어서도 들판에 추수를 하지 않은 논이 있었습니다.나락은 황금색을 넘어 황갈색으로 변하는 중이었습니다.무슨 사연이 있는지? 만생종 중에서도 저리 늦게 추수하는 품종이 있는지 궁금했습니다.쌀이 귀하지 않은 시절인지도 모르겠습니다.집에서 밥을 거의 먹지 않아 집에 쌀이 떨어졌는지 모르고 있었다는 사람도 있더군요.요즘 집에서 밥 먹는 일이 즐겁습니다.햅쌀로 지은 밥은 윤기가 흐르고, 씹는 촉감도 탱탱하여 밥 먹는 즐거움을 느끼게 합니다.평소 근처 공공기관 식당에 들러 한 끼를 때우곤 했는데, 가을 들어서 집밥을 먹습니다.키우는 닭 모이를 줘야 하는데, 퇴근하고 가면 너무 어두워 잘 보이지 않습니다.닭장에 짐승이 뚫어 놓은 구멍이 있는지 봐야 하고, 모이에..

인권누리 웹진 제184호 회원의 붓

균형에 대하여정관성2023년 10월 7일. 이날은 팔레스타인 무장 정치세력인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를 공격하여 1,200여 명이 죽고 250명을 납치한 날입니다.하마스의 기습공격과 인질극으로 시작한 전쟁이지만, 결국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지상군을 투입함으로써 팔레스타인측 사망자가 4만1870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하마스 대원을 색출하여 제거하겠다는 전쟁에서 많은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했고, 사망자의 30% 이상이 어린이라고 합니다.게다가 가자지구의 6~23개월 영유아와 여성 96%는 일일 필수영양분 최소치를 채우지 못하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이스라엘은 최근 이란, 레바논, 예멘 반군 등에 대한 공격 또는 공격 계획을 발표하고 있습니다.미국은 이스라엘에게 휴전을 권하면서도 이스라엘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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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가 쌓인 길정관성(원광대 강사)가을비가 내립니다. 이 비가 내리고 나면 열대야가 끝나고, 폭염주의보도 더 이상 없을 거라고 합니다.“이번 여름 정말 더워 죽겠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농담처럼 “인도에선 50도가 넘을 때도 있었다던데?”라며 그래도 더 나쁜 상황을 생각하며 위안을 삼자 했습니다.아닌 게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번 여름처럼 더운 때가 없었는데, 이번 여름이 앞으로 올 여름 중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 수도 있다.”는 더 현실적이며 우울한 말도 떠돕니다. 앞날이 캄캄해집니다.8월 말. 선배 한 명이 하늘나라로 갔습니다.원래 먼지였던 생명들이 먼지로 가는 것은 시간의 차이일 뿐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인간의 시간으로 보면 만 55세의 죽음은 안타까울 뿐이었습니다.올 1월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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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는 길목정관성(원광대 강사)입추가 지나고 한참. 8월도 하순으로 접어드는 시점에 열대야가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습니다.예년 같았으면, 낮에는 햇볕이 따가워도 밤이 되면 풀벌레 소리 들리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 가을 냄새를 느끼던 때입니다.높은 습도와 열대야는 냉방기 소비를 늘려, 깊은 밤 에어컨을 크고 창문을 열고 자려면 사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실외기의 열기가 열린 창문으로 몰려오는 느낌입니다.용기를 내어 창문을 열고 선풍기에 의존해 자고 나면 낮에도 멍한 것이 제대로 잔 기분이 안 듭니다.몇몇의 일상이 아니고, 도시생활인 다수의 고통이 되어버린 지긋지긋한 고온과 열대야 풍경입니다.열흘 쯤 전에 참깨를 베었고, 이번 주말엔 무와 가을 채소 씨앗을 심을 예정입니다.벌써 파란 들판에 벼는 모두 이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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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관리정관성(원광대 강사)장마가 가고 작열하는 태양 아래 작물이 자라는 시절입니다.인간의 관점에서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시절이지만, 작물의 관점에선 한껏 양분을 빨아들이고 햇빛을 최대한 많이 받아들여야 하는 시기입니다.오래전부터 농부들은 날이 더워도 버티기 힘들어도 곡식이 될 작물들이 자라는 걸 보며 기분 좋게 버틸 수 있었습니다.태풍과 장마보다 쨍쨍한 더위가 농사일로 보면 반가운 날씨입니다.이맘때가 되면 논농사를 짓는 농부들은 물관리에 신경을 씁니다.조금 있으면 나락 목(이삭)이 올라오는 시기입니다.이삭거름을 주고, 물을 충분히 대줘서 최고의 영양을 공급하는 상태를 만들어줍니다.모내기 하고, 좀 지나서 벼 포기가 나뉘는 시기에는 물을 좀 빼주다가 이맘때가 되면 다시 물을 댑니다.농사짓는 어르신들은 반드..

인권누리 웹진 제171호 회원의 붓

겸손해질 결심정관성(원광대 강사)겸손해질 결심이틀 전 밤새 굉장한 폭우가 쏟아졌습니다.군산 어청도에는 시간당 146mm의 비가 내렸다고 합니다.어림잡아 한 시간에 15cm 정도의 비가 내린 것이니, 이는 거의 양수기로 논에 물을 대는 것보다 많은 비가 내린 것입니다. 폭우가 내리기 전날 직원이 제게 물었습니다. “팀장님, 내일 오전 11시 회의 제 시간에 오실 수 있을까요?” 통상적인 일정 체크였고,“지진이 일어나지 않으면 맞춰서 가지 않겠어요?”라며 농담처럼 대답했습니다.얼마 전 용산역에서 회의를 하려고 가는 중 부안에서 지진이 일어나 KTX가 서행하면서 회의에 30분 늦었던 일을 비유했던 것입니다.출장 당일 전북혁신도시에서 버스로 익산역까지 이동해야 하는데, 직행 버스가 오지 않았습니다.버스가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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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꾹뻐꾹정관성(원광대 강사)야산 근처에서 뻐꾸기 소리가 자주 들립니다.시골에서 자랐던 터라 뻐꾸기 소리가 들리면 아련히 옛 추억에 젖곤 합니다.줄지어 모내기 한 벼, 하얀 꽃을 피우는 고추, 밭이랑을 덮어가는 고구마, 간식거리로도 좋은 오이 등이 뻐꾸기 소리를 듣고 자라는 때입니다.우리 조상들은 보릿고개로 고생하던 시절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연명하다가 뻐꾸기 소리를 들으며 시름을 달랬다고 합니다.“곧 감자를 캐서 아이들 먹여야겠구나.” “보리타작을 하면 가족들이 더 굶지 않겠구나.” 이런저런 기대로 어려운 시기를 간신히 이겨냈다고 합니다.청명하고 단순한 리듬도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뻐꾸기 소리를 흉내 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죠.뻐꾸기에 대한 좋은 인상이 바뀌는 건 한순간이었습니다.TV다큐멘터리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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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 자정관성(원광대 강사)날은 습하고 더웠습니다.삶은 감자를 먹는데, 갑자기 TV에서 긴급 발표한 게 있다고 했습니다.TV 화면에 가득 찰 정도로 큰 얼굴의 노태우 후보(당시 민정당 후보)가 “김대중 사면”과 “직선제 개헌”을 발표했습니다.작은 아버지는 뉴스를 보시면서 “다음엔 저 놈이 대통령이다.”라고 했는데,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전두환과 노태우가 국민들의 여론에 밀려 직선제를 할 건데, 노태우가 대통령이 될 거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며칠 전 이른 감자를 캤습니다.기후변화 탓인지 뭐가 부족했는지 썩은 감자도 더러 나왔습니다.너무 늦은 수확이었을지도 모릅니다.감자꽃이 피고 좀 지나면 하지에 즈음해서 캐 먹는다고 하여 ‘하지 감자’라 부르던 것도 옛 추억이 되어 버리나 봅니다.고등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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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깨를 심으며정관성지난 주말 참깨를 심었습니다.참깨를 심고 밤에 비가 내려 기분이 아주 좋았습니다.참깨가 잘 나면 다시 솎아 주고, 북주고, 풀 관리 해주며 기다리면 됩니다.여물면 베어서 털면 그만이죠. 두 문장을 쓰고 보니 참깨 농사를 다 지은 거 같습니다.1994년 여름이 생각납니다.김일성이 7월 초순에 사망하자 말년 병장으로 제대를 앞두고 있던 저로선 난감했습니다.끝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전장의 포화 속에서 죽어갈 수도 있겠단 생각에 덜컥 겁이 났습니다.다행히도 전쟁은 발발하지 않았으나, 지독한 더위가 한반도를 뒤덮었습니다.당시로선 최악의 더위라고 난리였습니다.더위와 공포를 뒤로 하고 7월 말 군대를 제대했습니다.8월 중순이 되자 농사짓던 집에선 참깨를 베어 말리기 시작했습니다.아버지는 새벽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