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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관리 |
정관성(원광대 강사)
장마가 가고 작열하는 태양 아래 작물이 자라는 시절입니다. 인간의 관점에서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시절이지만, 작물의 관점에선 한껏 양분을 빨아들이고 햇빛을 최대한 많이 받아들여야 하는 시기입니다. 오래전부터 농부들은 날이 더워도 버티기 힘들어도 곡식이 될 작물들이 자라는 걸 보며 기분 좋게 버틸 수 있었습니다. 태풍과 장마보다 쨍쨍한 더위가 농사일로 보면 반가운 날씨입니다. 이맘때가 되면 논농사를 짓는 농부들은 물관리에 신경을 씁니다. 조금 있으면 나락 목(이삭)이 올라오는 시기입니다. 이삭거름을 주고, 물을 충분히 대줘서 최고의 영양을 공급하는 상태를 만들어줍니다. 모내기 하고, 좀 지나서 벼 포기가 나뉘는 시기에는 물을 좀 빼주다가 이맘때가 되면 다시 물을 댑니다. 농사짓는 어르신들은 반드시 아침 식전에 논 물꼬부터 보고 와서야 식사를 하시는 때이기도 합니다. 부지런한 농부는 매일 아침 논 물꼬를 보러 가지만, 부지런하지 않은 농부도 이 시기엔 논두렁 풀을 깎고 물관리와 이삭 거름을 합니다. 풍성한 가을맞이를 기대한다면 적어도 최소한의 물관리는 해 줘야 합니다.
벼농사를 짓지 않아 물관리할 일은 없지만, 주말에 일찍 밭에 가면 농사짓는 어르신의 헛기침 소리가 벼들을 깨우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천천히 삽 하나 뒷짐 지고 걷는 모습은 어린 시절의 우리 아버지, 우리 동네 어르신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마도 수천 수백 년 동안 농부들은 그러했을 겁니다. 물이 댈 수 있는 논이면 좋겠지만, 물이 흔하지 않은 곳에서 농사짓는 분들은 그 애환을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자식들 먹이고, 겨울과 봄을 나야 하는 민중의 삶에 쌀, 콩, 고구마 등의 식량이 되는 작물은 뼈와 살처럼 귀하고 소중한 먹거리였습니다.
민중의 애환과 삶은 이해하고자 봉건시대의 왕과 왕비는 궁궐과 그 근처에서 손수 농사를 짓거나 누에를 키우고 길쌈을 하곤 했습니다. 생존을 위한 농부들의 생업에 미칠 바는 아니지만, 최소한의 노력을 통해 민중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키우곤 했습니다. 왕은 아니지만 우리시대의 리더가 되새겨 볼 일입니다.
농업을 천시해서 그런지, 물관리의 기본을 몰라서 그런지, 민중과 작물의 소중함을 발톱 밑의 때만큼도 생각하지 않아서 그런지 요즘 나랏일 하는 사람들 물관리를 보면 기가 막힙니다.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후보로 오른 이진숙이라는 사람을 대통령은 결국 임명했습니다. 인사 검증 과정에서 나온 후보의 면면을 보면, 방송이란 논에 물을 대는 게 아니고, 독을 대려는 모양입니다. 직원들의 청렴한 근무를 감독해야 할 사람이 퇴직일에 법인카드로 빵을 280개 샀다는 말은 어찌 해석해야 할지, 일본군 성노예였던 위안부 문제는 개인적인 생각이니 물어보지 말라는 말은 인권 감수성에 치명적인 하자가 있는 건 아닌지, 언론과 여기저기에서 퍼뜨린 독의 씨앗과 같은 말들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있을지.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치관과 삶의 기준에서 볼 때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을 방통위 위원장으로 앉혀서 방송에 대한 여러 사안을 결정하게 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자 파괴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아래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자괴감과 곤혹스러움은 또 어찌할까요? 또 다른 독초가 있습니다. 적과 싸우다가 적을 닮는가 싶더니 이전의 적을 넘어서는 과거의 노동운동가 김문수를 고용노동부장관으로 임명할 거라고 합니다. 이번엔 논에 독초의 씨앗과 독물로 논바닥을 완전히 망칠 작정인가 봅니다. 농부는 논에 물을 대고 거름을 줄 뿐, 벼처럼 보이지만 결국 양분을 모두 빨아먹고 벼에게는 해로운 피를 논에 심지 않으며, 물이지만 염분이 높은 물은 절대 대지 않습니다. 김문수는 노동운동을 했다고 하지만, 노동자들의 권익과 공정한 사회에 대해 심각한 자가당착에 빠진 인물이라는 것을 그간 여러 번 확인시켜줬습니다. 국회의원, 경기도지사, 대통령실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등을 맡았고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다고 합니다. 노동자들의 최후의 쟁의 수단인 파업 대응책으로 “손해배상 폭탄이 특효약”이라고 떠든 사람입니다. 약자를 짓누르겠다는 속마음으로 약자의 목소리를 경청한다니요. 자리 욕심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위정자는 농민의 심정으로 일해야 한다고 봅니다. 더워도, 추워도,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오직 자신이 가꾸는 작물 생각으로 노심초사 걱정하고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는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방송의 균형 발전을 추구하려면, 적어도 공직자의 사욕을 다스리고 편향에 젖지 않으려 노력했어야 합니다. 노동자와 사회적 공정을 말하려면 적어도 야간 당직자에게 막말을 하지 말았어야 합니다. 그 분야에 대한 지극한 마음이 부족합니다. 방송 농사 노사정 농사 망칠 사람들입니다. 현 정부가 댈 물이 썩은 고약한 물뿐인가 봅니다. 우리는 더위보다 더러운 물이 더 참기 어렵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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