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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176) |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완주 용진향교입니다. 위치는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용진읍 원구억1길 41-33번지에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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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진읍은 서방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거울처럼 맑은 물의 소양천과 고산천이 휘어 감싸안고 있는 청정지역입니다. 동쪽은 소양면, 남쪽은 삼례읍, 봉동읍, 전주시, 북쪽은 봉동읍과 고산면에 닿고 있습니다. 2015년 7월 행정자치부로부터 최종 읍 승격 승인을 받고, 용진읍 설치 및 관할구역에 관한 조례 제정하여, 10월 1일부터 용진읍이 시작되었습니다. 완주 용진의 10대 풍경이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용진독서(龍津讀書: 용진서원의 글 읽는 소리)라고 합니다. 용진십경은 동포귀범(東浦歸帆: 초포(동포)다리 부근이 범선), 서방낙조(西方落照: 서방산에서 보는 낙조 풍경), 봉서모종(鳳棲暮鍾: 진묵조사가 살았던 봉서사의 저녁 종소리), 종남토월(終南吐月: 종남산에 뜨는 달 모습), 봉소포란(鳳巢抱卵: 조선 8대 명당의 하나인 정부인 박씨 묘소), 회포습지(回浦濕地: 회포에 있는 가시연꽃과 습지), 간중천렵(澗中川獵: 간중리 맑은 물에서 하는 천렵), 구억명창(九億名唱: 구억리 소릿굴의 권삼득 명창 묘소), 용진독서(龍津讀書: 용진서원의 글 읽는 소리), 신지감천(甘泉: 신지리의 맛있는 물이 전국에 알려짐) 라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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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는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설립된 고려ㆍ조선시대의 국립 교육기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1894년 갑오개혁으로 근대 교육이 본격화되면서 교육적 기능은 폐지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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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진향교는 1695년(숙종 21)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송시열(宋時烈)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습니다. 1696년 ‘용진(龍津)’이라고 사액됨과 동시에 민정중(閔鼎重)을 추가 배향하였습니다. 그 뒤 중앙의 정치세력 변화로 인하여 1724년(경종 4)에 철액(撤額)되었다가 1725년(영조 1)에 복액(復額)되기도 하였습니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1년(고종 8)에 훼철된 후 용진서원유허비(龍津書院遺墟碑)가 건립되었습니다.
1922년 유림과 후손에 의해 복원되었습니다. 이후 1980년 보수 후, 2015년 5월~9월까지 2억9천만원(종중 2억4500만원, 군비 4500만원)을 투자해 전면 3칸, 측면 1칸 사당, 외·내문, 열녀각, 강당을 리모델링해 중수식으로 이어졌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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