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햅쌀밥 |
정관성(원광대)
지난 주말에 보니, 11월 10일이 되어서도 들판에 추수를 하지 않은 논이 있었습니다. 나락은 황금색을 넘어 황갈색으로 변하는 중이었습니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 만생종 중에서도 저리 늦게 추수하는 품종이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쌀이 귀하지 않은 시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집에서 밥을 거의 먹지 않아 집에 쌀이 떨어졌는지 모르고 있었다는 사람도 있더군요.
요즘 집에서 밥 먹는 일이 즐겁습니다. 햅쌀로 지은 밥은 윤기가 흐르고, 씹는 촉감도 탱탱하여 밥 먹는 즐거움을 느끼게 합니다. 평소 근처 공공기관 식당에 들러 한 끼를 때우곤 했는데, 가을 들어서 집밥을 먹습니다. 키우는 닭 모이를 줘야 하는데, 퇴근하고 가면 너무 어두워 잘 보이지 않습니다. 닭장에 짐승이 뚫어 놓은 구멍이 있는지 봐야 하고, 모이에 더하여 호박, 고구마 등을 던져둔 것을 얼마나 먹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점심시간에 닭장에 가곤 합니다. 당연히 다른 직원들과 밥시간을 맞출 수 없어서 집에 들러 얼른 한 그릇 해치우고 옵니다. 바쁘고 짧은 시간이지만 점심 밥맛이 좋아 조금 더 먹을까 망설이곤 합니다.
어제는 11월 11일 “빼빼로 데이”라고 아이들이 빼빼로와 쿠키를 받아와서 먹는 모습을 봤습니다. 제과업체의 상술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소형 마트와 편의점에도 다양한 빼빼로가 수북하게 쌓인 것을 매해 확인하게 됩니다.
지방 뉴스에선 11월 11일은 “농업인의 날”이라며 쌀 소비 촉진을 위해 가래떡을 나눠주는 행사를 했다고 나옵니다. 농협과 지방자치체가 나선 행사는 어딘가 카메라 앵글을 의식한 어색한 표정뿐입니다. 농민의 날에 11.11.을 닮은 가래떡 나눠주는 것으로 대단히 만족스러운가 봅니다. 물론 그들의 노력이 헛짓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매번 새로울 거 없는 일부의 눈에 비춰지는 기획행사란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현지 쌀값이 자꾸 떨어진다고 합니다. 작년 21만 원이던 80kg 현지 쌀값이 올해는 18만5천 원 수준이라고 합니다. 작년보다 작황은 더 나빠졌고, 물가는 더 올라갔는데, 쌀값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특히 올해 일부 지역에서는 벼멸구 피해도 심각했습니다. 가래떡을 들고 환하게 웃는 얼굴을 연출하고 싶어도 농민들 얼굴에선 그런 화사함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김제에서 농사를 짓는 매형은 올해 논에 콩을 많이 심었습니다. 대체작물 지원비를 받고, 쌀값 하락에 대처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자꾸 콩을 심으면 콩은 또 얼마나 먹을지 모르겠습니다. 콩값은 얼마나 유지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농사짓는 중간에 미장일로 공사장 벌이를 틈틈이 합니다.
그래봐야 도시 노동자 임금 수준을 따라가기 어렵습니다.
산업화의 그늘이 아직까지 제도적으로, 구조적으로 농업과 농민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공장 노동자를 보충하기 위해 농민의 자식들을 “산업의 역군”으로 치켜세우며 데려다 부려먹었고, 물가 안정과 최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일단 쌀값부터 안정시키겠다고 했습니다. 다른 여러 이유도 있겠지만, 그 여파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이제는 50대가 청년인 농촌에서 60~80대의 고혈을 쥐어짜며 농촌과 농업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 논이 없는 집의 자식은 햅쌀로 지은 밥 먹을 기회가 적었습니다. 어떤 해 남의 논을 빌려 농사를 지어도 거의 전부를 내다 팔고, 정부미를 사다 먹기도 했습니다. 찰기가 부족한 정부미는 도시락을 싸가면 저녁밥은 쉬어서 버리기 일쑤였습니다. 특히 평야지역에 살면서 정부미 사 먹던 사람들의 상실감은 더 컸습니다. 그렇게라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몸부림치곤 했습니다.
요즘엔 정부미를 사다 먹을 일은 없지만, 묵은 쌀을 사 먹어야 하는 사람이 아직도 많습니다. 쌀값이 떨어져도 햅쌀밥을 먹지 못하는 사람들의 상실감은 위정자들은 알까요? 남원에서 임실로 넘어오는 고속도로에서 본 아직 추수하지 않았던 논이 자꾸 눈에 어른거립니다.
어린 시절 논바닥에 벼를 베어 눕혀뒀는데, 비가 오면 모두 나가서 물골을 내고 낫으로 뒤집어 놓던 기억도 겹쳐집니다.
빼빼로를 들고 온 아이들에게 “밥부터 먹어!”라고 어제 뭐라 했습니다.
아이들을 힐난했던 것보다 더 큰 목소리로 정부에 요구합니다. “농민부터 살려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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