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성 37

인권누리 웹진 제130호 회원의 붓

우생마사(牛生馬死)와 학여역수(學如逆水) 정관성 제19회 아시안게임이 한창입니다. 축구 경기에 나오는 이강인 선수를 보고 환호하며, 우리나라 선수끼리 결승전을 하는 광경도 보게 됩니다. 눈이 호강하고 있죠. 딱히 보고 싶던 프로그램도 없던 차에 각본 없는 실전을 관전하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스포츠가 국민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사이 걸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아이들에게 물었더니, 운동선수 부모님, 방송국 사장, 열심히 운동하고 TV에 나오게 된 선수들 등 여러 사람을 댑니다. 그분들 모두 제철을 만나 마음껏 응원하고 국민들의 응원을 받으니 가장 좋아할 사람들이 맞습니다. 스포츠와는 직간접 인연이 별로 없지만, 분위기를 가장 즐기는 사람들은 정치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구질구질한 ..

인권누리 웹진 제127호 회원의 붓

책 쓰기와 삶의 방식 정관성 공중에 흩어져 있던 수증기가 모이면 구름이 됩니다. 구름은 비가 되고, 빗물은 강물이 되어 바다로 갑니다. 너무 흔한 이야기지만 이 현상이 지금의 지구라는 행성을 생명의 땅으로 만들었습니다. 비가 긴 세월 내려서 불덩이 같은 땅을 식혔고, 비가 흙속의 무기물을 들춰낸 역할을 했습니다. 지금도 과학자들은 다른 외계생명체가 존재할 만한 곳을 찾을 때 가장 먼저 “물”이 있는지 여부를 탐색합니다. 그만큼 물이 생명활동에 중요한 요소라고 봐야겠지요. 물은 수증기의 결합된 양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양식은 얼음이 되기도 하고, 공기 중으로 스며든 습기가 되기도 합니다. 다른 물질도 비슷하지요. 과학시간에 배운 기화, 승화, 액화 등이 같은 물질의 형태 변화와 관련된 말들이지요. 물질..

인권누리 웹진 제125호 회원의 붓

걱정하는 사람들 앞에서 정관성 “이 친구는 걱정 없을 거 같은 친구야. 직장 안정적이지, 부인 직장도 좋지. 텃밭도 하면서 노후 준비도 어느 정도 된 거 같고. 애들도 큰 문제없이 잘 자라는 거 같고. 큰 애는 벌써 서울로 학교를 가서 잘 지낸다며?” 이런 말을 친구들과 만났을 때 들었습니다. 그의 논거에 비추어 보면 참 걱정 없는 사람이 맞습니다. 먹고 살만 하고, 아이들 건강하게 자라는 것만으로도 걱정거리는 없어야 마땅합니다. 제가 뭔가를 걱정한다면 복에 겨워서 괜한 짓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게도 걱정이란 것들이 있습니다. 생각해 보니 우리 어머니는 매일 걱정을 하며 사셨습니다. 10리길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는 막내아들을 보면서, “애기 잘 데리고 댕겨라. 버스랑 기차 건널목 조심허고....” ..

인권누리 웹진 제122호 회원의 붓

고추밭에서 정관성 지난 일요일 고추를 따러 밭에 갔습니다. 섭씨 36도를 오르내리는 기온이 좀 누그러질까 싶어 오후 4시에 밭에 갔습니다. 고추를 10분이나 땄나? 주변이 후두둑후두둑 요란해졌습니다. 얼른 따던 고추포대를 들고 창고용으로 쓰는 비닐하우스에 들어갔습니다. 비는 멈출 기색이 없이 더 요란하고 세차게 내렸습니다. 언제 태양이 온 천지를 다 말려버릴 듯이 타올랐나 싶을 정도로 거세게 내리는 비가 고랑에 물을 흐르게 하고, 천지를 질퍽하게 적시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기다려도 비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요즘 고추를 따면 비료포대로 한 포대 정도를 따는데, 집에서 말리기엔 버거운 양입니다. 김제에서 농사를 짓는 누나 집에 건조기가 있어 건조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일요일이 다 가는 시간, 그..

인권누리 웹진 제119호 회원의 붓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 정관성 후텁지근한 날씨가 계속됩니다. 기온이 좀 내려가는 날이 있어도 끈적이는 땀은 여전합니다. 일 년 중 불쾌지수가 가장 높은 시절입니다. 비가 자주 내리고 기온도 적도와 가까운 나라 사람들은 짜증을 달고 살까요? 여러 나라를 가보진 않았지만 남쪽나라 사람들 나름 낙천적이고 순박하며 친절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덥고 습하면 ‘나 같으면 매일 짜증나고 싸울 거 같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내 생각’일 뿐입니다. 환경과 주변 사람을 바라보는 ‘지금의 내 입장’은 얼마나 객관적이며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일까요? ‘내’ 판단은 항상 틀릴 수 있고, 이미 틀리고 있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인사 담당부서의 팀장을 맡고 있다 보니, 상반기 직원 평가를 준비하고 자료를 받아 점검하는 일을 ..

인권누리 웹진 제112호 회원의 붓

5월의 일상 정관성 요즘 풀독으로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주말이면 밭에 나가서 일을 하고 있는데, 웃자란 풀을 뽑고 자르다 보니 팔, 다리, 목, 손, 심지어 몸에도 풀독이 올랐습니다. 요즘 밭에 나가는 재미를 붙인 아내도 풀독에 간지러워 밤잠을 설칠 정도였습니다. 긴팔, 토시, 장갑, 목수건 등으로 피부노출을 최대한 줄이려 노력하지만, 풀에 붙은 독성물질을 차단하지 못했습니다. 풀이 작을 때 제초제를 뿌렸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제초제를 최대한 자제하고 있는 터라 주말을 이용해 일하는 직장인의 입장에선 잠깐 풀을 뽑을 시간을 내지 못하면 밭은 온통 풀밭이 되어버립니다. 풀독의 원인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곤충의 탈피과정에서 발생한 섬유질, 풀이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분비하는 독성..

인권누리 웹진 제109호 회원의 붓

20세기에 있던 일들 정관성 나이가 들어가나 봅니다. 자꾸 젊은 시절 저질렀던 철없고 부끄럽던 실수들이 떠오릅니다. 스물일곱의 추석날 저녁. 내일이면 서울로 가겠다고 시골 역에 가서 입석표를 바꿔오던 중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미리 두 장을 사 두셨는데, 한 장을 돈으로 바꿔오는 길에서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한적한 시골길 오토바이를 타고 삼거리 좌회전을 하려고 멈췄습니다. 관광버스가 한 대 지나가고 아무 생각 없이 좌회전하다가 버스를 바짝 따라오던 승용차에 치여 오토바이 바퀴가 핸들과 1자가 될 정도로 틀어졌습니다. 승용차는 약 7~8미터 진행한 후 멈췄고, 오토바이 앞바퀴 브레이크에 찢겨 펑크가 난 상태였습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아마 그때 운이 나빴다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 못할 것입니다...

인권누리 웹진 제106호 회원의 붓

작물과 풀때기 정관성 봄비가 오락가락 합니다. 지난 일요일엔 임실과 완주를 지나오면서 대단한 폭우를 만났습니다. 처음엔 장맛비처럼 장대비가 오더니, 급기야 상당한 크기의 우박이 폭우와 같이 내려 자동차 와이퍼로 알갱이 있는 알로에주스를 훔치는 꼴이 되었습니다. 신기하다는 생각보다 밭에서 자라고 있을 나무와 작물이 걱정이었습니다. 다행인 것은 임실과 완주 상관에 내리던 폭우와 우박은 완주 구이를 넘어가는 터널을 지나자 완연한 다른 풍경으로 열렸습니다. 길이 바짝 말라 있고, 하늘에서 햇살이 비추고 있었습니다. 감자와 과일나무를 심어둔 텃밭에 갔더니 열흘 전 무서리에 냉해를 입었던 감자싹이 파랗게 다시 올라왔고, 사과나무, 복숭아나무, 자두나무 등이 꽃을 피우거나 지우며 열매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 우박이..

인권누리 웹진 제104호 회원의 붓

잔인한 계절 정관성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추억과 욕정이 뒤섞고/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마른 뿌리로 약간의 목숨을 남겨 주었다.(후략)” T.S. 엘리엇의 중 “Ⅰ죽은 자의 매장”이란 시의 첫 대목입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의 황폐한 유럽의 모습을 생각을 흐름에 따라 묘사했습니다. 죽어간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비가 내릴 것 같은 분위기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현대 역사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땅에서 이 시가 왜 그리 큰 공감으로 다가오는지 알 것입니다. 필자가 이 글을 쓰는 날은 4월 3일. 제주4.3항쟁 75주년입니다. 수만의 양민이 경찰과 군인의 총에 쓰러져간 처참한..

인권누리 웹진 제101호 회원의 붓

금반언(禁反言) 정관성 며칠 전 퇴근시간이 가까워졌는데, 동네 선배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물어볼 게 있으니, 급하게 좀 만나고 싶다고. 일찍 저녁을 먹고 집근처 산책로를 걸을 생각이었으나, 급한 전화에 다급한 목소리를 거부할 수 없어 만났습니다. 뼈다귀해장국집에서 만난 선배는 음식도 나오기 전에 입을 뗐습니다. “내가 일하던 곳에서 권고사직을 당했어.” “네? 일 다닌 지 이제 겨우 석 달 아닌가요?” 선배의 담담한 표정과 달리 듣는 쪽에서 더 놀랐습니다. “작업 매뉴얼을 익히는 데에 시간이 좀 오래 걸렸고, 나이가 좀 많아서 젊은 사람이 업무 지시하는데 부담이 많다는 이유더군.” 선배는 상당한 규모의 식료품 마트 매장에서 물건을 정리하는 매니저였고, 나이는 60대 중반이지만 건강했고, 이제는 일을 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