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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쓰기와 삶의 방식 |
정관성
공중에 흩어져 있던 수증기가 모이면 구름이 됩니다. 구름은 비가 되고, 빗물은 강물이 되어 바다로 갑니다. 너무 흔한 이야기지만 이 현상이 지금의 지구라는 행성을 생명의 땅으로 만들었습니다. 비가 긴 세월 내려서 불덩이 같은 땅을 식혔고, 비가 흙속의 무기물을 들춰낸 역할을 했습니다. 지금도 과학자들은 다른 외계생명체가 존재할 만한 곳을 찾을 때 가장 먼저 “물”이 있는지 여부를 탐색합니다. 그만큼 물이 생명활동에 중요한 요소라고 봐야겠지요. 물은 수증기의 결합된 양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양식은 얼음이 되기도 하고, 공기 중으로 스며든 습기가 되기도 합니다. 다른 물질도 비슷하지요. 과학시간에 배운 기화, 승화, 액화 등이 같은 물질의 형태 변화와 관련된 말들이지요. 물질의 본질은 하나지만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기도 합니다.
왜 이 이야기를 먼저 시작할까요? 책이라는 것도 이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흩어져 있는 지식과 감정을 모으면 생각의 흐름이 만들어져요. 생각의 흐름이 잘 정리되어 모인 형태가 책이죠. 모양을 달리하면 전자책이 되고, 이용방식이 달라져서 오디오북이나 점자책이 되기도 하죠. 이렇게 보니 책은 수증기가 모여 컵에 담긴 물과 참 닮아 있네요. 책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 생명활동과도 닮아 있습니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몸은 자동차나 화력발전소를 움직이는 내연기관과 비슷하죠. 양분을 흡수(투입)하면, 에너지와 배설물이 나오는 겁니다. 밥을 먹으면 뭐가 나오냐는 물음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은 “쉬똥방구”라고 합니다. 물론 맞아요. 하지만 생명 유지를 위한 에너지와 우리 몸을 구성하는 구성 물질을 만들고 나머지는 쉬똥방구로 나오는 거죠. 화력발전소에서 석탄을 태우면 뭐가 나오냐고 물을 때, 연탄재가 나온다는 사람보다 전기가 나온다는 사람이 많은데, 사람에 대해서 말할 땐 좀 다른가 봅니다. 어떻든 뭔가가 들어가면(Input) 뭔가가 나오는(Output) 거죠. 인간의 생명 활동에 따른 여러 경험과 과정을 통틀어 “삶”이라고 하죠. 삶은 끊임없는 인풋과 아웃풋의 연속입니다. 필요한 것을 에너지와 몸으로 만들고 필요하지 않은 것은 밖으로 배출하죠. 책을 읽는 행위도 어떤 사람은 지식과 재미를 얻기 위해서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역설적이게도 잊어버리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우리의 신체 장기들과 마찬가지로 뇌도 어떤 것은 저장하고 어떤 것을 자연스럽게 잊어버려요. 화력발전소에서 석탄재가 나오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우리가 잊어버리는 것도 당연한 과정의 하나랍니다. 그래서 도망가는 이산화탄소를 잡아 가두는 기술을 개발하듯 사람들은 뇌의 보조수단으로 책을 씁니다. 일기를 쓰고, 노트필기를 하고,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남기고, 페이스북에서 노닥거리고, 카톡방에서 약속을 잡습니다. 이런 행동들의 바탕에는 날아가 버리는, 휘발성 기억에 대한 아쉬움과 대응을 이유로 듭니다. 우리는 기억하기 위해서 읽고 공부하고 경험하지만 그 과정은 잊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인풋은 계속해서 아웃풋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대단한 천재들의 뇌가 정말 많은 것을 담아둘지는 모르지만, 별로 부럽진 않습니다. 그래봐야 전기를 좀 더 생산하는 화력발전소 정도니까요.
책을 읽으며 잊고, 잊고 남은 것을 기록하여 정리하고, 그것이 다시 책이 되는 순환의 과정은 인간의 존재방식과 너무나 닮아 있습니다. 물이 순환하듯 지식이 순환한다면, 유기물이 에너지와 찌꺼기를 남기듯 우리의 기억과 정보는 분리배출 또는 축적됩니다. 그 매개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책입니다. 아직까지는 그렇습니다. 형태는 계속 바뀌고 있죠. 점토판에 쐐기문자를 찍던 사람도 저자고, 다음카카오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는 사람도 저자고, 여러분이 하루 일을 마치고 쓰는 일기가 있다면 여러 분은 저자라고 봐야 합니다. 돈이 되든 말든, 인기가 있든 말든, 명작을 썼든 아니듯... 우리는 그 자체로서 기록하고 정리하면서 자신의 존재방식을 확인하는 과정을 겪습니다. 저는 누구인가요? 전북혁신도시에 사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라는 공공기관에 다니는 직원입니다. 그 옆에 작은 땅을 사서 텃밭을 가꾸는 농부입니다. 원광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 강의를 나가는 학자이기도 하죠. <독재와 민주주의>, <여자가 사는 법>, <대통령은 누가 뽑나요?>, <법 법대로 해> 등의 책을 쓴 저자랍니다. 세 자녀의 아빠고, 고향은 정읍시 신태인읍입니다. 군대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의무병이기도 했습니다. 7남매의 막내고, 보시다시피 얼굴이 큰 ‘얼큰이’입니다. 아마 저에 대해 정의하자면 너무 많은 말들이 나열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작가님”으로 불리는 것을 가장 좋아합니다. 운이 좋았거나 노력이 있었거나 뭔가가 작용해서 저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많은 경험과 지식과 생각들 중에서 잊어버리지 않은 뭔가를 정리하여 책을 쓰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감사한 일이죠.
책을 쓴다는 것은 이미 자기 안에 널려 있는 많은 콘텐츠와 특징들 중에서 일부를 추려내고 정리하는 작업입니다. 수증기처럼 떠도는 정보와 상상을 정리하여, 하나의 흐름으로 끌고 가는 작업은 그리 쉽진 않지만, 책이 나올 때의 기쁨은 말로 할 수 없지요. “작가”로 불리는 사람들의 숙명은 책이 나올 때의 기쁨을 오래 간직하는 것입니다. 그 힘으로 다른 책을 쓸 수 있으니까요. 책으로 엮인 생각들이 소통의 매개가 되고, 독자를 자극하고,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최근 2024년 국가의 독서진흥예산 60억 정도가 공중으로 사라진 일이 있습니다. 되돌리기 쉽지 않아 보여요. 과연 그들의 삶의 방식은 어떤 것일까요? 우리의 생각과 정보와 소통이 다시 안개처럼 흩어져버리길 바라는 것은 아닐까요? 자신들의 정체성을 무엇으로 삼고 싶은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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