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130) |
전북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130)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임실 박준승 선생 생가입니다. 위치는 전라북도 임실군 청웅면 옥석2길 11-14번지에 있습니다.
1919년 기미년(己未年) 3, 1 독립 만세운동에 참여한 33인 중 한 명이 전북 임실의 자암 박준승 선생입니다. |
|
박준승 선생의 생가는 임실군 청웅면 옥석리인데 예로부터 양반들이 사는 고장이었다고 합니다. 박준승 선생은 임실 옥석리에서 태어나 3.1 만세운동에 참여한 죄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아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습니다. 박준승 선생은 재판 과정에서 형무소를 나가면 다시 독립운동을 하겠느냐는 질문에 “나는 태어날 때부터 조선 독립국의 국민이었다. 나는 독립운동을 기회만 주어진다면 언제 어디서든지 할 것이다.”라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신념과 의지가 있었기에 끝까지 변절하지 않고 독립운동가로 남아 대한독립을 그리워하다가 1927년 3월 23일 전북 정읍시 산외면 평사리에서 61세를 일기로 운명하였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습니다. |
|
임실군과 박준승 선생 기념사업회는 박준승 선생이 1919년 3월 1일 태화관에서 거행된 독립선언식으로 인해 교도소에 수감 되어 옥고를 치르고 출소한 날인 1921년 11월 4일을 기리기 위해 해마다 11월 4일에 추모행사를 열고 있습니다. 원래 박준승 선생 생가는 다른 사람이 소유하고 있어서 유족들과 동네 사람들은 부득이 마을 회관 뒤 공터에 1993년 4월에 건립하였다가 임실군에서 박준승 선생 생가 복원사업을 벌여 2013년 10월에 현재의 곳으로 옮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편 정읍시에서는 2019년 11월 정읍시 산외면 평사리 고택지 인근에 박준승 선생(1866~1927)이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것을 기리기 위해 박준승 기념관을 개관하였습니다. 기념관은 박준승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선열들의 숭고한 애국애족 정신을 후손들에게 계승하기 위한 산교육 장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
|
박준승 선생은 동학이 교세를 어느 정도 확장한 시기였던 1891년에 35세에 그동안 수학하던 한학에서 벗어나 동학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고 합니다. 1894년 1월 고부민란이 일어나자 당시 농민이요 동학교도였던 박준승 선생은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여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동학농민혁명이 실패하게 되고 동학 잔당을 색출하는 일제와 친일 정권의 눈을 피해 다니면서 전라도 지역 동학 접주가 되어 임실, 정읍, 순창, 남원, 장성 등 호남 일대에서 동학의 저변 확대를 위해 활동하였습니다.
동학농민혁명과 항일 독립운동에 참여하여 주도적인 역할을 한 박준승 독립운동가의 생애를 살펴볼 수 있는 생가는 전북의 항일 인권유적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