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물과 풀때기
정관성
봄비가 오락가락 합니다. 지난 일요일엔 임실과 완주를 지나오면서 대단한 폭우를 만났습니다.
처음엔 장맛비처럼 장대비가 오더니, 급기야 상당한 크기의 우박이 폭우와 같이 내려 자동차 와이퍼로 알갱이 있는 알로에주스를 훔치는 꼴이 되었습니다.
신기하다는 생각보다 밭에서 자라고 있을 나무와 작물이 걱정이었습니다. 다행인 것은 임실과 완주 상관에 내리던 폭우와 우박은 완주 구이를 넘어가는 터널을 지나자 완연한 다른 풍경으로 열렸습니다.
길이 바짝 말라 있고, 하늘에서 햇살이 비추고 있었습니다.
감자와 과일나무를 심어둔 텃밭에 갔더니 열흘 전 무서리에 냉해를 입었던 감자싹이 파랗게 다시 올라왔고,
사과나무, 복숭아나무, 자두나무 등이 꽃을 피우거나 지우며 열매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 우박이 우리 밭에 내렸으면 참담한 꼴이 되었을 겁니다.
꽃이 떨어지고, 잎에 구멍이 뚫리고, 줄기가 부러졌을지도 모릅니다. 우박과 폭우가 내린 지역에서는 나무와 풀과 작물들에 상당한 피해를 줬을 것이었습니다.
그 식물들이 작물이라면 심고 가꾸는 사람의 마음이 많이 아팠을 것입니다. 문득 산에 난 나무와 풀이라면 어땠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누구도 알아보거나 애석해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집에서 농사일을 도왔고, 중년이 되어 다시 직장을 다니며 주말을 이용해 농사일을 하면서 배우는 것이 참 많습니다.
그 중 하나가 애지중지 가꾸는 작물은 참 쉽게 병들고 자연재해에 취약한 반면, 신경 쓰지 않고 버려둔 식물은 튼튼하고 어지간한 재해에도 끄떡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작물을 키울 때 너무 많이 나서 천덕꾸러기로 여겨지던 풀도 작물로 키우려면 쉽게 쑥쑥 자라지 않는다고 합니다.
자연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나고 자라던 달래, 고들빼기, 씀바귀, 냉이, 더덕, 도라지, 두릅, 비름나물, 쑥, 미나리, 취나물, 고사리 등 우리 주변에서 작물이 되어 자라는 식물이 많습니다.
그대로 두면 사람의 손을 타지 않으면 잘 자라던 것들이 키우려고 하니 손이 가고 애를 태우는 것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우리가 작물로 키우는 순간에 그 식물은 이미 누군가의 눈에 들어야 하는 상품이 되어야 합니다. 심지어 텃밭에서 자족적으로 키우는 작물도 팔지 않더라도 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작물은 제 역할을 못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풀을 위한 농사를 짓지 않기 때문입니다.
병충해와 자연재해에 노출되어 아까운 것은 작물이지, 저절로 자연에서 나고 자라는 식물이 아닙니다.
마을 어귀 어딘가에 제멋대로 나던 머위가 로컬푸드에 팔려나가거나 우리 식탁에 오르려면 우박을 맞아 구멍이 숭숭 뚫려서는 안 됩니다.
아무도 먹지 않는 가을 어느 날 태풍에 쓰러진 머위들은 이미 작물이 아니어서 우리 눈에는 아무런 소용도 없는 그냥 식물일 뿐입니다.
새봄 쌉싸름한 맛으로 식욕을 돋우는 나물이 될 때에만 머위는 작물입니다. 인간에게 오직 소중한 것은 그때뿐입니다.
우박이 내리면 그 일대의 모든 풀, 나무, 작물은 그 피해를 입습니다. 다만 인간의 관점에서 쓸모를 판단합니다.
어떤 것은 아깝고 다른 것은 필요 없는 풀때기가 됩니다. 인간의 이익과 노동을 투입하여 얻을 만한 가치에 관심을 두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잘 먹지도 않던 씀바귀와 비름나물을 베어 손질하여 묶고 시장에서 거래하고 있습니다. 돈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건강과 풀을 연결시켜 돈을 벌고자 합니다. 작물이 애지중지 관리 되는 이유가 생겨납니다. 작물을 관리하는 사람을 농부라고 부릅니다.
내버려두면 그냥 풀과 나무를 애써 가꿔서 누군가의 입에 넣어주려는 사람입니다.
농부들도 돈을 벌지 않으면 먹고 살기 어렵기 때문에 작물이 될 수 없는 풀들과 작물을 구분하여 땀을 흘립니다.
내버려두면 밭과 논과 과수원은 관리되지 않은, 관리할 필요가 없는 풀과 나무로 가득해집니다.
불과 1년 사이에 관리된 밭과 방치된 밭은 천양지차로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밭이 망가지고 논이 망가집니다.
가끔은 작물을 재배할 생각 없이 땅을 재산적 가치로만 사들인 사람들이 땅을 사서 방치하곤 합니다.
그들에겐 땅의 소중함보다 땅값 상승만 중요합니다.
농부와 토지 투자자 모두 돈을 추구하는 것이니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면 그만일까요?
생존에 필요한 돈과 투기성 자본이 같은 돈이니 같이 취급하면 될까요?
최근 양곡관리법이 대통령의 거부권과 국회 재의결에서 부결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세금낭비라는 이야기, 쌀 수요가 줄어든다는 이야기, 포퓰리즘 법안이라는 이야기들이 난무합니다.
돈을 관리하는 면에서 일부 타당한 면도 있을 것입니다. 돈이 안 되는 농업과 농민은 들판의 풀때기처럼 대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물며 잡초도 관리하여 인간의 건강에 보탬이 되는 작물로 가꾸는 세상입니다.
정부의 쌀 수급 관리와 대체작물 전환 관리도 농부가 작물을 재배하듯 정성스럽기를 바랍니다.
농민을 외면하지 않고 바라보는 것, 그들의 머리위로 쏟아지는 무수한 얼음덩이를 보며 마음 아파하는 것, 그것이 공정한 자세이며 우리의 오래된 상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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