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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누리 웹진 제107호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

인권누리 2023. 4. 28. 16:24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109)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전북 정읍의 만석보 유지비와 혁파비입니다.
위치는 전북 정읍시 이평면 하송리 179-1번지에 있습니다.
혁파비는 전북 정읍시 이평면 하송리 677-15번지에 있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의 시초가 된 만석보(萬石洑)는 무엇일까요?
만석보라는 이름은 만 섬을 경작하는 농지의 관개가 가능하다는 의미에서 붙여졌다 합니다.
물막이 댐 만석보는 우일과 배들을 둘러 나온 물이 동진강으로 흘러들어가는 곳에 들어졌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관개시설이 충분하지 못했던 시기에는 평야 지대에 홍수가 날 때마다 물이 범람하여 농사짓기가 어려웠습니다.
우일과 배들평야는 현재 호남평야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데, 만석보는 정읍시 정우면과 이평면의 넓은 평야 지대 어디쯤에 만들어진 수로시설입니다.
태인 쪽에서 흘러나오는 동진강 둑 위에 만석보의 유허지라는 비석은 현재는 [만석보유지비(萬石洑遺址碑)]이 세워져 있습니다.

만석보 유지비는 전라북도 기념물 제33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신태인에서 고부로 가는 남서쪽 약 4km 지점에 보자리에 세워진 비석을 말합니다.
만석보는 1892년(고종 29) 이평 평야 지역에 관개 용수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설되었습니다.
당시 고부 군수 조병갑이 멀쩡한 저수지 아래쪽에, 농민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부역을 시켜 새 보를 만들었고, 그것이 만석보입니다.
이후 새 보에 대한 수세라는 명목으로 한 마지기에 상답은 2두(斗), 하답은 1두씩을 받아 쌀 700석 가량을 착취했으며,
이에 분개한 농민들은 1894년 1월 전봉준을 중심으로 만석보를 부수고 민란을 일으켜 갑오농민전쟁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둑을 쌓았던 흔적만이 남아 있으며, 1973년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2.5m의 만석보유지비를 세웠습니다.

만서보 혁파비는 전라북도 정읍시 이평면 하송리 예동마을에 있는 비석입니다. 옛날 말목장터인 이평 소재지에서,
신태인 쪽으로 지방도를 따라가면, 바로 거기에 비각(碑閣)이 있습니다. 이것이 안길수 군수의 만석보 혁파비입니다.
예동마을은 동학농민혁명이 시작된 곳이며, 배들평야의 초입이고, 만석보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습니다.
1892년 5월 고부 군수로 부임한 조병갑(趙秉甲)이, 농민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기존의 보(洑)가 있음에도, 신보인 만석보를 막아,
보세의 이름으로 농민을 수탈하여 배들평야 농민들의 분노를 일으켰으며, 이는 동학농민혁명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고종 광무 2년인 1898년에, 고부군수 안길수가 신보인 만석보를 철거하니, 농민들의 원성이 사라졌습니다.
그해 9월에, 마을 주민들이 군수 안길수 군수의 만석보 혁파 선정비를 세우게 되었으며,
그 후 100여 년 동안 방치되어, 비문의 형태가 알아볼 수 없게 되자, 뜻있는 지역주민들의 권유로, 1994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기하여 비각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동학은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본, 인권 중심의 사상을 실천하여 국가를 바꾸려는 혁명운동이었습니다.
자랑스러운 전북의 인권 역사 유적지에는 동학농민혁명 있음을 기억하여 시간과 조건이 될 때마다 많은 분들이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유적지들을 탐방하길 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