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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에 대하여 |
정관성
2023년 10월 7일. 이날은 팔레스타인 무장 정치세력인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를 공격하여 1,200여 명이 죽고 250명을 납치한 날입니다. 하마스의 기습공격과 인질극으로 시작한 전쟁이지만, 결국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지상군을 투입함으로써 팔레스타인측 사망자가 4만1870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마스 대원을 색출하여 제거하겠다는 전쟁에서 많은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했고, 사망자의 30% 이상이 어린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가자지구의 6~23개월 영유아와 여성 96%는 일일 필수영양분 최소치를 채우지 못하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최근 이란, 레바논, 예멘 반군 등에 대한 공격 또는 공격 계획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이스라엘에게 휴전을 권하면서도 이스라엘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입장입니다.
세계의 화약고라는 중동의 전운이 심심찮습니다.
팔레스타인의 민간인과 노약자가 연일 쏟아지는 폭탄 속에서 죽거나 살아남아도 굶주림과 생활고로 죽어나가는 전쟁을 대하는 “평화의 수호자”라 자처하는 미국의 태도는 너무도 잔인합니다. 인권과 평화를 운운할 자격이 미국에게 있는지 의문입니다.
가자지구는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에 있는 대구시 면적의 지역입니다. 이스라엘의 해상 및 국경 봉쇄조치가 강화되면서 청년실업은 70%를 넘었다고 합니다. 1948년 이전에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자유롭게 살던 지역에 세운 나라가 이스라엘입니다. 새로운 나라는 원주민을 억압하고 배제하며 자신들의 나라를 만들어갑니다. 이에 반발하는 중동세력과 전쟁을 여러 번 해서 매번 이겼습니다. 뒤에는 미국이 있었습니다. 유대인의 경제적, 정치적 영향력은 두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억압받고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견디기란 참으로 어려웠을 겁니다. 하마스의 납치와 민간인 공격을 옹호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지만, 그들이 처했던 상황에 대해서는 이해가 필요합니다.
하마스는 구금 중인 이스라엘 민간인을 하루 빨리 풀어줘야 합니다. 인질 석방과 함께 휴전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고 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하는 것을 막는 일은 휴전협상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을 완전히 꺾어 넘어뜨리거나, 미국의 영향력을 배제시킬 능력이 없다면 전쟁을 최대한 빨리 종식시키는 것이 지도자가 해야 할 일입니다. 무고한 이웃의 죽음을 수단시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와 이란 등에 대한 공격을 당장 멈춰야 합니다. 심지어 이란 핵시설을 공격하겠다는 이스라엘 지도부의 모습은 광기에 휩싸인 걸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나찌가 유대인을 학살했던 최악의 범죄행위와 이스라엘이 아랍인을 인종청소 하듯 쓸어버리고자 하는 모습은 본질적인 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배제와 제거의 역사를 다시 반복하지 않길 바랍니다.
눈을 돌려 한반도의 남북 간 행태를 보게 됩니다. 휴전선 근처에서 철거했던 확성기 방송을 다시 시작하는가 하면, 북한은 오물풍선을 시도 때도 없이 날립니다. 탈북민 단체는 소위 ‘표현의 자유’란 이름으로 북쪽으로 풍선을 날려 보냈습니다. 표현의 자유라는 것이 그런 뜻인지 처음 알았습니다. 상대방을 무시하고 상대방의 약점을 할퀴기 위한 ‘표현의 자유’일까요? 북한의 오물풍선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은 남쪽에 살고 있는 ‘누군가’였습니다. 남과 북이 날리는 오물풍선이 삼천리 금수강산을 더럽히고 있습니다.
남쪽과 북쪽의 최고 지도자들은 틈만 나면 서로에게 험한 말을 쏟아내기 바쁩니다. 서로 첨단무기를 드러내 보이며 겁주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국군의 날 행사에 등장한 ‘현무5’는 10톤이 넘는 쇠뭉치를 하늘 높이 쏘아 올렸다가 땅으로 떨어뜨려 진동파로 지하 200미터까지의 인명을 살상할 수 있는 무기라고 자랑을 하더군요. 북은 핵실험을 할지도 모른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그렇게 서로 무기 자랑하다가 우연에 우연을 거듭해 전쟁이라도 나면 어찌 됩니까. 남북의 노약자들이 대부분 피해를 보게 될 것입니다.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태극기 들고 광화문을 누비던 노인들이야 많이 살았으니 여한이 없겠지만, 어린이와 여성 등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 자신들의 삶이 철저하게 운에 좌우되는 상황을 맞아야 합니다.
자꾸 비관적인 느낌이 드는 걸 지울 수가 없습니다. 결국 인간은 인간이 만든 무기로 서로 죽이고 죽다가 공멸하게 되는 것인가? 기후위기보다 핵전쟁의 위기가 더 가까이 다가온 것은 아닐까? 자기 확신을 넘어 자기 과신에 치우친 사람들의 불장난은 어느 순간이 되면 통제력을 잃어버린 불마차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는 걱정이 앞섭니다. 그들에게 균형감각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 이상적일까요? 어차피 인간은 비합리적인 존재라고 생각하고 관심을 끊어버려야 할까요? “가장 나쁜 평화도 가장 좋은 전쟁보다 낫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위태로운 분쟁지역의 하나인 한반도에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주변의 지도자들이 균형감각을 지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도자가 갖추지 못했다면 그 참모들이라도, 참모들이 아니라면 그 아래 실무자들이라도, 실무자들이 아니라면 우리 국민의 다수가 “날뛰는 지도자”의 무모한 생각을 일깨워야 한다고 봅니다.
나뭇잎이 빨갛고 노랗게 물들고 있습니다. 하나하나가 조화로운 단풍을 연출합니다.
이 짧고 엉성한 한 편의 글이 균형과 평화를 전하는 낙엽 한 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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