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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교육을 다시 생각한다 |
조효제 (성공회대 명예교수)
오랫동안 인권을 교육하면서 인권 교육이 무엇인지, 인권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해 왔다. 인권 교육을 정의하기는 어렵지 않다. 인권 교육은 학습자에게 자기가 가진 권리에 대한 지식과 가치를 알려주고,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권리 보유자로서의 유능성을 함양시키는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얻은 지식과 가치를 학습자가 자신의 가치관에 통합시 키고, 삶에 있어서 어떤 선택을 내릴 때 그것 을 불러내고 활용할 수 있다면 인권 교육의 목표가 달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인권 교육을 잘 받은 학습자는 스스로 자력화되고,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서 자신과 구성원들의 존엄과 평등을 증진시킬 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가, 타인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는 것과 연관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일이 대 상자의 존엄과 가치를 잘 보장할 수 있도록 하는 인권 교육을 받는다. 교육자, 사회복지사, 경찰 등이 그런 직종에 속한다. 일반 시민이 직장에서 받는 인권 교육에서도 특정 영역의 인권 관련 지식과 감수성을 강조하곤 한다.
인권교육이 어떤 한계에 봉착한 것 같은 느낌 그런데 요즘 인권 교육이 어떤 한계에 봉착했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나의 주관적인 의견이긴 하지만, 개인의 착한 인권 실천을 위한 방법론에 초점을 맞춰 인권 교육을 해 왔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학습자 개인의 인지적 변화가 정서적 감수성의 변화를 이끌고, 그것이 다시 행동 변화로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는 합리적 모델이 인권 교육의 주된 패러다임이었다. 그런 인권 교육은 당연히 필요하고, 무난한 접근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측면이 나타나고 있다. 개인의 착한 인권 실천 방법론에 초점을 맞춘 인권 교육에서 부족한 점이 무엇인가?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인권적으로 잘 행동하면 자신의 권리가 보장되고, 사회 전체의 인권 수준도 높아진다고 단순하게 가정하지 않았을까? 이러한 가정법은 인권을 둘러싼 여러 변수들을 통제하고, 개인의 인식-행동 변화만을 강조하는 특징이 있다.
시민만 인권친화적이면 되나? 가상적인 질문을 해 보자. 인권 교육을 잘해서 시민 대다수가 인권적으로 생각하고 인권적으로 행동하게 됐다고 치자. 그런데 권력을 가진 정부가 시민들의 자유와 권리에 적극적이지 않다면 어떻게 될까? 심지어 정부가 국민의 일부를 공공연히 반국가세력이라고 규정하고, 인권 운동과 인권 운동가를 체제에 위협 이 되는 집단처럼 몰아붙이면 어떻게 될까? 이런 분위기에서 인권에 꼭 필요한 신선한 자유의 산소가 충분하다고 볼 수 있을까? 더 중요하게는, 이런 경우에 인권 교육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산소가 부족해진 문제를 괄호 속에 넣어놓고-또는 모른체하고-그저 학 습자의 개인적인 인권 의식 함양과 실천만 강조하면 되는 것일까? 좀 더 큰 틀에서 보면 이런 문제가 인권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인권을 개별적인 권리 침해를 시정하는 렌즈로만 바라보면 그러한 인권이 제대로 실현될 수 있는 시스템 자체에 대한 관심은 흐려질 수밖에 없다.
내가 인권사회학자로서 평생을 두고 강조했던 권리가 바로 세계인권선언 28조였다. 즉, '개별 권리가 잘 실현될 수 있는 사회적·국제적 체제(질서)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그것이다.
통상적으로 인권친화적 사회체제란 국내에서 민주주의와 사회복지를 잘하는 것, 인권친화적 국제체제란 나라들 사이에 평화를 유지하고 서로 협력하는 것으로 해석해 왔다. 그런 것도 중요한 인권이라는 말이다. 개별 권리의 달성만을 강조하는 협소한 논리는 인권을 파편화하고, 시스템의 문제를 보지 못하게 하고, 인권 교육에 심각한 딜레마를 야기 한다.
인권 침해하지 말라는 인권 교육을 넘어 예를 들어, 사회복지 현장에서 실시하는 인권 교육을 보자. 사회복지 제공자와 이용자 사이에서 나타날 수 있는 갈등과 침해, 또는 사회복지 종사자와 법인 사이의 노동권 문제를 중심으로 인권을 교육한다. 기존의 인권 교육 원칙에 따르면 표준적인 접근이다. 그러나 조금만 시야를 넓혀서 생각해 보라. 한국의 복지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 OECD 국가들 평균의 60% 정도를 복지예산에 쓰고 있는 형편이다. 복지 수준을 OECD 국가들의 평균 정도만으로라도 높이자고 하는 것이 중요한 사회복지 인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사회권이 철저히 보장되는 복지국가를 강조하는 것이 진정한 사회복지 인권 교육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기존에 실시하던 인권 교육 절반, 복지국가에 관한 비전 절반이 합해져야 균형 잡힌 사회복지 인권 교육이 되지 않을까?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시민들의 착한 인권 실천 절반, 한국의 인권 상황에 대한 국 제적 평가와 객관적 정보 제공 절반이 합해져야 할 것이다. 전세계 자유민주주의 국가 중 유일하게 독재화가 진행되고 있는 나라로 한국이 지목되었다는 뉴스가 중요한 토론거리로 언급되어야 하지 않을까? 새로운 인권 교육을 모색하자 결론적으로, 전통적인 인권 교육에 더해, 민주시민으로서 세상을 보는 관점이 강하게 포함된 교육이 인권 교육의 2.0버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인권 교육이 성취한 공로를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새로운 인권 교육을 모색해야 할 때가 왔다. 만일 그런 움직임을 가로막는 정치적·사회적 장벽이 존재한다면 그것 자체가 제대로 된 인권 교육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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