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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144) |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고창 현곡정사입니다. 위치는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주곡1길 68-34번지에 있습니다.
현곡정사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57호에 지정되어 있습니다. 현곡(玄谷) 유영선(柳永善) 선생이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하여 1924년에 건립하였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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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석 기단 위에 방형의 초석을 놓고 방주(方柱)를 세워 지은 정면 4칸의 一자형 팔작집입니다. 평면은 마루방·방·대청·건넌방 순으로 실이 구성되어 있는데, 건넌방 뒤에는 작은 골방이 붙어 있습니다. 누마루와 같이 바닥면을 높게 구성한 마루방 전면에는 ‘尙志軒(상지헌)’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나머지 실(室) 앞에는 모두 툇마루가 시설되어 있고, 또한 집의 양측에도 각각 쪽마루를 놓아 출입에 편리를 도모하였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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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현곡 유영선 선생은 이 건물 앞에 다시 판경당을 건립하였는데, 현곡정사와 같은 축선상에 낮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외벌대 기단 위에 정성들여 치석한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웠는데 소로수장집의 건실한 모습입니다.
1956년에는 정사 서북편 가장 높은 곳에 사우를 건립하고 간재(艮齋)전우(田愚)의 진영을 봉안함으로써 정사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고 합니다. 전우는 현곡의 스승이며 정사를 짓기 전에 이곳에서 1년간 강학을 하였습니다. 사우인 용암사(龍巖祠)는 정면 3칸, 측면 1.5칸의 맞배집이며, 지금은 간재와 현곡의 영정과 위패를 같이 봉안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현곡정사 내에는 관리사와 벽돌조의 장서각이 있는데, 장서각에는 현곡이 저술한 문집과 가문에서 보존해온 2만여권의 장서 및 유품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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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곡정사의 만권루(萬卷樓)는 1922년에 세운 현곡정사(玄谷精舍)에 두었습니다. 현곡은 간재(艮齋) 전우(田愚·1841~1922)의 뛰어난 제자 5명 가운데 하나였고, 6000석의 부자였습니다. 현곡정사의 터는 거미(蛛) 명당이었는데, 책이 비치되어 있던 만권루는 거미의 몸통 자리에 해당합니다. 현곡정사의 수용 인원은 60명 정도였다고 하니 60명이 돈을 내지 않고 몇 달씩 머무르면서 마음대로 책을 볼 수 있었습니다. 현곡의 아버지인 유기춘(柳基春·1860~1930)이 부자이자 덕인(德人)이었습니다. 유기춘은 자신의 환갑잔치를 하지 않고 그 비용으로 주변의 배고픈 사람 300~400명에게 쌀을 나누어 주었다고 합니다. 흉년에는 자기 집 곳간을 열어놓고 사람들이 쌀을 가져가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나중에 유기춘이 죽었을 때 주민들이 그 고마움을 못 잊어 송덕비를 세워 주었습니다. 동학의 발상지 고창은 인덕이 많아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합니다. 거미는 똥구멍에서 줄을 뽑는데, 덕과 베풂의 거미줄로 주변을 다 연결해 놓으면 어떤 풍파도 그 덕의 거미줄을 뚫고 들어올 수 없는 것입니다. 거미의 몸통에서 뛰어난 인재가 나온다는 현곡정사에서 사회정의와 인권 정신을 체험해 보길 권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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