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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237) |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순창 객사입니다. 위치는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순창읍 순창7길 40번지에 있습니다. 객사(客舍)는 궐패를 모셔놓고, 관아를 방문하는 관리나 사신들이 머물던 곳으로서 관아에 관련된 시설들 중에서 서열이 가장 높은 시설에 해당됩니다. 전통적인 고을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건물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한국 전통건축물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여수의 진남관이나 통영의 세병관도 객사의 일종입니다. 규모가 큰 만큼 일제강점기 때는 개조가 되어 다른 용도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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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사는 후삼국시대때부터 세워지고 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조선 중기까지 그다지 보편적이지 않은 건물이었습니다. 조선 이전에는 국가적으로 불교를 신봉해 전국에 규모 있는 사찰이 많았고 이들이 관리나 사신들의 숙소로 이용되었기 때문에 따로 객사를 지역별로 만들 이유가 적었습니다. 사찰은 조선시대 초기 이후에도 숙소로 많이 이용되었지만, 숭유억불이 오래 지속되면서 평지의 대형 사찰은 사라지거나 일부는 객사로 개조되고, 교통로와 거리가 있는 산중턱의 중소규모 사찰 위주로 살아남았기 때문에 이젠 평지의 도시에 따로 숙박시설을 만들 필요가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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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초기만 하더라도 객사는 주로 평안도와 경상도에 집중되었으나 성종때 사림파를 등용한 이래로 전국적으로 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향촌에 성리학을 보편화시키기 위해 객사의 중심 건물인 정청에 궐패(闕牌)를 안치해 삭망월 등에 망궐례를 행하기 시작했고, 임진왜란을 거쳐 18세기에 들어서 보편화되었습니다. 수령을 비롯한 관원들이 초하루와 보름, 명절, 그리고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 전패(殿牌)[6]를 북쪽에 안치하고 그 앞에서 절하는 망궐례(望闕禮)가 이루어지던 곳입니다. 또한 객사는 중앙으로부터 임금의 뜻을 받들고 내려온 사신들을 머물게 하며 접대하던 건물이기도 하였으며, 관찰사가 순시차 들르면 잔치를 벌이거나, 백성들에게 향시를 베풀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객사는 각 지방에서 가장 경치 좋은 곳에 세워지거나 관아와 나란히 지어지곤 하였습니다. 관사(館舍) · 객관(客館)이라고도 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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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객사 건물은 전주 풍패지관, 경주 동경관, 통영세병관, 여수 진남관, 나주 금성관, 성천 동명관, 평택 팽성읍객사, 순창객사가 남아 있습니다. 순창객사는 1974년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습니다. 원래는 정당(正堂) · 동대청(東大廳) · 서대청(西大廳) · 중문(中門) · 외문(外門) · 낭무(廊廡)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정당과 동대청만이 남아 있습니다. 정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인 다포계(多包系) 팔작지붕 건물로 내부 바닥에는 전돌을 깔았으며, ‘殿下萬歲(전하만세)’라고 쓴 궐패(闕牌 : 闕자를 새긴, 위패모양의 나무패)를 안치하고 있습니다. 동대청은 정면 5칸, 측면 2칸인 다포계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객사의 초창(初創) 연대는 불확실하며, 현재의 건물은 1759년(영조 35)에 중건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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