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 18

인권누리 웹진 제162호 회원의 붓

실천적 지식인 리영희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교수)1977년 11월 23일 아침 리영희(1929~2010)는 서울 변두리의 허름한 동네이발소에서 머리를 깎다 말고 갑자기 들이닥친 공안당국자에 의해 연행되었다. ‘8억인과의 대화’를 통해 당시에는 적대 국가로 간주되던 중국 사회의 실상을 객관적으로 깊이 탐구했다는 이유였다.그는 악명 높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여러 날 취조를 받았다.당국은 그에게 중국 공산당을 ‘고무 찬양’했다는 혐의를 씌웠다.리영희가 반공법으로 기소되던 날, 그의 모친은 세상을 떴다.죄수 아닌 죄수 신분이라 그는 자식된 도리를 다하지 못했다.평생 그는 총 5차례에 걸쳐 수감되어 1,012일을 감옥에서 지냈다.1969년부터 그와 독재정권의 불화가 본격화되었다.당시 리영희는 ‘조선일보’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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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 전봉준 선생 앞에서 - 윤석열 탄핵으로 가는 길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교수)6년 전의 일이다.서울 종로 전옥서 터에 녹두 전봉준 선생의 동상이 건립되었다(2018년4월24일). 그 자리에서 선생이 순국한 지 123년 만이다.나는 그를 장군이라 부르지 않는다.본래 그는 농민의 아이를 가르친 ‘서당 훈장님’이었다. 학에 들어가서는 ‘접’이라 불리는 신앙단체의 스승이 되었다.사후에는 우리 모두의 스승이 되었으니, 녹두는 선생이다.1894년 1월10일, 동학접주 전봉준은 1000여명의 농민들과 함께 고부 관아로 쳐들어갔다.놀란 군수 조병갑은 줄행랑을 놓았다.그때나 지금이나 가장 큰 문제는 양극화이다.토지가 소수에 불과한 대지주의 손아귀에 집중되자, 극빈자가 양산되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과잉산업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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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사회를 위한 지식인 종교인 네트워크’ 시국논평 31(2024.4.15.) 백승종(역사가, 전 서강대 및 독일 튀빙겐대학교 교수) 지난 4월 10일에 시행된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민국의 주권자인 우리 시민들은 윤석열 정권의 잘못을 따끔하게 질책하였습니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압도적인 다수 의석을 차지하였고, 여당인 국민의 힘은 궁지로 내몰렸습니다. 지역구 국회의원 254석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은 161석을 얻었지만, 국민의힘은 90석에 그쳤습니다. 새로운미래, 개혁신당 및 진보당도 각기 1석을 차지하였습니다. 그 밖에 비례대표는 국민의미래(36.67%)가 18석을 획득한 가운데, 더불어민주연합(26.69%)이 14석, 조국혁신당(24.25%)이 12석을 얻었습니다. 그밖에 개혁신당(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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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농민 운동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교수) 동학농민운동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큰 틀에서 보면, 동학농민운동은 1894년 음력 1월에 점화되어 1895년 3월에 일단락되었어요. 14개월에 걸쳐 숨 가쁘게 많은 일이 일어났지요. 그때의 여러 가지 사건을 세밀하게 하나씩 천착하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제가 힘주어 말하고 싶은 것은요. 동학농민들이 새로운 경제공동체를 건설하기를 원했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물론 오늘날의 ‘유럽연합’ 같이 거대한 경제공동체는 아니었지요. 유럽연합은 국가 간의 협의를 바탕으로 국가의 경계를 초월하는 경제공동체를 구성했어요. 동학농민들이 바랐던 것은요. 정의로운 경제, 정의로운 사회, 정의로운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거였다고 봐요. 한 마디로, 정의를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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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백성 없이 위대한 나라 없다-종교인ㆍ사회운동가 함석헌 백승종(역사학자) 젊은층은 함석헌의 이름 석 자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삼사십년 전만해도 그의 명성은 세계적이었다. 그에 관한 세평이 크게 엇갈렸던 것도 사실이다. 동서양의 종교와 사상을 넘나드는 그의 사상적 폭과 깊이에 경외심을 가진 이들도 많았지만, 그의 도덕성을 문제 삼는 경우도 있었다. 함석헌은 스스로를 평해 ‘약한 사람’이라 했다. 내 눈에 비친 함석헌은 누구보다 민족을 사랑한 미래지향적 평화주의자였다. 함석헌(1901~1989)은 많은 글을 남겼고, 그 가운데는 명문도 많다. 요즘 내가 다시 읽은 것은, 1958년 8월 ‘사상계’에 실린 칼럼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였다. 칼럼에서 함석헌은 1950년대 한국사회의 부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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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이 곧 천심 - 우리의 하늘은 '사회적 약자'이다! 백승종(역사학자) 국가와 사회의 흥망을 점친 것이 정치적 예언서이다. 이것이 역사기록에 등장한 것은 삼국시대 말부터였다. 당시 고구려와 백제에서는 자국의 멸망을 예고하는 징조가 빈번히 나타났다. 한참 뒤인 후삼국시대에도 왕건과 궁예의 쟁패를 예언한 ‘고경참(古鏡讖)’이 출현해, 왕건의 승리를 예고했다. 유학자 최치원도 고려가 신라를 흡수하리라고 점쳤다 한다. 풍수도참설의 선구자인 도선(道詵) 대사는 한술 더 떴다. 그는 왕건의 나라 고려가 탄탄대로를 걸으리라고 예측했다. 고려 때에도 세상이 시끄러울 때마다 예언이 유행했다. 많은 사람들은 도선의 예언을 빙자해, 고려의 수도 개경의 지기(地氣)가 쇠약해졌다고 말했다. 고려왕실로서 더욱 듣기 민망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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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경계인’ 이라야 한다 - 수운 최제우가 성공한 비결 백승종(역사학자) 긴 모색의 기간이 최제우를 융합적 창조로 이끌어 갔습니다. 그의 가슴을 지배한 것, 바로 그가 알았던 모든 지식이 하나의 용광로 속에서 하나로 결합했어요. 최제우는 전통적인 사상을 기초로 19세기 중후반의 여러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씨름했어요. 그래서 그는 성리학만을 들여다보지도 않았고, 불교만을 들여다보지도 않았고, 도교만을 들여다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이 세 가지 전통적인 지혜를 다 살펴보았습니다. 물론 자기 수준에서 바라보고, 자기 수준에서 하나의 답을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찾은 해결책이 바로 하늘이었다는 점은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은데요. 하늘의 뜻을 품고 있는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고귀한지를 발견한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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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노래 백승종 교수 (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아침에 햇볕이 가장 먼저 드는 곳은, 저녁 때가 되면 그늘도 가장 먼저 깔린다. 일찍 피는 꽃은 시들기도 다른 꽃들보다 빠르다. 이것이 진리이다. 운명이란 돌고 돌아, 한 시각도 멈추지 않는 법이다. 그러므로 세상에 뜻을 세운 사람이라면 일시적인 재난으로 말미암아 청운의 뜻을 꺾어서는 안 된다." 다산 정약용이 강진 유배지에서 두 아들에게 보낸 글 가운데서 나오는 귀절입니다. 여러해 전에 보물로 지정된 (霞被帖)을 읽다가 눈에 띤 말씀입니다. 의 내력을 잘 아실 것입니다. 아내 풍산 홍씨가 결혼식 날 입었던 다홍치마폭을 가위로 잘라, 그 위에 '죄인' 정약용이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린 다음 손수 표구까지 했다고 합니다. 다산은 양주 옛집에 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