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도부
‘교문 안에서 양쪽으로 도열해 있는 선도부원들이 등교하는 학생들을 매서운 눈초리로 보며 복장과 용모, 지각 등을 단속하고 있다. 선도부의 눈에 걸린 학생들은 한쪽으로 보내져 엎드려 뻗쳐를 당하고 담당교사는 그 학생들을 대상으로 매질을 시작한다. 학생들은 등교하며 선도부원들의 눈을 피하고 마치 감옥으로 들어가는 수형자들처럼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걸어간다.’
유신시절 학교를 배경으로 한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한 장면이다.
#1 모 중학교 점심시간
학생들이 선도부 완장을 차고 학생들의 생활지도를 하면서 학교규칙을 어긴 학생에 대해 학년 반 이름을 적고 벌점을 부과하고 있다. 지도교사와 함께 할 때도 있지만 선도부원끼리 조를 짜서 활동을 하기도 한다. 학생들은 선도부가 벌점을 부과하는 행위도 문제지만, 벌점을 주면서 선도부와 친한 친구들에게는 허용적이고 그렇지 않은 친구들에게는 여지없이 벌점을 부과하고 있다며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2 모 고등학교 생활담당교사
선도부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회의를 통해 생활규정이나 행동지침을 정하기 때문에 교사들은 크게 관여하지 않고 있으며 학생자치활동의 일환인데 뭐가 인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냐? 스스로 규칙을 정하고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오히려 권장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
# 모 고등학교 선도부 학생
처음에는 봉사활동 점수와 상점, 상장도 받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 신청하고 선발이 되었는데, 아침 교문지도, 점심 순찰활동, 급식지도 등 시간을 너무 많이 뺏기고 오히려 제가 쉴 시간이 없어서 힘들어요. 특히 여름과 겨울철에는 날씨 때문에 힘들기도 하구요. 또 벌점을 부과할 때 ‘니가 뭔데?’라면서 무시하거나 항의하는 선배나 친구들 때문에 속상할 때도 있어요.
# 모 고등학교 학생
선도부요? 지들도 규칙을 안지키면서 무슨 권리로 벌점을 주는 거죠? 두발이나 복장단속 할 때 원칙도 없고. 좀 쎈 애들한텐 꼼짝도 못하면서 만만한 애들한테만 뭐라고 하고.
얼마 전 전라북도학생인권교육센터에서 도내 학교를 대상으로 실태 조사한 결과들 중 일부이다. 유신시절을 배경으로 한 영화의 한 장면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강도와 형식만 변했을 뿐 비슷하게 현실에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일제의 잔재로 시작되어 오랜 세월 우리 교육에서 명맥을 유지해 온 선도부에 대해 다시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학생에게 완장을 채우고 동료학생을 감시하고 지도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나오는 엄석대를 만들고 있는 거 아닌가? 교사는 뭐하나? 이걸 학생자치활동으로 볼 수 있을까?
“초중등교육법 제18조① 학교의 장은 교육상 필요한 경우에는 법령과 학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징계하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지도할 수 있다. 동법 20조 4항 ④ 교사는 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교육한다.
교육기본법 제14조 ③교원은 교육자로서의 윤리의식을 확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학생에게 학습윤리를 지도하고 지식을 습득하게 하며, 학생 개개인의 적성을 계발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에 근거한다면 학생을 교육하는 것은 교원의 고유한 업무이며 학생지도권은 교원에게만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즉, 교원의 학생 교육권을 학생자치기구(선도부)에 위임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위처럼 학생지도나 벌점 부과 등을 선도부에 넘기는 것은 교사 스스로 학생지도권을 포기하는 것이거나 학생들에게 권한을 넘기는 무책임한 일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교사 스스로 교권을 포기하고 있음에 다름 아닌 것이다.
또한 교원의 학생 생활지도(교육) 업무의 일부를 학생들에게 넘기는 선도부의 운영은 학생자치활동으로도 볼 수 없다.
선도부가 등교지도, 교문지도, 식생활관 질서유지, 교내 순찰, 두발 및 복장 지도 등을 하는 과정에서 선도부 학생들의 학습권, 휴식권 등 인권이 침해받고 있으며, 선도부 이외의 학생들도 차별받지 않을 권리,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등에 대한 침해사례도 다수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 학생선도부 운영으로 학생선도부와 비선도부 학생 사이에 갈등이 충분이 예상되고 실제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인권친화적인 학교문화를 조성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인권문제로 봐야 한다.
선도부운영은 그린마일리지와 연계하여 운영되는 악화가 악화를 구축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선도부에 벌점을 부과할 수 있는 권한을 줌으로써 그들에게 동료학생을 통제하는 실질적인 힘을 부여하는 것이다. 본래 그린마일리지 제도는 상·벌점을 통해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게 하는 등의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며 도입하였으나, 벌점 부과 위주의 운영과 상점을 받기 위한 거짓 선행 등의 많은 부작용이 제기되고 있어서 상당수 시도교육청은 이를 폐지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학교에서 학생지도와 통제 등에 유용한 편리성 때문에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상벌점제(그린마일리지제도)는 학생선도부의 활동에 강제성 있는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학생들 사이에 권위의식과 갈등을 초래하고, 앞서 언급한 다양한 인권침해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제 학교생활규정을 통해 교원의 생활지도 권한을 학생에게 위임 및 행사 하도록 하는 것을 폐지함과 동시에 학생선도부 관련 조항도 폐지되어야 한다. 학교에서 학교생활규정 준수 등 필요한 활동은 학생선도부가 아니라 홍보 및 캠페인 중심의 학생자치활동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본질적으로 학생이 학생을 감시하고 지도하고 통제하게 하는 방식은 인권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전혀 교육적이지도 않다.
ps 다행히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많은 학교에서 선도부가 폐지되고 있다. 물론 이름만 자치활동부로 바꾸고 내용은 그대로인 경우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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