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ㅡ비장애인. 예비장애인?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또는 교사나 학부모를 대상으로 인권교육을 하면서 장애인이 아닌 사람을 통칭할 때 정상인, 일반인이 아닌 '비장애인'이라고 말한다.
혹자는 한발 더 나아가 예비장애인이라고도 한다.(이 말은 장애인식개선교육 당시 강사에게 들었던 말이다. 그리고 요즘 여기저기서 자주 듣는 말이기도 하다.)
언젠가 장애인단체와 함께 하는 연대회의에 와서 예비장애인이라는 말이 비장애의 시선에서 편견의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므로 부적절한 사용이라 말씀하시는 장애인당사자활동가들을 만났다.
누구나 후천적으로 장애를 가질 수 있고, 장애는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그저 다소 불편한 것 뿐이라고 인식하는 선의의 의미로 예비장애인이라 부름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장애를 왜곡되게 인식시킬 수 있는 잘못된 단어라고 하는 당사자들의 주장은 일리 있게 들렸다.
단어나 상징은 대개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오히려 기득권과 편견을 재생산하기에 때론 위험하기도 하다.
'예비장애인'.
한때 빈번히 사용되던 '장애우'라는 잘못된 무리짓기의 또 다른 버젼일까?
대개 단어는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영어에서도 장애인을 부르는 명칭이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handicapped person으로 결점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다가, 최근에는 people with a disability로 그저 눈이 안보일 뿐이라거나 손이 하나 없을 뿐이라거나 상태를 나타내는 말로 변하고 있다.
장애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있는 그대로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특히 교사와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장애인식개선교육을 할 때는 이제 일반적인 감수성 교육을 넘어서야 한다. 즉 해당학교에 소속된 특수교육대상학생을 지도 교육하는 것은 특수학급, 통합학급을 넘어 모든 학생과 교직원이 그 아이의 장애정도와 행동특성을 공유하고(부모의 동의를 얻어) 어떻게 대처하고 지도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구체적 행동까지 같이 학습할 때 온 학교가 장애학생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해당학생에 대한 통합교육을 완성하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냉정히 생각하여야 할 것은 표현의 창조가 아니라 동등한 대우인 것이다. 불구자, 병신, 앉은뱅이, 곱추, 벙어리, 애꾸 등으로 불리며 마음 아파했던 사람들을 ‘장애인’으로 바꾸어 나갔던 것처럼 더 이상 장애인을 '장애우'라고 불러서는 안 될 것이고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로 자리매김하게 하여야 할 것이다.
장애인, 비장애인 모두 사람일 뿐이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에 대해 동정과 측은한 마음을 갖자는 것 자체가 잘못된 발상이다. 장애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장애인을 도와주는 일이 된다.
그것은 학교교육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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