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71)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대둔산 동학농민혁명 최후 항전지입니다.
완주군 대둔산 동학농민혁명 전적지(完州 大屯山 東學農民革命 戰蹟地)는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 산15-24번지에 있는 동학농민혁명군의 최후 전적지입니다.
2015년 12월 28일 전라북도의 기념물 제13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지정 사유는 동학농민혁명군의 최후 전적지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인간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 사상에 근거한 동학은 구체제의 모순과 외세의 침략에 항거하다 다수의 인명의 손실이 있었던 역사의 현장입니다.
동학농민군은, 대둔산에서 최후의 항전을 했습니다. 당시 동학군은 일본군에 의해 거의 진압된 상황이었지만, 접주급 등 동학군 핵심간부 등 26명은 항복이나 해산을 거부하고 대둔산 자락의 미륵바위(형제바위)로 들어왔습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일본군에 대항하기로 뜻을 모은 것입니다. 1895년 2월 18일 마지막까지 항거하다가 포로되기를 거부하고 전원 바위벼랑에서 모두 몸을 던져 자결했습니다.
원래 대둔산에 동학농민혁명군의 최후항쟁지가 있다는 사실은 지난 1991년 국사편찬위원회가 ‘주한일본공사관기록’을 번역, 간행함으로써 세간에 알려졌습니다.
문석봉의 <의산유고>와 공사관기록은 1894년 11월 초 우금티에서 패한 동학농민군 50여명이 대둔산 절벽 위에 3채의 집을 짓고 화승총으로 항정을 계속했고, 1895년 2월 18일 관군과 일본군의 기습으로 진지가 함락됐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동학농민군 대둔산 최후항전>은 지난 100년 동안 묻혀있다가 1994년 서울대 신용하 교수에 의해 최초로 공개되었습니다.
대둔산 마루 상선 계단에 가기 직전에 ‘대둔산 동학군 최후 항전지’ 표지가 있습니다.
대둔산 동학농민군 항전지는 대둔산의 협곡과 계곡을 이용하여 150m 높이의 절벽에 위치한 난공불락의 요새로 우금치 패전 이후 3개월에 걸쳐 농민군의 항전을 가능하게 했던 농민군 최후 항전의 대표적인 유적지로 동학농민혁명정신을 극명하게 보여준 역사적 장소로 그 가치를 매우 높게 평가받고 있습니다.
대둔산은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과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및 금산군 진산면에 걸쳐 있는 산입니다.
높이는 878m로 대둔산은 ‘호남의 금강산’이라고 불리며 천여 개의 암봉이 6㎞에 걸쳐 이어져 수려한 산세를 자랑합니다.
대둔(大芚)이라는 명칭은 ‘인적이 드문 벽산 두메산골의 험준하고 큰 산봉우리’를 의미합니다.
동학혁명은 한없이 낮은 세상을 원했습니다. 천지를 개벽하여 높은 곳에 오르기를 원한 것이 아닙니다.
땅이 요동치고 뒤집히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요동치고 뒤집혀서 고르게 낮고 평평해지는 것을 원한 인권사상입니다.
동학농민 최후 항전지에서 목숨으로 바친 이들 역시 대동세상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염원한 인권운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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