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98)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전북 남원의 몽심재 입니다.
위치는 전북 남원시 수지면 내호곡2길 19번지에 있습니다.
몽심재는 수지면 호곡리 홈실마을에 자리한 250년 된 한옥 이름입니다.
홈실에 터잡고 살아온 죽산 박씨의 고택입니다. 연당 박동식(1753~1830)이 지었다고 합니다. 볼거리와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가득한 한옥이자, 양식 있는 사대부들의 아름다운 정원입니다.
중요민속문화재 149호인 몽심재는 독실한 원불교 신자 집안인 문중에서 교단에 고택을 기증해 운영되고 있습니다.
몽심재(夢心齋)라는 이름은 원래 죽산 박씨 박문수가 고려말 두문동에 은거할 때 지은 시에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격동류면원량몽(隔洞柳眠元亮夢, 마을을 등지고 있는 버드나무는 도연명을 꿈꾸며 잠자고)
등산미토백이심(登山薇吐伯夷心, 산에 올라보니 고사리는 백이의 마음을 토하는구나)
격동유면원량몽(隔洞柳眠元亮夢, 마을과 떨어진 곳에 서있는 버드나무는 도연명(元亮)을 꿈꾸며 잠자고 있고)
등산미토백이심(登山薇吐伯夷心, 산에 오르니 고사리는 백이 숙제의 마음을 토하고 있다.)
몽심재는 조선후기 상류층 주택의 전형이라 평가받는데 무엇보다도 풍수에 바탕을 두고 입지를 선정하였다는 점이 이 주택의 특징입니다.
몽심재는 남북으로 긴 장방형으로 된 대지는 남으로 비탈져 있어서 사랑채는 2m나 되는 높은 축대위에 세워졌으며 문간채는 사랑채보다 한층 더 낮은 대지 위에 서 있습니다.
건물은 ㄷ자형 안채와 전면에 세워진 일자형의 사랑채를 중심으로 안채 서측에 고방채(3칸), 서쪽광(정면 3칸 측면2칸)이 있으며 동측에 있던 3칸의 광채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사랑채 서측에는 중대문(4칸)이 이어 달렸고 사랑채와 문간채 사이의 동측에 행랑채(4칸)가, 그리고 이에 마주한 서측에도 마판채(3칸)가 있었으나 철거되었다고 합니다.
문간채는 7칸이었으나 현재는 5칸만 남아 있습니다. 대부분 건물의 원형이 잘 보존되고 있으며 건물의 배치 등은 전북지역 상류층 가옥의 전형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원래 홈실마을은 전설에 의하면 지리산 노고단에서 내려오는 지맥 중 하나인 견두산(호두산) 자락에 있는데, 지리산의 기운이 견두산을 타고 내려와 이 바위에 모인다고 합니다.
집터가 누운 호랑이 머리 자리인데 지맥의 기운이 다 바위에 뭉쳐 있는데, 바위에 주일암(主一巖)이라 새겨져 있습니다. ‘주일무적’(마음을 하나로 집중해 잡념을 떨친다는 뜻)에서 따온 이름으로,
바위 위에는 작은 ‘호석’(호랑이 석상)이 놓여 있습니다. 홈실마을 동쪽의 견두산(개머리산)은 본디 호랑이 머리를 뜻하는 호두산이었다고 합니다.
산 주변에 호랑이들이 들끓어 호환이 끊이지 않자, 영조 때 전라감사 이서구가 산 이름을 견두산으로 바꿨고 호환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호랑이가 사라지자 이번엔 들개(또는 늑대)들이 크게 늘어나 피해를 주자 이에 이서구가 광한루와 호곡리 몽심재, 고평마을 3곳에 호석을 세워 견두산을 바라보게 하자 들개 피해도 호환도 멈췄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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