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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누리 웹진 제96호 회원의 붓

인권누리 2023. 2. 7. 10:18

"세월호. 이태원." - 천주교 전주교구 교정사목 전담 유영 신부

이번호는 이태원 참사 100일을 맞이하여 유영 신부님의 글을 공유합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어렸을 때부터 물을 무서워했다.
머리 감는 것도 싫어해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며 아직도 가족들은 그 일을 두고 회자할 정도이다. 지금도 머리에 물을 맞으며 눈을 감으면 광활한 바다가 떠오르며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나도 그럴진대. 2014년 4월 16일. 성주간 수요일에 벌어진 세월호 참사. 304명의 희생자. 아직도 생생하다. ‘예수 부활’이라는 ‘희망’을 앞두며 설렜던 마음이 송두리째 식었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힘들었을까.
물을 무서워하는 나는 ‘상상만으로도’ 그럴진대, 희생자들은 오죽 더 그랬을까. 희망찬 미래를 꿈꾸는 풋풋한 마음을 간직한 채, 친구들과 어울려 추억을 만드는 그런 복된 여정 중에 벌어진 일이기에,
너무나도 안타까운 마음에 이제 곧 부활하실 예수님에 대한 야속함에 휩싸였다.
꽃다운 나이에 하느님 품으로 간 그이들을 생각하며, 그들을 잊지 않기 위해 세월호 리본을 차에, 옷에, 프로필 사진에, 이곳저곳에 달았다. “비가 오지 않아도, 비가 너무 많이 내려도, 다 내 책임인 것 같았다.
아홉 시 뉴스를 보고 있으면 어느 것 하나 대통령 책임 아닌 것이 없었다.”라고 말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마음만큼은 아니지만, 희생된 학생들을 마음에 담아 두려 부단히도 노력했다.
늘 부족했지만, 그이들에 대한 죄송스러운 마음을 품으며 살아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유사한 상황이 또 벌어졌다. 2022년 10월 29일 밤. 이태원 거리에서 일어난 참사.
그로 인해 희생된 이들은 이제 159명에 이른다. 막을 수 있는 참사였음에도, 예년대로의 메뉴얼로만 진행했어도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 일어났다.
그렇게 또 다른 부모들 역시 자식을 가슴에 묻었다. 8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2022년 12월 25일 저녁 7시에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서 주관한 “10·29 참사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성탄 대축일 미사”를 참사 현장 근처 녹사평역 3번 출구 앞에서 거행하였다.
미사 후에는 참사 현장까지 행진했다. 막내라는 이유로 십자가를 들고 유가족들과 시민들과 신자들과 수녀님들과 신부님들과 함께 이태원 거리를 행진했다.
참사 현장에 도착해서는 유가족분들의 증언을 들으며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그런데 증언 직후, 유가족 한 분이 나에게 울먹이며 다가와 “이렇게 추운데 십자가 들고 얼마나 고생 많으셨냐?”라고 말씀하시면서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셨다.
순간 나는 그분에게 이렇게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다.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것밖에 해드릴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신부인 내가 그 당시 그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몇십 분 십자가 드는 것, 어설프게 예수님 흉내 내는 그것밖에 할 수가 없어,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뿐이었다.
자식을 형제자매를 가슴에 묻어 속이 남아나지 않은 그런 상태에서도, 그분은 그런 나를 위로해 주셨다. 그래서 미안했다. 그래서 죄송했다.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이것밖에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어서 죄송했다.

2014년 4월 16일에도, 2022년 10월 29일 밤에도, 국가는 없었다. 현 정부는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라는 헌법 제34조 제6항을 어겼다.
국정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지금, 유가족들과 생존자들의 처절한 외침에도, 책임지어야 할 이들은 꿈쩍도 안 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일부 국민들과 언론을 비롯한 극우 단체들은, 유가족들과 촛불을 든 국민들이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를 정쟁의 도구로 삼아 현 정부에 반기를 들고 있다며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그럼에도. 2014년 여름에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내내 세월호 리본을 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어떤 이가 “중립을 지켜야 하니 그것을 떼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라고 질문하자, 교황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
결국 고통 앞에는 중립이 없고,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는 데 역시 중립은 없다. 신앙인이라면, 예수님을 믿는 이라면, 희생된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연대해야 할 의무가 있다.
세월호·이태원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소재를 밝히고자 함은 정쟁의 문제가 아니라 옳고 그름의 문제이다.

늘 부족하고, 의지를 행동으로 옮기기를 주저하며, 말로만 예수님처럼 살아야 한다고 나불대며, 그것을 위안 삼아 살아가는, 그런 나이기에, 이런 생각이 든다.
“과연 내가 이 글을 쓸 자격이 있을까?” 하지만. 유가족들에 대한 죄송한 마음을 생각하면,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다는 교황님의 말씀을 생각하면, 이대로 주저앉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자격이 없더라도 이러한 글을 써야 함을, 두 참사의 진실규명과 책임소재가 명백히 밝혀지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고 기억해야 함을, 다시금 다짐해 본다.
염치 불고하고 사제적 양심에 또다시 귀를 기울여 본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에게 ‘감히’ 호소한다. 부디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를 일상 안에서 틈틈이 기억해 주시어,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소재가 분명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생각으로 말로 행동으로 함께 연대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천주교 전주교구 교정사목전담
유 영 스테파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