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누리 뉴스레터

인권누리 웹진 제95호 회원의 붓

인권누리 2023. 1. 31. 10:19

봄이 오고 있다.

정관성

지난 주말 텃밭에 나가봤습니다. 봄동배추 조금, 시금치 조금을 캤습니다.
뭔가 많이 아쉬워 냉이를 찾아봤습니다.
서 있으면 보이지 않던 냉이들이 쭈그려 앉으면 보였습니다.
추위를 이기겠다고 파랗던 잎은 갈색으로 변했습니다.
땅을 파고 뿌리를 파내려 하니 땅이 얼어붙어 있더군요.
양지 바른 쪽에는 약간의 온기가 전해졌던지 그나마 땅이 덜 얼었고,
잎은 작지만 뿌리는 깊이 박혀 실한 냉이 몇 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추위를 잘 이겨내고 있었습니다.
설 연휴 동안 시베리아에서 내려온 북극한파가 한 동안 한반도를 뒤덮다 갔습니다.
중국의 동북지방과 러시아 동부는 공중에 물을 뿌리면 바로 얼음이 되는 기이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죠.
영하 50도 이하의 추위는 상상만 해도 온몸이 얼어붙고, 머리까지 띵하게 멈춰버리는 느낌입니다.
그런 중에 영화 <영웅>이 상영되고 많은 국민들은 애국심에 눈시울을 적셨다고 합니다.
영화는 보지 않았고, 앞으로도 볼 기회가 올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블라디보스톡, 이르츠쿠츠, 하바롭스키, 하얼삔, 북간도 어디쯤은 정말 추웠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안중근 의사, 최재형 선생, 홍범도 장군 등이 살던 시대에 추위와 공포 속에서 생활했을 분들을 생각하면 저절로 숙연해 집니다.
잠깐 재활용 쓰레기 버리러 가면서도 불평이 많은 우리 일상입니다.
지금도 국회 앞에는 10여 개가 넘는 천막이 즐비합니다.
노동법 개정을 위한 ‘노란봉투법’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은 헌법에서 보장한 노동쟁의를 막기 위해 사용자측에서 가하는 손해배상의 폭거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화물연대의 안전운임제 요구는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지만 농성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국회의원들이 춥다고 따뜻한 곳을 찾아다니며 자기 당에 뭐가 이익인지 따지고 있는 순간,
통치자가 노동개혁을 외치자 공정거래위원회까지 나서는 시절, 공정과 상식을 말하지만 자기 입으로 뱉은 실수 한 마디를 주워 담지 못하는 후안무치의 통치가 국내외에서 웃음거리가 되는 시절,
그들은 추위도 부끄러움도 없습니다. 단식과 농성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은 추위에 덜덜 떨고 있습니다. 속이 따뜻하면 어지간한 추위도 견딜 만 할 것인데요.
흔하게 사무실이 추원서 내복을 입어야 한다고 불평을 했습니다.
난방비를 아끼려고 거실 보일러를 끄며 겉옷을 챙겨 입었습니다.
사무실에 무릎담요를 갖다 놓아 앉을 때마다 둘둘 감아도 역시 냉기를 막기엔 부족했습니다.
거실에 이불을 갖다 놓고 아이들과 발을 비비며 TV를 보면 서로의 발에서 느껴지는 냉기에 놀라곤 합니다.
길거리 농성장과 비교하면 이정도 추위 아무것도 아닐 건데요.
2월 4일은 입춘입니다. 드디어 봄이 시작될 것이지만, 여전히 밤과 새벽엔 영하의 기온으로 한동안 추울 겁니다.
어느 날 갑자기 봄이 오진 않을 겁니다.
몇 번의 한파와 꽃샘추위가 다가올 것이고, 또 늦서리도 내릴 겁니다.
다만, 서서히 그리고 온 천지를 뒤흔들며 봄이 다가올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겨우내 땅바닥에 붙어 있던 냉이들도 꽃을 피울 것이고요.
그때까진 국회 앞 언 땅에 박았던 냉이와 같던 우리 이웃의 삶이 촉촉하고 부드러운 땅에 굳건히 뿌리 내리길...
자본과 기만집단이 말하는 개혁이 오기와 허구의 동토였을 뿐이어서 녹아 문드러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