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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사회를 위한 지식인 종교인 네트워크’ 시국논평18(2024.1.8.) <총칼 살인과 폭정 살인에 차이가 있는가> |
글쓴이: 김 영(인하대 명예교수)
새해를 맞아 봉하마을의 노무현 대통령 묘소에 참배하고 가덕도 신공항 부지를 방문하던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사악한 괴한의 날카로운 칼로 목에 자상을 입고 피를 흘리며 쓰러진 충격적인 피습 사건이 발생했다. 우리나라 현대 정치사에서 이런 야권 정치인에 대한 테러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일어났다. 그 대표적인 것이 1949년 해방 후 어수선한 정국 속에서 백범 김구 선생이 포병장교 안두희에 의해 경교장에서 암살 당한 사건과 1973년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가 유신반대 운동을 하던 야당 지도자 김대중 전 대통령을 바다에 수장 암살시키려 한 사건일 것이고,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도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이재명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신촌유세를 하는 도중에 쇠망치로 머리를 가격당하는 테러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렇게 독재 정권 아래 저질러진 비판적인 야권 인사에 대한 살인 폭력 사건은 그 시도 자체가 반인륜적 반생명적 범죄행위일 뿐만 아니라 사회 혼란과 민주주의의 왜곡을 가져온다는 면에서 반역사적 사건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와같이 칼과 총으로 사람을 죽이는 직접 살인 행위와, 온갖 악법과 법망을 동원하고 타락한 언론의 엄호를 받으며 저지르는 현 검찰독재 정권 하에 벌어지고 있는 간접 살인 행위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최근 이선균 배우의 죽음에서 보듯 교활한 검경의 무차별 압수 수색, 망신 주기와 인권유린에서 비롯된 사법살인, 노동자의 기본권인 노동 3권마저 인정하지 않으려고 노란봉투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해 노동자를 결국 막다른 죽음의 골목으로 모는 행태와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의 무리하게 강요된 노동으로 인한 과로사나 사고사 같은 죽음들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맹자(孟子)는 당시 양(梁)나라 혜왕(惠王)에게 힘과 공권력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패도정치(覇道政治)가 아니라 합리적이고 공감을 줄 수 있는 인의(仁義)의 왕도정치(王道政治)를 강조하면서 이런 질문을 던진다. “사람을 죽임에 몽둥이와 칼날을 사용하는 것에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양 혜왕이 차이가 없다고 하자 맹자는 다시 질문한다. “칼날로 사람을 죽이는 것과 폭정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에 차이가 있습니까?” 하고 다그친다. 양혜왕은 그래도 요즘 안면에 철판을 깐 검찰독재자들과는 달리 솔직하게 차이가 없다고 인정한다. 그러자 맹자는 임금의 푸주간에는 맛있는 고기가 넘치고, 마굿간에는 살찐 말이 있으면서도 들에 굶어죽은 시체가 넘치는 것은 짐승을 몰아서 사람을 잡아먹게 하는 짓이라고 질타했다.
맹자의 이러한 바른 말이 춘추전국시대에만 해당되는 것일까? 그 당시에는 그래도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민유방본(民惟邦本)이라는 생각과 백성이 우선이고[民爲重] 군주는 나중[君爲輕]이라는 기본적인 양식은 있었다. 그런데 21세기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을 지키겠다고 국민 앞에서 선서한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정작 권좌에 오른 뒤에는 헌법과 민주주의 정신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자기 수하의 검찰들을 정권의 요직에 앉혀 파당정치를 하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국민의 절반이 지지한 야당 지도자와 대화해서 국정의 협조를 얻을 생각은 하지 않고, 걸핏하면 야당 인사나 비판언론인들을 탄압하고, 압수 수색과 구속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있는 저들은 파시스트의 후예인가 군부독재자의 변종인가? 그런데 가장 심각한 문제는 자기들이 저지르고 있는 만행이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의 결여, ‘무지’에 있다. 자기가 검찰총장 시절 즐겨 사용해오던 검찰권의 자의적 행사와 부패 언론과의 더러운 유착 관계가 ‘검언 카르텔’인 줄 모르고, 적반하장격으로 생존에 허덕이면서 쉴 권리도 없고 법에 정한 노동 3권조차 누리지 못하는 노동자, 시민운동가, 과학연구자, 시민언론과 야권을 두고 ‘이권과 이념에 기반을 둔 패거리 카르텔’이라고 모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 있었던 방송계 인사도 ‘내로남불’하는 윤정권의 그런 행태 중 하나일 것이다. 방송분야에 아무런 경험이 없는 검찰 특수부 출신을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임명하고, 법조언론인클럽 회장 출신을 KBS사장으로 임명하는 검언카르텔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면서, 엉뚱하게도 의견이 다른 기존의 사람들을 적대시하느라 무조건 ‘카르텔’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 오죽하면 르몽드지나 뉴욕타임즈지 같은 외신들조차 윤정권이 낮은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검열과 통제라는 군사독재시대에 쓰던 언론탄압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비판하겠는가.
윤 정권이 들어선 이래로 자기들 검찰 집단의 이해와 의견이 다른 세력은 모두 좌파 국가전복 세력으로 낙인찍어 적대시하고 공격하는 파시즘 문화가 우리 사회에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정치사회적 극우화 흐름과 광화문 거리에서 ‘이재명 구속!’을 외치는 파시즘 세력의 외침이 결국 실제 이재명 대표에 대한 흉기 테러사건으로 실행된 배경이 아니겠는가. 정치적 의견을 달리하는 정당이나 단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정치풍토가 결국 남의 존재와 생명을 위협하고, 증오가 사람의 마음을 흐리게 해서 한 나라의 야당대표에 대한 살인 테러를 자행하는 일탈행동을 야기하게 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총칼로 사람을 찔러 죽이는 것과 포악한 정치로 사람을 못살게 구는 폭정 살인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고 본다. 관용과 상호존중, 인간에 대한 예의와 신뢰가 사라진 곳에서 증오와 폭력의 독버섯이 자라는 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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