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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147) |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남원 선원사입니다. 위치는 전북 남원시 용성로 151번지에 있습니다.
남원 시내의 평지사찰인 선원사는 시내에 자리하여 다소 의아함을 주지만, 통일신라의 승려 도선국사가 875년 창건한 사찰로 금산사의 말사입니다. 사적비에 의하면 도선국사가 남원의 센 기운을 진압하기 위한 사찰로 이 절을 창간하고 약사여래를 봉안하였는데, 초창기의 당우는 30동이 넘은 엄청난 사랑이었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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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사는 1597년 8월 정유재란 남원성 전투로 불에 타버려 1695년 당시 남원현감 김세평에 의해 중창불사가 이루어졌으며, 이때 대형 괘불탱 역시 조성된 것이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선원사의 괘불은 전란으로 유명을 달리한 고혼을 위한 천도재, 가뭄이 극심할 때의 기우제 등을 지낼 때, 좁은 사찰 경내에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없을 때는 요천 변에 괘불을 옮긴 후 의례를 지내왔다는 사실도 확인되는데, 이렇듯 선원사 괘불은 남원지역에서 행해지는 큰 의례가 있을 때 자주 모셔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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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사는 정유재란 남원성 전투의 만인의사의 영령을 달래기 위해 괘불탱화를 조성하여 수륙재를 지내왔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는 만인의사에 대한 제향이 일제에 의해 폐지되자 기우재 등으로 지역의 번영을 위해 기도하는 사찰로 변모를 하였습니다. 남원지역에서는 이러한 전통을 잇는 의미에서 지역의 모든 사찰 참여하여 전통의 예법에 따라 선원사 괘불을 모시고 수륙재를 봉행해 오고 있습니다. ‘조선 제일 남원의 대불화(朝鮮 第一の 南原の 大佛畵)’라는 선원사의 괘불은 석가모니가 그려진 불화로, 폭 5칸(약 9m), 길이 11칸(약 20m)에 이르는 조선에서 제일 큰 불화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 내용대로라면 지금의 아파트 높이로 약 7~8층에 이르는 실로 거대한 괘불로, 기사 제목대로 선원사 괘불이 나라 안에서도 손꼽히는 대형불화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때에 모셔졌던 이 대형 괘불은 훼손이 심해져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내용은 1921년 3월 수룡 채기선 스님이 주지로 있을 당시 이 괘불함이 손상이 심하여 고쳐 만들었다는 사실을 묵서에 남기고 있는 것에서 추정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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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선원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괘불은 아미타부처님을 본존불로 하고, 좌우 협시보살을 중심으로 상단에 제석천, 범천상 등 여러 권속들이 그려진 아미타불괘불입니다. 이 괘불의 조성 내력을 기록한 화기에는 일제강점기 후반부인 1942년 5월에 남원군수와 지역민, 그리고 인근 사찰의 시주로 새롭게 제작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이 괘불은 조선시대에 제작되어 일제강점기 때까지 모셔졌던 예전의 괘불보다 크기가 조금 작은 높이 약 9m, 넓이 약 6m에 이르는 역시 대형 괘불입니다. 현재의 선원사 괘불은 문화재 전문가의 고증을 마쳤으며, 근대문화재로의 등록을 진행 중에 있다고 합니다. ‘선원사 괘불재’는 국운융창과 남원발전을 염원하고, 오랫동안 남원지역의 큰 아픔으로 남아있는 정유재란 남원성 전투에 희생된 만인의사 수륙재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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