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비정규직 - 차별, 생존권, 노동인권
학생들은 학교 안전지킴이의 도움을 받고 등굣길에 나선다. 학교에 들어서면 기간제 교사, 스포츠 강사, 영어 강사 등에게 수업을 받는다. 그 사이 영양사는 식단을 짜고, 조리사와 조리원들은 음식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배식한다. 정규 수업이 끝나면 방과 후 강사가 학생들을 가르치고, 돌봄강사가 아이들을 돌보며, 모두가 퇴근한 이후에 학교에 출근하는 당직 기사들은 학교의 문단속과 경비에 힘쓴다. 그사이 교무실에서는 교무실무사가 접대업무부터 시작해서 학교업무를 보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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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017.6.29-
어느 정부든 고용의 문제는 지지율과 큰 상관관계를 가지기 때문에 많은 신경을 쓰는 분야에 해당한다. 하지만 고용에는 양도 중요하지만 질적인 내용도 중요하다. 이른바 나쁜 일자리만 양산하는 고용정책은 단기적인 처방에 그칠 뿐 근본적 치료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 이명박 정부는 경제성장이라는 허울로 쉬운 해고와 비정규직 및 단기 일자리 등 나쁜 일자리 양산을 계속해왔다. 이렇게 하면 데이터상으로는 고용률이 올라가고 청년실업이나 실직률이 줄어드는 착시효과를 가져오는 부수적 효과(?)도 있었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단기간에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데 학교만큼 좋은 먹잇감도 없었다. 전국의 수 만개 학교에 동시에 일자리를 만들면 한꺼번에 고용률을 높일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러다보니 학교라는 공간을 이용하여 단기 일자리로 비정규직종을 무수히 만들어 냈고 이는 자연스레 교육의 질이나 내용의 하락을 가져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이러한 정책은 박근혜 정부에서도 큰 차이 없이 유지되었고, 문재인 정부에서는 그나마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차별을 80%로 줄이고,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등 비정규직의 저임금 구조를 개선하겠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지지부진해 보인다.
학생들이 등굣길부터 하굣길까지 마주쳤던 이들 중 '정규직'이 아닌 노동자는 얼마나 될까.
대부분 사람은 학교를 생각하면 흔히 '학생'과 '교사'만 떠올리지만 학교 내에는 이들을 제외한 다양한 직종의 노동자들이 존재한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의 '2016 학교 비정규직 현황'에 따르면, 학교 비정규직 전체 인원은 교육공무직원(학교회계직원) 14만 1173명과 비정규직 강사 16만 4870명, 파견·용역 근로자 2만7266명, 기간제 교사 4만 6666명까지 포함하면 전체 약 38만 명에 이른다. 또한 이 중 학교 행정 및 교육 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교육공무직의 직종만 약 50여 개에 달한다고 학비노조는 설명하고 있다.
학교 비정규직 직종은 교육감 직고용과 임시교사 등 학교장 고용. 또 외부업체에 의한 간접고용 등 크게 세 종류의 계약 관계로 나눌 수 있다.
조리원, 교무실무사, 돌봄 전담사, 조리사 등 교육공무직원은 주로 교육감 직고용을 맺고 있다. 반면 정교사가 휴직하거나 파견을 갔을 때 임시로 채용되는 계약직 교사인 기간제 교사와 산학 겸임교사, 스포츠·예술 등 강사 직군 등 교육을 담당하는 비정규직은 학교장 계약이거나, 간접 고용이 이뤄지고 있다.
채용의 주체가 누구냐의 문제는 언제나 고용불안을 야기한다. 단기적이고 한시적인 일자리라면 모를까 상시적이고 지속적으로 필요한 인력이라면 비정규직 채용이 아니라 정규직을 채용해서 고용의 안정과 교육 질의 유지 및 상승을 도모해야 한다. 즉 교육청 차원의 인력관리가 되지 않을 경우 고용불안은 늘 따라오는 문제이고, 학교장 계약도 고용이 불안하지만 더 심각한 게 용역에 소속돼 간접 고용되는 직종이기도 한 것이다.
또 채용이 된 이후 노동의 대가를 지급하는 임금에서도 차별은 이어진다. 교육행정기관에서는 일부 직종은 교육감 직고용제로 바뀌며 ‘교육공무직’이라고 명칭도 바뀌었고 60살까지 정년이 보장되기 때문에 비정규직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임금인상도 쉽지 않고 승진, 승급조차 없는 상태에서 그저 고용만 보장하는 것은 계약 기간이 무기한일 뿐이지 이를 무슨 정규직이라고 표현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더불어 동일 노동을 하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임금격차가 매우 크게 나타나고 있는 것도 명백한 차별행위에 해당한다. 학교 노동자 간 커다란 처우 차이는 능력 차이에서 비롯되지 않는 것이며 실제로 대법원도 ‘부수적 업무 차이에 큰 처우 차이는 불합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차별을 시정할 것을 권고하고 있는 실정에선 더욱 그렇다.
학교비정규직의 고용과 임금, 노동조건 등의 차별과 비인격적 대우는 학생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
평등한 공간이어야 할 학교에서 차별을 목격하는 등 차별에 노출된 학생들은 또 다른 차별을 저지르기도 한다. “어른들이 서로를 차별하는 장면에 노출된 아이들은 은연중에 차별 피해자를 무시하게 된다거나 예의 없는 행동을 하기도 하고 직업 등 조건에 따라 사람을 다르게 대우해도 된다는 가치관이 심어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이러한 잘못된 가치관은 아이들 사이에서도 서로를 깔보거나 따돌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하기도 하며 서로 상처를 입히고 사회성과 인성에 문제를 일으키는 인권존중 상실의 도미노를 일으키기도 하는 것이다. 즉 사람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중하고 인정하기보다는 직업, 조건 등에 따라 차별하고 누군가를 따돌림 시키는 행동이 당연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심지어 차별의 가해자로서가 아니라 아이들 자신도 자신에 대한 평가를 외모, 성적 등 소위 '조건'과 '위치'로 규정하게 되면서 자존감이 낮아질 수 있는 차별의 피해를 경험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인권존중의 시작은 인권감수성 키우기부터이고 학교는 그를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학교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문화가 있는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차별에 대한 감수성을 약화할 수 있다. 또 (시험에 합격하여 자격을 가진다거나)한 번 이기면 모든 것을 다 가지는 승자독식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통용되는 분위기 역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학교는 단순히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수하는 곳이 아니라 공동체적인 가치를 깨우쳐 주고 인식하게 하는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학교는 사회적 문제가 되는 비정규직이 난무하고, 부당하고 관행적인 일과 차별이 당연한 듯 진행되면서 그러한 역할을 맡기에는 부적절해지고 있다. 따라서 미래의 사회인인 학생들에게 인권존중의 바람직한 가치를 교육하기 위해서라도 관례화된 차별과 불합리한 관행이 개선돼야 한다.
인류의 역사는 인권신장을 위한 끊임없는 투쟁의 역사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1세대 인권이 국가로부터 시민적, 정치적 자유권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이고, 2세대 인권이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획득의 과정이라면, 3세대 인권은 ‘나’를 넘어 ‘우리’를 향하는 연대의 인권이라고 한다.
인권은 ‘앎’을 넘는 ‘실천’이며, ‘약자를 향한 모두의 책임’이어야 한다.
서로를 위하고 서로를 지키며 서로를 향할 때 또 다시 우리의 삶은 진보할 것이다.
보편적 인권은 우리의 가정, 교실, 학교 등 가까이에 있는 작은 장소에서 시작된다.
각자 가진 개개인의 세계이지만 그곳에서 공평한 정의, 동등한 존엄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가깝고 작은 곳에서 이러한 권리의 의미가 없어진다면 그 어떤 곳에서도 의미가 없어진다. 보편적 인권이 나와 이웃, 직장에서도 실현되도록 함께 관심을 가지고 연대하는 행동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아이들 앞에서도 교육이란 이름으로도 부끄러워지는 것이다.
차별은 없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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