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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211) |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임실 소충사입니다. 위치는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성수면 산성로 725-23번지에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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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충사는 구한말 정재 이석용(李錫庸. 1877∼1914) 장군과 그의 휘하에서 활동하던 28 의사를 배향하는 사우(祠宇)입니다. 항일투쟁과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순절하신 충의열사의 호국정신을 계승하기 위하여 시설한 곳으로 항일독립운동의 산 교육장으로 많은 참배객이 다녀가고 있는 임실군의 대표적인 보훈시설입니다. 소충사의 부지는 임실군 성수면 오봉리산 130-1번지 일원에 부지 20,300평에 분묘 2기, 사당 20평, 기념관 43평, 관리사 20평 등의 시설로 2,365백만 원의 사업비를 투입하여 1992년부터 2002.11월까지 조성하였습니다. 지의동(知義洞)과 동룡동(東龍洞)에 있는 28 의사의 묘소는 1988년 5월 18일 성수면 오봉리 산 1번지로 임시 합장하였다가 1995년 11월 독립유공자를 위해 성역화사업으로 조성한 임실군 성수면 오봉리 산 130-1번지 소충사에 안장하였으며, 정재 이석용장군의 묘도 전남 영암군 월출산에서 같은 해 유족들의 천묘로 28 의사와 함께 소충사에 안장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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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충사의 인물 이석용은 구한말 1907년에 성수산 줄기 아랫마을의 29세 청년이었습니다. 이석용은 이 지역을 중심으로 의병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임실, 진안, 장수, 완주, 순창, 남원, 정읍, 장성, 함양 등에서 항일 독립 투쟁을 전개하였습니다. 그는 의병장으로서 국한문 혼용체 가사인 <격중가(激衆歌)>를 지었고, 이석용 의병 부대에서 이 가사를 노래로 불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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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바람 소슬(秋風蕭瑟)하니/ 영웅(英雄) 없이 때를 만남(得意時)이라/ 장사(壯士)가 없을 소냐/ 구름같이 모여든다/ 어화 우리 장사들아/ 격중가를 불러 보새/ 한양성중(漢陽城中) 바래보니/ 원수(寃讐)놈이 왜(倭)놈이요/ 원수놈이 간신(奸臣)이라/ 삼천리(三千里) 우리 강산(江山)/ 오백 년(五百年) 우리 종사(宗社) 어찌할까/ 아마도 의병(義兵)을 일으켜/ 왜놈을 쫓아내고/ 간신을 타살(打殺)하야/ 우리 임금(今上) 봉안(奉安)하고/ 우리 백성 보전(百姓保全)하여/ 삼각산(三角山)이 숫돌 되고/ 한강수(漢江水) 띠 되도록/ 즐기고 놀아 보새/ 우리 대한(大韓) 만만세(萬萬歲)” 드높은 사기와 애국 충정이 바로 드러나 있습니다. 성역화 작업 이후, 지의동과 동룡동에 있는 28 의사의 묘소는 1995년 소충사에 안장하였으며, 정재 이석용 장군의 묘도 전남 영암군 월출산에서 같은 해 유족들의 천묘로 28 의사와 함께 소충사에 안장되었습니다. 소충사에서 왼편 2.8km 위치의 삼봉리 마을에 이석용 장군의 생가터가 있고, 직선거리로 7km 거리에 소충사에 조성된 의병들의 부조와 동상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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