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대학의 배움 |
|
정관성(원광대 강사)
유교의 경전 사서 중 하나가 대학(大學)이다. 공부를 하는 목적을 다룬 책으로 윤리, 사회, 정치 등에 있어서 지켜야 할 덕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 등 8조목을 통해 개인과 세상의 이상적인 목표 달성 방법을 제시합니다.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는 흔히 언급되지만, “격물치지”는 생소한 면이 있습니다.
“스스로 자기 행동을 바로잡은 후에 가정을 바르게 하고 나라를 다스리면 천하가 평화로워진다”는 말은 쉬워 보이지만, 이보다 어려운 게 있을까 싶습니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세상에서 가정을 바로 세우고 나라를 다스린다니요. 정치를 하려면 멀고도 먼 자기 수양부터 막막하기만 합니다.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꾸린 가정을 잘 이끌어가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고요.
격물치지는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여 지혜에 이른다는 말입니다. 세상을 알기 위해서는 탐구하고 바로 알아 적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이런 성실한 노력과 바른 마음이 있은 후에 자기와 나라를 이끌어가라는 선현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최근 윤석열의 내란 사태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자기 수양”을 “자기가 원하는 지위에 오르는 것”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는 겁니다. 자기 수양을 과정이자 목적으로 보지 않고 그저 자격증이나 시험 합격 정도로 보는 수단이자 결과물로 생각하는 자들의 행태가 국가적 비극을 불러왔습니다.
지난 12.3. 내란 주동자들의 면면을 보면 서울대 법대와 육군사관학교로 대별되는 권력을 탐하는 자들의 결집을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대통령, 국방부장관, 정보사령관 등은 고등학교 동문으로 학맥으로 똘똘 뭉쳤고, 최고 국군 수뇌부 장성급 상당수가 내란에 동조하였습니다. 유신과 신군부의 7080 군사독재의 망령을 되살리려는 음모가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서울대 법대 출신 율사들의 준동은 가관입니다.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의 구속취소 신청을 받아준 법관은 법관의 양심에 따랐다고 하나, 그 이전 다른 범죄 피의자에게 한 번도 적용하지 않은 기준을 적용했습니다. 검찰총장 역시 즉시항고와 일반항고 하지 않고 바로 풀려나게 했습니다. 검찰총장이 수사지휘를 할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전국 검사장 회의를 소집하여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를 구치소 밖으로 걸어 나오게 했습니다. 이들의 선택적 인권 보호는 일관되지도 전례도 없는 한 사람만을 위한 “특별한” 인권이었습니다. 내란 피의자의 변호인 대부분이 또 서울대 법대 출신이거나 피의자와 인맥으로 엮인 사람들입니다. 법률 기술자들의 발호가 대단합니다.
법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기준입니다. 법을 지키라는 것은 딱 그만큼 행동하라는 뜻이 아니라, 적어도, 최소한의 규범으로서 법을 지키라는 뜻입니다. 특히 헌법은 국가의 운영과 국민의 권리를 규정하는 가장 기본이 되는 법으로 집으로 치면 기둥과 상량이고 사람으로 치면 뇌와 심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최소한의 규범을 자기들 마음대로 해석하고 우겨서 범죄 피의자를 돕고자 하는 자들은 넓게 보면 모두 해당 범죄의 공범이거나 방조범임에 틀림없습니다.
윤석열 탄핵 인용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법을 수단이나 자격으로 여기고 마음대로 해석하려던 자들에게 응당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합니다. 군인은 자신의 위치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무엇이 나라를 위한 것인지 생각해야 하고, 법률가는 법이 만들어진 배경과 의도가 무엇인지 판단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군과 나라의 운명을 책임진 대통령의 위치는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격물과 치지를 시험 답안을 찾는 것에서 고민하고, 자기들의 권력놀음에서 찾는 자들의 요망한 행동이 지난겨울부터 올 봄까지 많은 국민들을 괴롭혔습니다. 생방송으로 보여진 내란, 방송에 나온 피의자의 뻔뻔한 거짓말, 이를 옹호하는 율사 출신의 여당 대표 무리들... 이들의 본질을 많은 국민들은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멈춘다면 지난 사태는 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내란 세력은 서울대 법대, 육군사관학교 등 최고의 대학을 나왔습니다. 하지만 배움이 없습니다. 세상을 이해하려 하고 이웃에 대한 배려하려는 노력이 없던 탓입니다. <대학(大學)>에 나온 말 중에 “혈구(絜矩)”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물을 자로 재어 측량하듯 사람이 처한 상황을 헤아려 합당하게 처리하려는 삶의 방식이라고 합니다. 상하, 전후, 좌우를 돌아보지 못한 배움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했는지 배우게 됩니다. 대학을 나왔지만 대학의 가르침을 하나도 얻지 못한 통치자를 보며 우리도 배워야 합니다. 혈구의 자로 그들의 죄를 낱낱이 밝혀야 세상이 다시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는 것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