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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244) |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충남 서천 문헌서원입니다.
위치는 충남 서천군 기산면 영모리 82-1번지에 있습니다.
이번에는 충남의 뮨화유적지를 소개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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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 문헌서원(文獻書院)은 고려말 대학자 가정 이곡과 그의 아들 목은 이색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서원입니다. 목은 이색의 시호는 문정공으로 고려 후기 대사성, 정당문학, 판삼사사 등을 지낸 관리이자 학자입니다. 고려 말 삼은(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의 한 분으로 3년상을 제도화하고, 성리학 발전에 공헌하셨습니다.
홍살문 앞의 하마비입니다. 누구든지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문구가 비석의 표면에 적혀 있습니다. 각 궁궐의 정문 밖, 종묘 입구에 세웠으며, 성균관을 비롯한 각 지방의 문묘 밖 홍살문에 하마비를 세웠습니다. 왕이나 장군, 고관 성현들의 출생지나 무덤 앞에 세워 놓기도 하였는데, 말에서 내려 걸어가는 것이 이들에 대한 존경심의 표시이자 예의에 합당했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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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살문은 기둥의 색을 붉은색으로 칠하였고 상부에 설치한 화살모양의 나무살 때문입니다. 또 붉은색은 악귀를 물리치고 화살은 나쁜 액운을 화살 또는 삼지창으로 공격한다는 의미를 가졌다고 합니다. 문헌서원 진수당은 진수문을 지나니 강학공간이 나타납니다. 진수당은 문헌서원의 원생들이 학업에 정진하며 수양하던 강당입니다. 강당의 현판인 진수당은 주역에 나오는 진수덕업에서 가져온 말로 "덕을 쌓고 학업을 닦는다"는 뜻입니다.
장판각은 선현들의 문집이나 판각본을 보관하는 곳입니다. 장판각에는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인 '가정목은 선생문판'등이 보관돼 있습니다.
동재는 서원 강당의 동쪽 건물로 원생들이 수학하며 생활하던 기숙사입니다. 맹자와 중용에서 나오는 존양성찰에서 유래한 말로 '마음의 본성을 지키며 자기 잘못을 살피고 반성한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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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 이색 선생의 묘소는 문헌서원 좌측 언덕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기린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묏자리는 무학대사가 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묘 2기 중 하단에 있는 묘는 셋째 아들 이종선의 묘입니다.
문헌서원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25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서원은 1594년(선조 27)에 창건되었으며, 이곡· 이색의 위패를 모셨습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610년(광해군 2)에 한산 고촌으로 옮겨 복원했다고 합니다.
1611년에 사액을 받았으며, 이종학·이자·이개를 추가 배향했습니다.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69년 지방유림들에 의해 복원되었으며 이종덕을 추가 배향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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