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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지 못할 나의 스승 송준호 교수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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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종(역사학자, 원균의 진실 저자)
잊지 못할 나의 스승 송준호 교수님
아무래도 ‘나의 운명’이라고 말하는 편이 좋겠다. 지난날을 뒤돌아보면 굵게 패인 자국이 제법 뚜렷한 선으로 남아 있는 것이 보인다. “왜 하필, 내가 걸어온 길은 이런 모양으로 흔적을 남기는 것일까?” 요령 있는 설명을 하기 어렵지만, 그럴 때 ‘운명’이라는 말을 꺼내면 더 이상의 성가신 질문은 사라진다. 하지만 그 운명이라는 말 뒤에는, 결코 나 혼자만의 힘으로 이룬 것이 없다는 겸허한 고백이 숨어 있다. 사람은 결코 제 잘난 맛에 일어서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 스승의 애타는 보호와 눈물 어린 가르침 덕분에 비로소 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이제야 깊이 깨닫는다.
생각할수록 동학이 내 삶에 끼친 영향은 참으로 컸으나, 그 험난한 우회로를 포기하지 않고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나의 스승, 송준호 선생님의 지극한 사랑 덕분이었다. 1970년대, 사학과에 갓 입학한 나는 동학을 통해 시대의 아픔을 치유하고 싶었으나 현실의 벽은 높았다. 그때 만난 선생님은 고문서를 사회사 연구의 전면에 활용하신 선구자이셨다. 문과와 무과, 생원·진사 합격자들을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조선의 골격을 세우셨고, 하버드 대학교 왜그너(Edward W. Wagner) 교수와 공동 연구를 진행하며 한국학의 지평을 세계로 넓히신 석학이셨다.
선생님은 엄격하고 정밀하셨지만, 그 내면에는 제자를 향한 가없는 자애로움이 서려 있었다. 나는 3년 동안 선생님의 연구실에서 조수 노릇을 하며 그분을 모셨다. 연구실을 청소하고 고문서 자료를 베끼며 선생님의 원고를 정서하던 그 고단하지만 복된 시간들. 사실을 구체적으로 추적하는 선생님의 엄격한 지도 아래서 보낸 그 3년이 없었다면, 오늘의 학자 백승종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 삶이 벼랑 끝에 설 때마다 선생님은 기꺼이 당신의 어깨를 내어주셨다. 대학 1학년, 전 과목 A학점을 받은 이가 전 학과를 통틀어 나 한 사람뿐이었으나 등록금이 없어 학업을 포기하려 할 때, 문리대 학장이셨던 선생님은 당신의 일인 양 동분서주하며 장학금을 마련해 주셨다. 3학년 시절 심한 편두통으로 쓰러져 갈 때도, 선생님은 나를 이끌고 한의원으로 달려가 직접 처방을 챙기며 자식처럼 돌봐주셨다.
가장 잊을 수 없는 것은 1980년 1월의 추운 겨울날이다. 모교를 떠나 서울의 대학원에 합격하고도 빈손이었던 제자를 위해, 선생님은 당신의 월급 전액과 맞먹는 50만 원을 찾아 내 손에 쥐여주셨다. 당시 등록금 42만 1천 원에 서울을 오갈 차비와 요깃거리까지 세심히 헤아려 채워주신 그 돈은 당신의 아들에게 주시는 사랑보다 더 진하고 애틋한 것이었다. 나중에 장학금을 받아 절반을 갚아드리고 수년 뒤 나머지도 정성껏 돌려드렸으나, 그때 내 등을 떠밀며 "공부하라"고 호통치시던 그 목소리에 담긴 사랑은 영원히 갚을 길이 없다.
내가 머나먼 독일 유학을 결심한 것도 선생님의 영향이 컸다. 선생님께서 일찍이 미국의 하버드 대학교에서 연구하며 국제적인 시야를 얻으셨던 것처럼, 나 또한 독일이라는 낯선 땅에서 근대 역사학과 현대 유럽 역사학의 새로운 조류를 제대로 공부하고 싶었다. 그 지적 갈증의 결과로 펴낸 첫 책 『한국사회사연구』(일조각, 1996)에서 나는 선생님의 '안정론' 대신 '사회변동론'을 주장하게 되었다. 학문적 양심을 지키기 위해 스승의 견해와 대척점에 서는 글을 쓰며 나는 몇 번이나 붓을 멈추고 울었다. 이 결론이 평생을 바쳐 학문을 일구신 선생님께 얼마나 큰 상처가 될지 잘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역사 앞에 정직하라"고 가르치신 선생님의 엄격한 가르침을 따르기 위한, 제자로서의 눈물겨운 정진이었다.
이후 나의 학문적 관심은 동학으로 돌아가기 위한 징검다리로 조선의 예언서인 『정감록』에 머물렀다. 남들이 잡술서라 치부하던 그 기록 속에서 나는 지배 이데올로기에 맞선 평민들의 거대한 저항과 열망을 읽어냈다. 이러한 노력은 『한국의 예언문화사』,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 등의 결실로 이어졌고, 이는 결국 필생의 숙원이었던 동학 연구로 나를 다시 이끌었다. 겹겹의 세월을 돌아 도달한 동학의 길에서 나는 마침내 『동학에서 미래를 배운다』와 『해월 최시형』이라는 열매를 맺을 수 있었다.
현재 나는 원균연구회 회장으로서 『원균의 진실』을 집필하며 뒤틀린 역사의 매듭을 풀고 있다. 이 모든 여정, 양반 사회 연구에서 『정감록』과 동학을 거쳐 원균에 이르기까지? 사실 하나의 지점을 향하고 있다. 그것은 권력의 기록에 가려진 '역사의 숨은 진실'을 찾아내고자 하는 간절한 의지의 표현이다. 그리고 이 끈질긴 추적의 힘은 선생님의 연구실에서 고문서를 한 장씩 넘기며 배웠던 '구체적 탐구'의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길은 나뉘었으나 마음은 언제나 스승님의 그늘 아래 머물러 있다. 미안함과 고마움이 뒤섞인 이 길 위에서, 나는 오늘도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정직하고 구체적인 역사의 길을 묵묵히 걸어간다. 제자를 향한 그 극진한 사랑이 헛되지 않도록, 스승님의 존함에 부끄럽지 않은 학자로 남는 것만이 내가 공부를 이어가는 유일한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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