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답다?
각종 제한과 금지가 많을수록 닫힌 사회
'학생답다.'
나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참 난처하다. 수백만 명의 학생을 공통적으로 묶을 수 있는 '학생다움'이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매년 50만 명 이상이 학교에 들어오고 나가는 변화무쌍함과는 달리, '학생다움'이라는 말은 정의하기가 어려우면서도 너무나 견고하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도 당사자가 되어 들었던 말이고 교사가 되어서도 주변에서 자주 들리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역사도 참 오래됐지 싶다. 흔히 학생, 학부모, 교사를 교육의 3주체라고 하는데, '학생답다'는 말이 널리 쓰이는 것과는 달리 '교사답다', '학부모답다'는 왜 없는지 희한하기도 하다.
그렇다면 과연 학생다움이란 뭘까? 단정한 교복, 길지 않게 정갈하게 정리한 두발, 어른과 교사의 말을 잘 듣는. 사전에서 찾아보면 ‘–답다 (접사)라는 뜻은 일부 명사 또는 명사구 뒤에 붙어 성질이나 특성이 있음의 뜻을 더하고 형용사를 만드는 접미사’로 규정 되어 있다. 그렇다면 학생의 성질이나 특성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모 고등학생에게 학생답다는 말의 뜻이 뭐라고 생각하느냐 물으니 다소 격하게 답을 한다.
“학생답다는 말은 되게 답답한 표현인 것 같아요. 제일 화나는 말입니다. 어리다고 무시하고 학생이라고 억압하는 게. 수평적인 관계에서 나오는 표현은 아닌 것 같고, 누군가를 혼낼 때 혹은 그 사람들의 기준에 맞춰서 칭찬할 때 쓰이는 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학생에 대해 지적을 할 때 학생답다는 말이 튀어나오거든요. 그러니까 학생다운 게 뭔데요?
무조건 교복을 입어야 되고, 무조건 공부를 해야 되고, 무조건 쌩얼! 화장품 같은 거 바르면 안 되고. 용의 복장 준수하고 교칙을 쫙 잘 지키고. 학교 학원 집 학교 학원 집 공부 열심히 하라는 뜻?“
어른의 입장에서 보면 학생답다 라는 말은 학생 자신들이 원하는 ‘선택’보다는 강요되는 ‘의무’를 잘 따를 때 “가장 학생답다”는 고정관념이 아닐까 싶다. 학생다운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쉽게 정의하지 못하지만 학생답지 못한 것에 대한 얘기는 장황하게 기술할 수 있는 그런. 이것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내 말 잘 따라라”.
‘학생다움’을 강조한다면 여학생들이 입는 미니스커트도 학생답지 못한 것이고, 남학생들이 근육을 키우는 것도 학생답지 못한 것 일수도 있다. 그런데 왜 이런 것들은 규제 하지 않을까? 그리고 학생답다는 정확한 기준도 없기 때문에 결국 학생들을 선생님을 비롯한 어른들의 가치관에 맞추려 하는 것 밖에 안 된다. 짧은 머리는 군대를 많이 연상시키는데 학생들 모두를 똑같이 스포츠머리로 한다면 이 또한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학생답지 못한 것 일수도 있는 것 아닐까? 현대사회는 개개인의 개성이 중요시되는 다원화사회라고 학교에서는 가르친다. 하지만 학교에서 개성을 짓밟는 다양한 행위를 학생답지 못하다며 규제하는 것은 명백한 모순이며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학생답다는 정의하기 어려운 말로 제한하고 금지시키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난 네가 교복을 입고 머리를 안 꾸몄으면 좋겠다.’ 이렇게 말하면 되는 거 아닐까? 억압하고 구속하는 애매한 단어보다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할 때 외려 더 토론이 이루어지고 합의가 되지 않을까? 교육의 목표에 대해 성찰하고 학생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본다면 진짜로 학생다움이라는 건 기존에 있던 가치 규범을 회의하고 저항하고, 그러면서 자신만의 가치 규범을 새로 만들어가는 그런 게 사실 학생다운 것일 것이다.
2014년 청소년공동행동 아수나로에서 활동하던 따이루의 외침은 학생답다 라는 말에 대한 큰 성찰을 주고 있다.
학생에게 두발단속을 하고, 복장 제한을 하고, 공부에만 올인하게 만들고, 말 안들으면 때리고, 불공평한 규칙을 만들어 단속하는 행위를 하면서 이를 잘 따르면 학생답다고 칭찬하는 것은 아닐까?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는 북한에 대해 인권탄압국이라고 하고, 민주주의가 아니라 군대처럼 강력한 힘에 의해 지배되는 국가를 독재국가라 하고, 신도에게 교주가 정해준 사람과 결혼할 것을 강요하는 종교를 사이비라 하고, 여성에게 히잡 착용을 강요하는 종교나 국가를 인권후진국이라고 가르치면서 위와 같은 말은 대한민국 학교에서 상식으로 통용되고 있다.
만일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사는 8세~19세의 사람들은 자기 머리 길이를 자기가 정할 수도 없고, 자기가 입을 옷을 자기가 고를 수도 없대. 자기 얼굴 모양과 색깔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대.
금기와 제약이 많을수록 닫힌 사회라고 했다. 우리 안의 타자가 너무 많다.
과거의 '학생다움'이란 순종하는 학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지시에 잘 복종하고 규율을 잘 따르는 학생에게 '학생답다'는 표현을 썼다. 그러나 이런 학생상은 수동적이고 자율적이지 못한 학생의 모습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학생상에 일제 군국주의 시대와 과거 군사문화의 잔재가 남아있었다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학생다움'은 어떤 것일까? 누구나 자율성을 이야기하고 민주시민을 이야기한다. 그렇기에 사실 '학생다움'은 '인간다움'을 의미해야 한다. 학생도 인간이고, 인간인 이상 자율성과 주체성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또 한편 인간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인권을 존중하고 배려해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학교의 규율이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 말라'가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괴롭혀서는 안 되는 것이다. 군사부일체라서 교사를 존중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도 인간이고 자신과 교육을 통해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학생은 교사를 존중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대의 학생다움은 '인간다움'으로 재구성 될 필요가 있다.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인간다운 것인지'를 학생들 스스로에게도 끊임없이 묻고, 그들에게 충분한 정보와 교육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그럴 때에 이 시대의 '학생다움이란 어떤 것인지'가 구체화될 수 있을 것이다.
학생은 자신다움에 대해 알지 못하는 데, 학생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학생다움은 어른이 되고 싶은 학생과 학생다움의 기억을 지키고 싶은 어른의 끊임없는 대립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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