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 제정.
(문제는 성적지향 자체가 아니라 차별행위의 금지이다.)
우리 헌법 제10조 에서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또 제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법 규정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형태의 차별이 존재하고 지속되고 있다면 그 차별행위는 즉시 제지되어야 하고 차별을 행하는 당사자나 개인에게 그에 따른 책임을 물어야 한다. 공동체 정신과 도덕적 가치를 바탕으로 하는 법에 의한 간섭은 자유를 해치는 행위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차별금지법은 제정되어야 하고 이 법은 논쟁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당위에 해당한다.
차별은 어떤 사회에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더군다나 학생을 교육하는 학교에서는 더욱 차별이 용인되어서는 안된다. 교육이란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타인을 배려하며 자신을 가꿔가는 과정이라 했을 때, 동일한 집단끼리 그룹 짓고 타인을 괴롭히거나 조롱하는 차별은 용납할 수 없는 범죄행위에 가까운 것이다. 실제로 다문화학생에게 외모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거나, 왕따나 집단 괴롭힘의 행위도 차별의 차원에서 대응하고 심지어는 강한 처벌을 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에서 성적 지향도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차별의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
2004년 국가인권위원회는 헌법의 '평등' 이념에 따라 정치·경제·사회·문화적인 모든 방면에서 어떠한 이유로든 불합리한 차별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18가지 종합차별금지법(성별·종교·장애·나이·사회적 신분·출신지역·출신국가·출신민족·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 여부·임신 또는 출산·가족상황·인종·피부색·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전과·성적지향·병력 등) 제정을 추진하였고, 그 결과 2007년 입법예고까지 되었지만 두 가지 큰 벽 앞에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바로 기업과 개신교계였다.
재계에서는 학력과 병력에 대한 차별 금지가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막는다는 이유로 반대 의견을 제시하였고, 개신교계에서는 성적 지향에 대한 차별 금지(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 등 성 소수자를 사회적으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는 사실상 동성애 합법화나 다름없다는 이유로 이 법안의 입법에 강력하게 반발하였다.
재계의 반발은 일시적이었고 결국 사그라들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이러한 차별금지법 중에 제일 논란이 되는 것이 성적지향 즉 동성애와 관련한 것이다. 기독교, 유교, 이슬람교 등 일반적으로 널리 퍼진 종교에서는 대개 동성애에 반대하는 교리를 가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동성애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종교는 기독교 중에서도 특히 개신교와 이슬람교다. 같은 기독교 계통이지만 천주교에서는 교황이 직접 “동성애에 반대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동성애자를 차별하면 안 된다.”는 공식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또한 2008년 유엔 인권이사회가 한국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한 바 있고, 보수적 지향이 뚜렷한 박근혜 마저도 대통령 후보시절 차별금지법 제정을 공약한 바 있으나 이 역시 2013 보수단체 반발로 입법이 무산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런 우여곡절 끝에도 지방정부와 시도교육청들은 도민인권조례나 학생인권조례 등을 통해 부분적으로 차별금지 조항을 삽입하여 권리보장에 노력하고 있지만 지역에 따른 임시방편적 한계는 명확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른바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에서는 차별금지법제정에 대한 기대를 하기도 했지만 그 역시 지금까지의 논란을 의식한 듯 차별금지법제정이 시기상조이며 국민의 의견 수렴이 더 필요하다는 이유로 머뭇거리고만 있는 실정이다.
이런 와중에 지난 2017년 충남도의회는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동성애까지 옹호·조장하는 것을 반대한다면서 지난 2012년 제정된 “충남도민인권조례”를 폐기하였다. 이는 보수정당인 자유한국당과 일부 기독교 우파가 손을 잡고 벌인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인간 기본권을 부정하는 만행에 가까운 일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학교에서 학생이 LGBTI(레즈비언,게이,바이섹슈얼,트렌스젠더,인터섹스)임을 커밍아웃했거나 아웃팅을 당했을 때 대개의 경우 다수자로부터 배척받아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하기 어렵고 자퇴를 권고 받고 있는 실정이며, 그러다보니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발견하는 청소년기에 이를 음지로 감추고 괴로워하며 심각하게는 자살에까지 이르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성적지향은 규탄 받고 죄악시되며 회피되어야 하는 대상일까?
여기서는 성적지향이 성적취향인지 정신이상 등 고쳐야 할 질병인지의 정치적 종교적 도덕적 논쟁은 걷어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상태의 사람이라도 차별받거나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것으로만 따져봐야 한다. 즉 논점은 성적지향 자체가 아니라 삶의 방식을 결정할 때 각기 다른 개인은 저마다 다른 선택을 내린다는 사실을 존중한다는 것이다.
사회심리학에서 차별은 행동적인 범주에 들어간다고 한다. 즉, 구체적으로 자신의 기호에 맞게 타인을 가려 혜택을 차등화하면 그것이 곧 사람에 대한 차별이 되는 셈이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차별은 타당한 이유가 있을 때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변호사를 뽑는데 변호사 자격증이 없는 사람을 고용할 수 없으며, 교사를 뽑는데 그에 합당한 학력이나 지식이 없는 사람을 신임할 수는 없듯이 이런 부분을 차별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이를 성적지향의 문제로 대입해보면 자신이 개인적으로 동성애를 반대하는 언행을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공식적인 행위로 차별할 때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가령 교사로서 자신이 동성애를 반대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과 동성애를 가진 학생에 대한 교육을 거부 하거나 혐오표현을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여름종교학교 등 특정한 목적을 가진 교육의 공간에서 특정한 대상에게 교육을 하는 것을 인정할 순 있겠지만 공공목적의 공교육기관에서 성적지향을 이유로 교육을 거부하거나 혐오표현을 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행위에 해당한다.
또한 입학 면접을 했는데 이것저것 물어보니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입학허가를 안하겠다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고, 뽑고 보니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교육을 거부해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불효자식이다, 인륜에 어긋나는 짓을 했다, 더럽다. 등 혐오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차별이고, 험한 언사를 하진 않았지만 그냥 이런 저런 행태로 차별을 해도 안되는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이러한 공공연한 차별이 발생하고 있다면 그를 법으로 금지하고 차별을 없애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은 국가와 공동체의 의무에 해당한다. 즉 차별금지법이나 인권조례는 동성애를 옹호하거나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가르키는 해는 안보고 손가락만 보며 “성적지향”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소스라치게 놀라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그러하기에 공동체유지와 인간존엄성 실현의 차원에서라도 차별금지법은 반드시 제정되어야 한다.
미국에서 정의론으로 유명한 학자 롤스는 “정의의 원칙으로 모두에게 평등한 기본적 자유와, 가장 불리한 사회구성원들에게 혜택을 주는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차등원칙)완화”를 제시하고 있다. 동성애를 옹호하고 조장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성정체성을 가진 사람일 지라도 그와 같은 이유로 차별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이고, 이러한 차별은 공공선의 실현도 아니고 그저 종교적 신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따라서 차별을 가하는 사람과 기관에 불이익을 주는 차별금지법의 제정은 사회공공선 실현과 정의의 원칙에도 부합한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종교인의 입장에서 봐도 인간의 존엄성을 그 자체로 유지시켜가자는 주장은 사람 사랑의 종교가 추구하는 이상과도 일치하며, 어떤 종교 행동이 차별조장이나 헌법, 사회 가치를 침해한다면 그것을 종교 자유라고 포장할 수도 없다. 심지어 근본주의 개신교보다 더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천주교에서마저 동성 간 육체관계나 동성결혼은 단호히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동성애자를 사회적으로 차별하거나 증오하거나 폭력을 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공식 가르침이다.
이제는 차별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고 더 나아가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수순으로 우리의 공공선을 실현해야 한다. 보수 종교계가 큰 목소리를 내고 있는 미국에서도 “연방대법원은 동성 간의 이른바 비정상적인 성행위를 금지하는 법이 위헌이라고 판결”한 바 있고 상당수의 주에서 동성결혼 합법화마저 시행하고 있고, 가장 최근인 2018년 독일에서는 남성 여성이 아닌 제3의 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법이 개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치는 여전히 이 문제를 비켜가고 있다. 아니 애써 회피하고 있다. 지난 2017년에도 유엔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 위원회는 대한민국 정부에 성별·연령·인종·장애·종교·성적 지향·학력 등이 포함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다시 한 번 권고한 바 있지만, 자유주의에 기반하여 사회적 복지나 안전망 등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참여정부와 비슷한 철학을 가진 문재인정부에서 마저 차별금지법을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실망스럽다.
비록 소수정당이긴 하지만 정의당은 원내 정당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당론'으로 채택하였고 이번 국회에서 입법화를 추진하겠다니 응원하고 기대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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