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누리 뉴스레터

웹진 제 23호 오동선 교사의 인권이야기

인권누리 2021. 9. 17. 16:09

난 선생이고, 넌 학생이야 - 통제와 억압으로 작동하는 학교생활규정

 

 

옷차림 하의는 무릎 위로 10cm이상 올라가지 않도록 한다.

선크림외의 색조화장은 일체 금하며 색조 화장도구를 소지할 수 없다.

스타킹을 신을 경우 어른용이 아닌 청소년용 스타킹을 신는다.

본교 학생은 학생으로서 본분을 다한다.

휴대전화는 등교직후 제출하고 하교 후에 찾아간다.

공식적인 집회는 학교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학생회 회원은 학교 운영에 관한 사항을 의결할 수 없다.

학생회에서 의결된 사항은 학교장 승인을 받아야 효력이 발생한다.

엘리베이터는 위급한 경우나 탑승증이 있는 경우만 탑승한다.

교사는 학생의 자유 시간(쉬는 시간) 제한 및 금지를 할 수 있다.

학생 등교시간은 810분부터 40분까지 한다.

 

초등학교 학교생활규정컨설팅을 갔다가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오는 문장들을 봤다. 인권조례가 만들어진 뒤 그렇게 인권교육하고 생활규정 개정 권고하고 연수도 진행했건만 용기가 대단하다.

심지어 이 생활규정은 20182월 개정판이다.

 

왜 이런 규정을 만들었냐고 하니 민주적 절차-대표 학생들의 동의와 학부모 대표들의 동의-“를 거쳤으니 문제없다고 한다.

학생의 권리를 자의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인권침해라고 하니, 그럼 교육을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며 교육상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교사나 학생이나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권리는 같이 가지고 있는 거라고 말하니, 교사와 학생은 다른 거고 교사와 학생을 비교해서 말하지 말란다.

이런 내용은 교육관련 법률 및 학생인권조례와 교육청 지침 위반이라고 하니, 조례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거냐고 되묻고 나서 참 대단한 전북교육청이라는 비아냥으로 되돌려준다.

 

그동안 무수히 많은 생활규정을 봐왔고 개선권고도 해왔지만, 또 인권조례가 만들어 진 이후 상당수 학교가 인권 침해적 조항을 수정하고 있는 와중에 이런 당황스러운 규정과 교원들의 인식은 참 오랜만이다. 마치 10년 전 인권논쟁을 할 때 부르르하며 토론했던 그 시절이 떠오를 정도다.

인권 침해적 조항을 수정하고 생활지도시 인권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하시라고 권고했더니, 마지못해 교사들과 논의해보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 학교 선생님들이 얼마나 학생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지도하고 있는지 구구절절 설명해간다.

결국 옥신각신 하다가 인권침해조항 삭제하고 인권보장 내용을 첨가하셔야 한다고 말하고 마무리 했지만 별로 귀담아 듣지 않는 눈치다.

 

 

교문에서 두발검사, 복장검사를 하는 교도관(교사)과 수감자(학생)의 만남이 어색하지 않은 것이 바로 한국의 학교문화이고, 그것이 입시라는 집단추구의 목적과 만났을 때 학생들은 통제의 대상이 된다. 통제의 대상이 되다 못해 그것을 넘어 학생에 대한 교사의 적당한폭력은 교권으로 옹호되기도 한다. 한국의 학교문화는 아직까지도 평등하고 평화로운 공간이라 칭하기 쉽지 않은 곳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 1조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정의 하고 있다면 대한민국 공교육의 일차적소명은 학생들을 민주/공화국의 구성원으로 길러내는 것이어야 한다. 학교에서 인간의 권리를 배우고, 민주적 협의와 합의의 과정을 학습하고 실천해가는 과정을 통해 공화국의 구성원으로 성장시켜가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른바 서울대 한 줄서기로 대표되는 입시위주의 경쟁시스템 속에서 다른 덕목은 모두 배제된 채 오로지 학습과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학생을 길러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학교문화가 민주적이고 평등하게 되기 위해서는 제도의 개선도 필요하지만 일차적으로는 교육활동을 통해 배움과 성찰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그 중심에 학교생활규정이 있다. 학생을 통제하고 관리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민주적 절차와 의견수렴을 통해 모두가 함께 노력하는 학교의 규칙으로 자리매김되어야 한다.

 

그동안 불합리한 학교생활규정이 문제가 된 경우는 너무도 많다.

서울 A중학교 학생들은 기온이 영하 10도까지 떨어진 지난달 초 등교할 때 외투를 모두 벗고 교문을 통과해야 했다. 이 학교는 교실 내에서도 추위의 정도와 관계없이 외투를 입는 것을 학칙으로 금하고 있다

B고등학교의 교칙에는 학생의 휴대폰을 수업 전 모두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또 휴대폰을 미제출하거나 수업 중 소유한 것이 적발될 경우 학교가 압수 보관하며 압수 기간은 교사 재량으로 정해진다. 이렇다 보니 압수 기간은 반나절부터 한 달까지 교사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학생이기 때문에 제한 받는 대표적인 것이 두발복장에 관한 규정이다. 여학생의 머리카락이 어깨선을 넘으면 묶도록 하고 교복 상의 단추는 항상 채우도록 강제하는 학교가 많다. 치마는 무릎선 중간까지 와야 하고 주름은 몇 까지 박아야 한다. 또 스타킹은 살구색만, 양말은 흰색만 착용할 수 있으며 심지어 속옷색깔도 규정하기도 한다. 외투와 구두까지 교복과 함께 맞추도록 강요하는 학교도 있다. 이밖에 선크림이나 립밤 등을 금지하는 화장품 사용 제한 규정, 반지 목걸이 귀걸이 등의 액세서리 착용 제한 규정, 미제출 휴대전화 압수 규정 등도 있다. 추운 날씨에도 교문을 통과할 때 외투를 벗도록 하고, 실내에서는 외투 착용을 금지한 규정은 도대체 왜 필요한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불합리한 규정이 불러오는 부작용은 적지 않다. 학생자치회나 선도부 등의 이름으로 규정 집행을 위임 받은 학생과 단속된 학생 간의 갈등이 야기되기도 하고, 규정에 대한 교사들의 태도가 일관되지 않은 탓에 차별 논란이 학생들 사이에서 불거지는 경우도 있다. 또 교사들 역시 자신도 납득하기 어려운 규정을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것에 심리적 갈등을 겪기도 한다.

 

불필요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규정 제개정 과정에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되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이미 국가인권위원회는 학교 내 모든 구성원의 실질적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야 학교 교칙이 온전한 학교규범으로 효력을 가질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학교생활규정이 불합리하게 되어있다면 합리적으로 개정하는 활동이 필요하다. 대개의 학교생활규정은 학생지도와 통제를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교사중심으로 작성되어 있거나 불필요하게 학생을 억압하는 배후근거로 작동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생활규정을 개정할 때 중요한 것이 규정의 내용과 함께 당사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라 할 수 있다. 규정을 주요하게 적용받는 학생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합리적으로 개진하고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노력이 보장될 때 개정된 규정은 학교자치법규로서 유효한 효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일례로 전주 오송중학교에서는 민주적 학교생활규정개정을 위해 장장 6개월에 걸쳐 교사/학생/학부모가 참여하는 치열한 토론을 거쳐 개정작업을 진행하였다. 초안을 작성하고 학생들과의 토론을 통해 쟁점을 정리한 뒤, 다시 토론회와 공청회를 개최하고, 비슷한 과정을 수차례 반복하며 모두가 만족할 수는 없지만 다수가 동의하는 규정을 만들었다. 그 결과 학생들 스스로 규정을 잘 지키려 노력하는 모습이 나타났고 심지어 학교폭력도 현저하게 줄어드는 놀라운 결과를 낳았다.

이는 규정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적극 참여하면서 규정의 세부내용을 인지하게 되었고 그 규정을 잘 지키려 하였으며, 교사들도 관행적으로 지도해오던 것을 넘어 규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생활지도를 실시하고, 학부모 또한 정당한 규제에 대해 이해와 동의를 하면서 교사/학생/학부모간 마찰도 줄어들고 사안이 발생할 때 합리적인 토론문화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면서 교육적 효과와 학교생활만족도 높아진 것이다.

 

학교 내 자치법규로서 학교생활규정은 통제와 억압의 기제가 아니라 민주적이고 평등하며 합리적인 것으로 채워져야 한다.

인권 친화적 학교 만들기의 제도적 시작은 교육공동체의 인권을 존중하는 학교생활규정에서부터 비롯된다.

 

 

<참고> 각 시도 학생인권 조례에서 학생인권·자치와 관련된 주요내용

 

(학습에 관한 권리)

학생은 법령과 학칙에 근거한 정당한 사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학습에 관한 권리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학교의 장은 교육과정을 자의적으로 운영하거나 학생에게 임의적인 교내· 행사 참석을 강요하여서는 아니 된다.

(정규교과 이외 교육활동의 자유)

학교의 장은 학생에게 야간자율학습, 보충수업 등 종례 이후 실시되는 정규교과 이외 교육활동을 강요하여서는 아니 되며, 정규교과 이외 교육활동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주어서는 아니 된다.

(휴식을 취할 권리)

학교의 장은 정규교과 시간 이외 교육활동을 강요함으로써 학생의 휴식을 취할 권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개성을 실현할 권리)

학생은 복장, 두발의 길이모양색상 등 용모에서 자신의 개성을 실현할 권리를 가진다.

(사생활의 자유)

학생은 학교의 부당한 간섭 없이 개인 물품을 소지·관리하는 등 사생활의 자유를 가진다.

교직원은 학생의 동의 없이 소지품을 검사하거나 압수해서는 아니 된다. 소지품의 검사 또는 압수는 학생과 교직원의 안전을 위하여 긴급한 경우에 필요한 최소한에 한하며,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일괄검사는 지양하여야 한다.

교직원은 일기장이나 개인 수첩 등 학생의 사적인 기록물을 열람하여서는 아니 된다.

학교의 장은 학생의 휴대전화기, 그 밖에 전자기기의 소지 자체를 금지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학교의 장은 수업방해의 방지 등 교육목적상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 이 조례 제19조제2항에 정한 절차를 거쳐 정하는 학교의 규정으로 학생의 휴대전화기 사용과 그 밖에 전자기기의 소지를 규제할 수 있다.

(표현의 자유)

학생은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학생은 서명이나 설문조사 등을 통해 학교 구성원의 의견을 모을 권리를 가진다.

학생은 집회의 자유를 가진다.

(자치활동의 권리)

동아리, 학생회 그 밖에 학생자치조직의 구성과 운영 등 학생의 자치 활동은 보장된다.

학교의 장은 학생자치조직의 구성과 운영 등 학생자치활동의 자율과 독립을 보장하고 학생자치활동에 필요한 시설과 행·재정적 지원을 하여야 한다.

학교는 성적, 징계를 받은 사실 등을 이유로 학생자치조직의 구성원 자격을 제한하여서는 아니 되며, 학생자치조직의 대표는 보통·평등·직접·비밀 선거에 의해 선출된다.

학생자치조직은 다음 각 호의 권리를 가진다.

1. 학생자치활동에 필요한 예산과 공간, 비품을 제공 받을 권리

2. 학교운영, 학교 규칙 등에 대하여 의견을 개진할 권리

3. 학생자치조직이 주관하는 행사를 자유롭게 개최할 수 있는 권리.

(학칙 등 학교 규정의 제개정에 참여할 권리)

학생은 학칙 등 학교 규정(이하 학교규정이라 한다)의 제·개정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학교의 장은 학교규정의 제·개정 과정에서 학생들의 의견을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절차를 거쳐 수렴하여야 하며, 학생회 등 학생자치기구의 의견 제출권을 보장하여야 한다.

(정책결정에 참여할 권리)

학생은 학교 운영과 교육청의 교육정책 결정과정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학교의 장과 교직원은 학생대표와의 면담 등을 통하여 정기적으로 의견을 청취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학생대표는 학생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관하여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석하여 발언할 수 있다.

교육감과 학교의 장은 학생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항을 결정할 때에는 학생의 참여를 보장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