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까지 하면서 하고 싶은 교육이 뭔데요?
얼마 전 오후 모 초등학교로 학생인권교육을 갔다. 인권업무담당교사가 주관하여 학급별로 들어가서 하는 방식의 교육이었다.평소 하던 대로 인권감수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본격적으로 한참 수업을 진행하며 신체의 자유, 차별받지 않을 권리 등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 자연스레 학생들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아니 속상함을 토로한다.
"선생님이 폭언을 자주해요. 단체기합도 자주 받아요. 맞기도 해요." 등
이게 무슨 소리지? 당황하며 그제야 교실을 찬찬히 돌아보니 황당한 것이 많이 보인다.
대개 초등학교에서 으레 그렇듯 교실 뒤편이나 창문에 아이들 작품을 걸어두며 환경정리를 하고 사물함과 책장 등이 비치되어 있는 등 다른 일반적 교실과 비슷한데 칠판을 좌우로 눈에 띄는 것이 발견된다.
'앞문 출입금지'
이건 뭐지?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교실의 앞문으로 학생은 출입하면 안되는 거란다.아니 대체 왜?
그리고 나서 칠판 왼쪽을 살펴보니 큼지막하게 붙어있는 학급규칙은 더 당황스럽다.
6학년 사회 민주주의 단원에서 제제를 선택하여 학급회의를 통해 학급 헌법 만들기를 시행한 흔적이었다.
이 규칙에서 서로 지켜야 할 사항은 그렇다 인정해도(규칙 중에 “예쁜 척을 하지 않는다.”는 뭐지? 도대체 그게 뭘까. 그리고 누가 어떻게 예쁜 척을 하는 거라고 판단하고 벌칙을 부과 할 것인지.) 문제는 규칙을 어길 시 처벌조항이었다.
학생이 잘못하면 벌금을 내고, 오리걸음을 하고, 깜지로 반성문을 쓰고 등등 요즘 시대에 맞지 않은 용감한(?) 학급규칙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었다.
물론 벌금을 걷어서 선생님이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지 않았을 거라는 것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학교가 사법기관도 아니고 벌금을 거출하는 것은 거칠게 표현하면 금품갈취에 해당한다. 또 오리걸음을 시키거나 무릎 꿇고 반성을 하게 하는 행위는 현행법에서 금지한 체벌행위에 해당한다.
한 시간 강의하는 외부강사에게 쏟아내는 학생들의 말을 모두 신뢰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자세한 사정도 들어봐야 하겠지만, 교실의 흔적들을 보며 도저히 이건 아니지 싶어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이 하교한 뒤, 담임선생님께 잠시 면담요청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외려 격앙된 어조로 항변을 한다.“학급규칙은 교사가 개입하지 않고 학생들 스스로 민주적으로 만든 거라 문제가 전혀 없고, 인권 인권이야기 하시는데 이런 작은 것들까지 인권침해라고 한다면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라는 거죠?”
오히려 너무 당당한 태도에 문제를 제기한 내가 더 당황스러웠지만 차분히 설명을 해본다.
학급규칙을 민주적으로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이 상위법을 위반하거나 인권 침해적이고 반교육적이라면 원인무효에 해당한다. 아이들이 감정에 치우쳐 서로의 인권을 침해하는 결정을 하려 할 때 교사가 설명하면서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아이들끼리 절차적 민주주의를 거쳐 만들었다지만, 결과적으로는 교사가 인권침해에 동조하고 벌칙을 집행하면서 인권침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인권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개정하셔야 한다.
또 앞문을 교사만 이용하도록 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에 해당한다. 교실은 교사만 쓰는 공간이 아니고 함께 사용하는 곳이다. 물론 수업도중에 앞문을 사용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수업을 방해받지 않는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지만 일상적으로 앞문사용금지를 하면 안된다.
이런 식으로 차분히 30분 정도 이야기했지만 받아들이지 않고 감정만 격해진다.
어느 개인이나 조직(또는 제도)과 관념이 사회 속에서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고 그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널리 인정되는 영향력을 지닐 경우 이 영향력을 권위라고 부른다. 교사의 교육적 권위는 교사가 학생들에게 존경과 신뢰를 받음으로써 자발적으로 따르게 하는 정신적인 힘을 말한다. 이러한 권위가 자발성이 없이 힘에 의한 통제로 작동 될 때 권위는 무너지고 억압과 통제만 남는다.
교사가 학생을 파악하고 지도하는 가장 오래된 방식으로, 학생이란 본래 무지몽매하고 사고가 발달하지 않은 존재여서 교사가 관념·지식·생각 등을 가르쳐 규율이나 생활의 틀을 만들어줌으로써 비로소 인간답게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게 된다고 하는 것이다. 학생을 독자적으로 사고하고 뜻을 가지고 행동하는 인격적 주체로서가 아니라, 관념이나 지식 등을 기록하는 '백지, 생각을 넣어줄 그릇, 혹은 길들이고 조련시켜야 하는 동물인 것처럼 생각하는 전통적 지도방식이 바로 권위주의적 교육철학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렇듯 권위주의적이며 관리 통제하는 사람으로서 교사의 역할을 규정짓는다면 대부분은 학생들이 교사의 요구에 따라 자주적·능동적으로 활동할 수 없게 되고, 오히려 그 요구를 거절하거나 반항하게 된다. 그렇게 주입된 지식은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어서 기껏해야 말의 암기에 그칠 뿐 생생하고 생산적·창조적인 배움은 되지 못한다. 또한, 이렇게 배운 규율이나 생활형은 외면적·형식적이고 맹목적인 것에 불과하며 주체적·내면적·자각적인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교사가 학생의 존경과 신뢰를 받기 위해서는, 먼저 교사가 학생들의 편이 되어 진정으로 염려해 주고, 자신들의 장래와 행복을 위해서 힘을 써 준다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 또한, 교사의 지도로 자신들의 힘이 신장되고 자신들의 요구와 목표가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확신을 가지게 되어야 한다. 결국 교사가 교육애적인 정열을 갖고, 학생지도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을 때, 그리고, 그 지도가 적절하고, 항상 학생의 학습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시키며, 학생의 지적·인격적 발전을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게 될 때, 교사는 그들에게 신뢰와 존경을 받게 되며 권위를 얻어, 학생들에 대한 지도성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교사로서 학생을 다루기 가장 쉬운 방법은 힘에 의한 통제다. 과거 전통적 지도방식에서 그것이 유의미했을지 몰라도 여전히 그런 방식으로 지도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단순히 교사가 가진 힘에 순간적으로 복종하고 규율을 잘 따를지는 몰라도 그것을 교육적이라고 혹은 인권적이라고 부르기도 어렵다.
학교와 교실은 그 어떤 차별과 폭력도 없는 평화로운 공간이어야 한다.
결국 그 담임선생님과의 대화는 옥신각신만 하다가 대화가 쉽지 않아서 끝내 한마디 하고 말았다.
‘이런 것까지 뭐라 하면 교육을 어떻게 하냐고 말씀하시는데요.그럼 이렇게까지 하면서 하고 싶은 교육이 대체 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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