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자치, 학교민주화는 학교인권의 핵심 키워드
“(교무부장) 지금부터 교무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각 부서에서 하실 말씀 있으시면 전달해주십시오”
각 부서의 선생님들이 일어나 해당 업무에 대한 설명 및 분담해야 하는 일을 알려준다. 선생님들은 열심히 받아 적는다. 현장체험학습의 장소나 수학여행의 방식, 체육대회 및 학예회 등 학교의 주요행사는 이미 결정되어 있고, 교무회의는 통보를 받는 자리이며 내가 해야 할 업무를 전달받는 자리이다.
(이 과정이 끝나고 나면 교감선생님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교감선생님) 선생님들 이번 주는 학교에 이런 행사가 있습니다. 학생들 관리 잘해주시고 주어진 업무에 최선을 다해 임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이어지는 교장선생님 훈화말씀) 지난주에 보니까 학생들이 복도에서 떠들고 쉬는 시간에 장난이 심하더라구요. 선생님들께서 관심 가져주시고 생활지도에 만전을 기해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교무부장) 이상으로 교무회의를 마치겠습니다.”
흔히 보는 학교 교무회의의 모습이다. 심지어는 전체 교원이 모이는 교무회의는 생략하고 각 학년 부장과 업무부장, 교장, 교감선생님들끼리(이것을 학교에서는 간부회의라고도 한다.)만 모여서 학교의 중요한 사항을 결정하고, 전체 교직원에게는 메신져를 통해 결정사항을 전달만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행여 학교의 관리자들이 결정한 내용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토론을 요구하면 ‘벌떡 교사’로 찍히고, “당신 전교조야?”라는 식의 좋지 않은 편견과 유무형의 괴롭힘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습도 흔히 보인다.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가르치고 대화와 토론을 통한 합리적 의사결정이 중요하다고 가르치면서, 정작 자신들의 회의에서는 일방적 지시전달과 업무배분만 이루어진다.
부끄럽게도 상당수 학교에서 교사들의 교무회의는 학생들의 학급회의보다 못한 수준으로 운영되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혁신학교가 대다수의 시도교육청에서 이름을 달리하여 운영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성공과 실패의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그중 성공하는 학교들에게는 일관된 공통점이 보인다. 바로 학교자치와 민주적 학교운영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학교들에서는 학교의 대소사 및 교육과정 운영을 교직원이 모여 함께 토론하고 합리적 의사결정을 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자연스레 결정된 사항에 대한 집행력도 높아진다. 교사들의 만족도가 높아지니 교육과정운영은 알차지고 학생만족도와 학부모만족도도 높아진다. 그리고 학교자치와 학교민주화의 한 가운데에 학교장이 자리하고 있다. 학교장이 어떤 의지를 가지느냐에 따라 학교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화한다. 제왕적 권한행사를 하는 교장이 있는 학교에서는 매년 교사들이 다른 학교로의 탈출(?)이 이어진다. 민원도 끊이지 않는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학교민주화의 질은 학교장의 질을 절대 넘어서지 못한다.'
다소 거칠게 표현해보자면 나는 우리 교육에서 미래사회를 대비하는 데 있어 두 가지 문제를 본질적으로 비켜가는 그 어떤 교육개혁도 사기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서울대 한 줄서기로 상징되는 입시중심의 교육시스템이다. 새로 들어서는 정부마다 사교육대책, 기초학력 증진대책, 각종 바우쳐제도(심지어는 복지 바우쳐가 아닌 학원 수강권 바우쳐도 생길 기세다.), 입시제도 개선 등을 내세우지만 그 정점에는 교육을 통한 신분상승의 목표를 기저에 깐 욕망과 경쟁, 도태와 낙오의 입시제도가 자리하고 있다. 이런 방식의 입시제도가 바뀌지 않는 이상 고등학교 교육은 파행을 겪을 수밖에 없고, 중학교교육도 수월성 교육의 연장선에서 자유롭지 않으며, 초등학생마저도 과도한 학습노동에 내몰리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는 학교장(또는 행정)중심의 제왕적 학교시스템-권력구조의 문제다.
현행 초중등교육 관련법에는 대통령, 장관, 교육감이라는 말보다 학교장이라는 단어가 더 많이 나온다. 물론 권한의 크기가 다르겠지만 그만큼 학교장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해당 학교 교육이 방향이 달라져버리는 구조인 것이다. 민주주의를 가르치고 배우는 공간에서 위계와 관료제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면서 우리 교육의 미래를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해방이후 근대적 학교와 교육개념이 자리한 이후 지난 50년 동안 학교장은 제왕적 권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실제로 교육선진국에서 학교장의 자격을 보직이나 선출제가 아닌 자격증제로 운영하는 나라는 극히 드물다.
실제로 다른 나라들은 교장 임용 전에 반드시 교사들의 심의를 거치고 있다. 독일에서는 교사 중에서 일정한 자격을 가진 사람을 대상으로 교사협의회의 심사를 거친 후 임용하고 있고, 프랑스는 교장도 교원의 한 사람으로 일반 교원에 대한 직무상의 감독권도 없고, 소규모 학교의 경우에는 수업도 담당한다. 영국의 경우는 교사들의 심의를 거친 후 우리의 학교운영위원회와 비슷한 ‘학교 이사회’에서 공모를 통해 교장을 임한다. 가까운 중국의 경우도 교내 의결기구인 교무위원회의 추천을 받은 교원대표, 학술전문가, 교육행정기관의 고급관리 등으로 구성된 교원자격심사위원회에서 임명하며 별도의 교장자격증은 없다. 또한 우리나라 교육이 가장 큰 영항을 받고 있고 교육의 주요 골간도 벤치마킹하며 따라했던 미국의 경우도 주별로 약간 다르지만 별도의 교장자격증이 없이 결원 발생 시 자격심사와 면담 등의 절차를 거쳐 채용하는 절차를 거치고 있다
위의 나라만이 아니라 교장 자격증제를 시행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지식기반사회에 사는 지금에 과연 교장 자격증제로 교장들이 각 학교에서 전제적인 지위로 군림하고 각종 교권침해의 중심에 있으며, 점수 따기와 좋은 평점을 따기 위한 경쟁의 풍토가 지배하는 한 우리 교육의 장래는 암울하지 않겠는가.
교장선출보직제는 이제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 교장선출보직제는 교육자치의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학교자치시대의 필연이기 때문이다.
한 번 교장이 되면 정년퇴임할 때 까지 교장이 되어 극단적인 경우 무능하고 독단과 편견, 사적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지만 제도적으로 이를 쉽게 제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 유치원과 초·중등 교장제도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비정상적이며, 교장자격증이 교장에게 제왕적 특권을 부여하는 신분증이 되면서 학교구성원 융화와 교육혁신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이런 권력으로 작동하는 교장자격증은 '교장의 자격'을 검증하는 수단으로 부적절하고 교사들을 평가하여 점수를 매기는 구조에서 관리자에게 줄서기를 강요당하고, 승진을 준비하는 교사에게 족쇄가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권력이 집중되면 민주주의는 요원해지고 권리는 쉽게 무시되곤 한다.
이제 학교는 관리자 중심의 수직적 의사결정구조에서 모든 교직원이 함께하는 수평적 의사결정구조로 변해야 한다. 또한 교장자격증제 대신 교장선출보직제를 도입하고 교무회의를 의결기구화 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교육의 미래를 거대 담론이 아니라 교실과 교무회의, 민주적 학교운영에서도 볼 수 있어야 한다.
학교자치. 학교민주화는 공교육 진보와 학교인권의 핵심 키워드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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