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76)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전주 조경단입니다.
위치는 전북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1가 산 28번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전주는 조선 왕실의 본향으로 태조 이성계의 선조들이 대대로 살았던 곳이고, 태조 이성계는 시조 이한공의 21대손입니다.
조경묘는 전주이씨(全州李氏)의 시조 이한(李翰)과 시조비 경주김씨의 신위를 봉안한 사당입니다.
이는 조선 왕실 최초의 시조묘(始祖廟)로, 1771년(영조 47년)에 전주 경기전 북편에 창건됐습니다.
조경묘 창건이 중요한 이유는 이를 통해 전주가 조선 왕조의 발상지로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1771년(영조 47)에 칠도 유생들은 조선왕조 시조인 사공 이한과 동비인 경주김씨의 위패를 봉안하는 시조묘의 건립을 건의했습니다.
태종대에 경기전을 세웠고 영조대에는 조경묘를 세워 선원경봉지지로서 전주로 숙원을 굳혔는데, 동학혁명군으로 전주가 한때 점령되자 태조 영정과 함께 조경묘 위패도 위봉산성에 피난하는 사태에 이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건지산에는 조경단을, 발산에는 목조의 유허비를, 오목대에는 태조의 주필유지비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1899년 3월 11일에 궁내부특진관인 ‘조경단봉심재신’으로 이재곤이 전주에 와서 건지산 묘소검분이 실시되었습니다.
설단·수비·건재의 후보지는 따로 지관이 정하기로 하고 동서 3,360척, 남북 3,520척의 경내 묘소는 모두 없애버리고 창경토지나 단의 좌우 계곡에 인접된 전답은 본단 수봉궁에 속하게 할 것을 제언했습니다.
마침내 고종 어필의 전제와 찬문으로 대한조경단비가 건립되었습니다.
조경단은 1973년 6월 23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3호로 지정하였습니다.
조선의 역대 왕들은 태조의 21대조 이한의 묘역을 특별히 수호하도록 명했으며 이후 역대 왕들도 그와 같이 정성을 다해 보호해 왔습니다.
특히 고종은 1899년(광무 3) 5월에 이곳에 단을 쌓아 당상관을 배치하고 비석을 세워 전주이씨 시조의 묘로 정하고 ‘대한조경단(大韓肇慶壇)’이라 명명했습니다.
또한 해마다 한차례 제사를 지냈으며 단을 중심으로 450정보의 단역을 마련했습니다.
이는 경기전, 조경묘와 함께 전주가 왕조 전주이씨의 발상지라는 의의를 한층 현실화한 조치였습니다.
전주이씨 선원계보에 따르면, 신라시대에 사공 벼슬을 지낸 이한을 시조로 18대인 목조까지 전주에 기거하였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태조 22대).
조경단 경내 1만여 평의 주변을 돌담으로 쌓고 동·서·남·북문을 두었으며, 조경단 남쪽 20m 지점에는 고종이 세운 비석이 비각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비석은 거북이 등 위에 세워졌으며 너비 1.8m, 두께 0.3m, 높이 약 2m로 거대한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비석 앞면에 새겨진 ‘대한조경단’이라는 글씨와 비문은 고종의 어필입니다. 비각은 한 변이 7.2m인 정사각형 3칸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씨 조선의 중심 고을인 전주에서 경기전, 오목대, 조경단을 둘러보고 조선과 현대를 잇는 문화유적지 탐방을 해보는 것도 좋은 시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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