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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누리 웹진 제73호 회원의 붓

인권누리 2022. 8. 31. 11:11

풍수지리로 바라 본 온고을(전,완주)

 

설산 최재은(환단사상연구소 이사장)

 

호남가(湖南歌).

 

태극-음양-사상-팔괘를 온전하게 갖춘 온고을 전주(全州).

하늘을 뜻하는 건지산과 수양산(首陽山-終南山)이 북쪽과 북동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땅을 뜻하는 곤지산과 모악산은 남쪽과 남서쪽에 존재한다. 이로써 살펴보면 곤건(坤乾)의 괘는 지천태(地天泰)의 후천개벽을 상징하는 괘상이다. 나아가 남서방은 후천(后天)의 곤(坤位)이니 이곳에 모악산이 존재하는 것은 바로 문왕후천팔괘가 전주의 지형에 부합됨을 뜻한다. 그리고 만물을 살리는 훈풍 봄바람의 방위에 만덕산이 존재하는 것도 또한 천자의 도가 전주에 시행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일월(日月)이 동서로 존재하는 것은 곧 선천복희팔괘가 존재하니 이괘와 감괘가 동서로 진호하는 형상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선천복희팔괘와 후천문왕팔괘 그리고 후천개벽의 후천팔괘가 하나로 이루어졌으니 삼태극 삼팔괘가 모두 다 드러날 것임을 입증하고 있다. 이를 따라서 우리 조상들은 전주에 동서남북에 동고사 서고사 남고사 북고사를 두었던 것도 이와 맥을 같이 함이며 돌미륵이 골골이 있는 것도 또한 이를 입증하는 것이다.

 

후천개벽의 땅을 알리는 왼태극을 완전히 갖춘 온고을 전주(全州).

 

1) 만덕산 지맥.-주화산(주즐산)에서 만덕산 묵방산 두리봉 승암산 기린봉 안골 건지산 천마산으로 이어지는 전주의 진산을 이루는 산맥.

 

2) 고덕산 지맥.-박뫼기산을 지나 남원으로 가는 국도 17호선에 있는 슬치를 지나서 다시 거슬러 북진하여 갈미봉과 옥녀봉을 만들고 경각산으로 빠져가기 직전 고덕산에 다다르고 남고산성으로 이어진 산맥과 흑석골을 지나서 평화동 장승백이를 넘어서 완산칠봉에 이르고 나아가 태극산을 거쳐서 화산으로 이어져 진북사가 있는 서신동에 다다르는 산맥으로 옛 전주부의 백호에 해당하는 산줄기

 

3) 모악산 지맥.-경각산으로 이어져 오봉산을 거쳐서 막은댐 그리고 다시금 휘돌아서 국사봉과 모악산으로 이어진 산맥은 고깔봉을 거쳐서 천잠산 그리고 황방산에 이어지고 나아가 호안제일문이 있는 동산촌까지 이어지는 산줄기로 전주의 외백호에 해당하는 산자락이다. 또한 고깔봉과 천잠산에 이어지던 산줄기에서 갈라져서 완만하고 거의 구분하기 힘든 평야맥으로 완주군 이서를 지나서 김제 만경까지 이어지는 산줄기를 형성하는 데 이 산줄기가 바로 만경강과 동진강을 가르는 산줄기로 전주,완주의 온다라를 형성하는 최외곡의 산줄기이다.(사실 제일 찾기 힘든 잠룡에 속한다.)

 

4) 운장산 지맥.-금남호남정맥과 금남정맥 그리고 호남정맥의 분기점으로 삼산맥의 분기점이자 삼강의 분기점(섬진강 만경강 금강)인 주화산(주즐산)에서 북진하는 금남정맥을 따라서 올라가다가 곧바로 소양면 청량산으로 뻗쳐내린 산줄기는 다시금 위봉산으로 이어지고 서방산에 다다른다. 그리고 소양면으로 이어지는 종남산에 다다른다. 이 산맥이 바로 원래 전주의 외 청룡에 속하는 산줄기로 소양천과 동상땜과 대아땜의 물줄기를 가르는 산줄기이다.

 

5) 천호산 지맥.-운장산을 따라서 금남정맥이 북진하는데 왕사봉이 있는 지점을 거쳐서 칠백이 고지에서 분기한 산맥은 옥녀봉을 지나서 달맞이 고개를 넘어서 작봉과 천호산에 다다른다. 일맥이 달려서 봉동의 봉실산을 이루니 고산과 봉동의 산줄기이다.

 

6) 미륵산 지맥.-천호산에서 용화산을 거쳐서 미륵산에 다다르니 그 중간에 맥이 나와서 왕궁과 삼례를 형성하니 이 또한 전주를 진호하는 용맥으로서 옛적 전라감사 이서구가 감히 전주의 지세가 왕이 거하는 지세이므로 말에서 내려 참례(參禮-삼례)하고 걸어서 전주에 들어왔다는 말이 허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7) 전주가 완전해 지려면 미륵산에서 달려간 용이 평지에 숨어들었다가(전국에세 제일 찾기 어려운 용맥이다) 함라산에 분기하여 군산의 오성산으로 달려가고 일맥은 대야를 거쳐서 옥구에 다다르니 이 지맥은 호남팔명당중 수명당으로 알려진 임피 술산 복구형이 있는 지맥이자 옛적 문창후 최고운 선생이 글을 읽었다는 자천대와 중국 풍수사 두사충이 그려 보냈다는 조선삼대명당의 하나로 전해오는 비안도의 평사낙안명당이 닿는 지맥이다.

 

8) 이상을 종합하여 보면 전주는 산맥으로 겹겹이 둘러쳐진 원형의 태극을 이루고 있으며 그안을 만경강이 흘러들어 S자를 형성하면서 남에서 북으로 흘러들어가니 왼 태극을 그리고 있는 후천의 가장 완벽한 땅 온 고을이 되는 것이다.

 

전주의 미래

 

전주와 전라도는 삼국시대이후 줄곧 소외받는 지역이었다. 특히 조선시대에 와서는 왕조의 본향임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소외받는 지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주와 전라도 백성들은 이 땅을 부여안고 의연히 지켜냈다. 특히 정여립의 난으로 이야기되는 기축사옥으로 인해 가장 피폐화된 지역이 바로 전주를 중심으로 한 전라도였다. 정여립의 집터와 생가터는 파져서 못이 되어 버렸고 이 지역은 역향(逆鄕) 이라 하여 차별화 지웠다. 그리고 그 기축사옥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용사지란이라고 불리는 임진왜란이 발발하였다. 이 때 그렇게 괄시받던 이 지역의 백성들은 벌떼처럼 일어나 이 강산을 지켜냈다. 임란삼대첩이 바로 전라도 바다를 지킨 한산대첩인데 이전과는 전라도 수군들과 이순신의 몫이었고, 나아가 육지에서 일어난 행주대첩은 전라감사로 있던 권율이 이끄는 전라도 병사들과 의병들이 주축이 된 대첩이었다. 그리고 전라도 관문을 굳건히 지키고자 했던 진주성의 순국선열들은 모두 전라도 의병과 의병장들이었다. 또한 전주를 지킨 큰 싸움 웅치대첩과 이치대첩은 전라도 의병들과 병사들이 거둔 값진 승리였다. 그래서 권율장군은 나는 행주대첩보다 이치대첩이야말로 임란을 승리로 이끈 큰 싸움이었다고 술회하였다. 그래서 왜란의 사실상 삼첩의 의미는 전라도의 곡창지대를 지킨 것이었고 그럼으로 7년전쟁의 군량과 군사를 얻은 것이었다. 사실 행주가 아니라 한산,진주,이치의 대첩이야말로 왜란삼첩인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서 입증하듯이 많은 옛 성현들은 전라도가 없다면 조선은 없다라고 까지 하였다. 이제는 이러한 말이 전라도가 있다면 대한민국은 있다라는 긍정적 표현으로 가야한다고 본다. 앞서 제시한 호남54주의 노래가 현실로 다가와야 한다. 그리고 사람 사는 사람중심의 후천세계가 열릴 때 그 중심에 전주와 전라도가 있게 될 것이다. 나는 그날이 멀지 않다고 본다. 우리들의 후손에게 물려줄 이 땅이 엄청난 사명을 띠고 있다면 우리는 우리 후손들에게 부끄러움 없는 선조로 자리매김 되어야 하며 나아가 천하를 호령하던 옛 선조들 앞에 한단의 후손으로 그리고 삼한구족의 후손으로 부끄럼 없는 자리로 매김 되어야 한다. 전라도에 태어남을 행운으로 생각하며, 전주에 살아감을 나는 행복하다고 감히 외치고 싶다.

 

일두삼족금오조(一頭三足金烏鳥)의 노래여

삼한구족(三桓九族)의 노래여

전라도(全羅道)의 노래여 이제 시작하라!

온고을 전주(全州)의 노래여 시작, 시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