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75)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남원 정충사입니다.
위치는 전북 남원시 주생면 정송리(정충마을)산 7-1번지에 있습니다.
정충사(旌忠祠)는 남원 주생면 출신의 임진왜란의 영웅 황진 장군을 모신 사당입니다.
황진 장군은 청백리 영의정 방촌 황희의 5대손으로 임진왜란 때 충청 병사로 진주성 2차 전투에서 왜군과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여 선조가 무민공의 시호를 내렸습니다.
황진 장군은 1550년(명종 5년)에 출생하여 1593년(선조 26년)에 사망한 무인입니다.
본관은 장수. 자는 명보, 호는 아술당. 아버지는 윤공입니다. 1572년(선조 5년) 무과에 급제한 뒤 선전관·거산도찰방·안원권관을 역임했습니다.
1590년 황윤길·김성일(金誠一)·허성(許筬) 등이 일본에 통신사로 갈 때 군관으로 따라갔습니다.
일본에서 돌아온 후 재산을 털어 말을 사고 밤낮으로 무예를 익히면서 일본의 침략에 대비했습니다.
1592년 화순 동복현 현감으로 재직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라도 관찰사 이광(李洸)의 휘하에서 참전했으나 용인전투에서 대패했습니다.
1592년(선조 25) 7월초 고바야카와[小早川隆景] 휘하 6번대 소속의 일본군이 이치를 거쳐 전주로 향하려고 했습니다.
이에 전라도 절제사 권율은 광주부근 군읍에서 모은 향병 1,500명을 거느리고 이치에서 진을 치고 전주 방면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7월 8일 이른 아침부터 일본군이 공격을 시작하자, 조선군은 권율과 동복현감 황진의 지휘하에 용감히 맞서 싸웠습니다.
싸움 도중 황진은 활로 많은 적들을 죽이다가 일본군의 조총을 맞아 총상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종일 쉴새없이 공방을 되풀이하다가 결국 일본군은 많은 사상자를 내고 달아나버렸습니다.
이치전투(梨峙戰鬪)는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금산과 웅치에서의 패배와 달리 조선군의 승리로 끝났으며, 일본군은 이 전투를 조선 3대전의 하나로 꼽았습니다.
이때 패배한 일본군은 전라도 침공을 단념하고 금산으로 들어갔으며, 권율은 이 전공으로 나주목사를 거쳐 전라도 관찰사 겸 순찰사가 되었으며, 황진은 익산군수에 이어 충청도 조방장에 임명되고 절충장군(정3품 당상관)에 가자되었습니다.
1593년 3월 충청도 병마절도사가 되어 죽산전투에서 후쿠지마[福島正則]가 이끄는 일본군을 대파하고 상주까지 추격했습니다.
그해 6월 일본군이 전열을 정비해 진주성을 공략하자 김천일(金千鎰)·최경회(崔慶會) 등과 함께 성을 굳게 지켰습니다.
9일 동안 격전을 치렀으나 마침내 성이 함락되면서 6월 28일 장렬하게 전사했습니다.
이후 좌찬성에 추증되었고, 진주 창렬사, 남원 정충사에 제향 되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바다에는 이순신!, 육지에는 황진! 이라는 영웅이 있음을 기억하며, 안덕원 전투, 이치전투 최후의 진주성 2차 전투에서 목숨을 바쳐 왜군을 격퇴시킨 황진장군과 남원 정충사 유적을 둘러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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