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90)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순창 훈몽재 입니다.
위치는 전북 순창군 쌍치면 둔전2길 83번지에 있습니다.
우리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한양에서 벼슬을 하던 선비들이 이런 저런 이유에서 낙향을 하거나 귀향 또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떠나야 했다면 어디로 갔을까?
'훈몽재(訓蒙齋)'는 조선중기의 문인으로서 성리학의 대가로 조선의 정신을 밑바침했다고 볼수 있는 하서 김인후(金麟厚 1510~1560) 선생이 1548년(명종3년)에 순창 점안촌 백방산 자락에 세운 강학당(講學堂)입니다.
하서 김인후 선생의 문학적 사상인 산(山), 수(水), 인(人)의 삼연을 구현한 정자인 삼연정(三然亭)에서 순창 선비의 길이 시작됩니다.
훈몽재는 배움으로 어리석음을 깨우친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서 김인후 선생은 5세때에 천자문을 익혔을 정도로 영특함에 성장하면서 성균관에 들어가 수학하여 퇴계 이황과 함께 학문을 익혀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 박사 겸 세자시강원설서가 되어 세자를 보필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김인후 선생이 지은 훈몽재는 추령천변에 있는 대학암(大學巖)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바위 위쪽이였다고 하는데,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그의 5세손인 자연당 김시서(金時瑞)가 1680년(숙종6)경 인근에 자연당을 짓고 기거하며 훈몽재를 중건하여 후학을 양성하였다고 합니다.
세월이 흘러 훈몽재가 퇴락하자 후손과 유림들이 다시 점암촌에 훈몽재를 중건하고 어암서원(魚巖書院)을 건립하여 김인후(金麟厚), 김시서(金時瑞), 송강 정철(松江 鄭澈), 율곡 이이(栗谷 李珥)의 위패를 봉안하였으나
1867년(고종4년)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일제 강점기에 다시 중건되었으나, 1951년 6.25 전쟁 때 또다시 소실된 것을 2009년 11월 9일 현재의 위치에 순창군에서 김인후 선생의 학문적 업적과 정신을 되살리고 후세에 전승.
발전시키며 나아가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고자 에절. 유학 등 전통문화의 교육장으로 활용하고자 홍몽재를 중건하고 2009년 11월 29일 개원하였다고 합니다.
현재 훈몽재는 강학당과 낙향하여 자연귀의(歸依)사상을 담은 자연가(自然歌)에서 따온 자연당(숙박시설),
어리석은 사람을 바르게 기른다는 양정관(교육관및 숙박), 김인후 선생의 문학적 사상인 산(山), 수(水), 인(人)의 삼연을 구현한 정자인 삼연정(三然亭), 하연정(下然亭), 대학암(大學巖), 고인돌(식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곳은 순창군에서 만든 '선비의 길'이라는 둘레길의 시작점이기도합니다. '훈몽재 선비의 길' 시작점에 있는 대학암이라는 바위에는 송강 정철의 친필이 새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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