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바람
나무와 바람
나무는 가만히 있으려 하나 바람은 그치지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는 말은 자식이 부모님을 모시고자 하나 세월이 흘러 부모님이 자식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줄여서 풍수지탄(風樹之嘆)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바람은 쉼 없이 불어 옷깃을 스쳐가고,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드는 걸 볼 때마다 부모님의 가르침과 생전의 모습이 떠오른다.
며칠 전 아들의 문제집을 손을 찢은 사건이 벌어졌다.
“아빠, 오늘은 아빠가 검사해줘. 자~ 여기 국어 12월 0일, 수학도 12월 0일, 사회, 과학도 12월 0일.”
아들은 농구학원을 다니고 있다. 같이 배우는 친구와 형들이 다른 클럽과 리그를 펼치는 선수반에 가입해 있다고 해서 지난여름 선수반에 들어가고 싶어 했다. 선수반은 일요일에 2시간 정도 평소의 농구학원보다 훨씬 강한 강도로 훈련을 하는데, 자기는 그런 훈련이 더 좋다는 것이었다.
“너 그럼. 운동만 하고 학교 공부는 전혀 안 하면 안 되니 문제집을 좀 풀어야겠어.”
애들 엄마는 국어를 비롯한 주요 4과목 5학년 2학기용 문제집을 사줬다. 물론 아들은 농구를 열심히 하는 만큼 문제집을 열심히 풀진 않았다. 11월이 되어서도 9월에 산 문제집이 거의 깨끗한 상태였다.
“너 운동만 하고 공부를 안 할 거면, 선수반 끊을 거야. 학원은 건강과 취미활동으로 하고 선수반은 그만 하자.”
엄마의 요구에 아들은 강하게 버티며 선수반 꼭 해야 한다고 우겼다.
“그럼 이렇게 하자. 네가 과목당 하루 2쪽씩 풀어서 엄마 아빠한테 검사를 받으면 12월 말에 봐서 선수반 연장시켜주는 걸로 하면 어때?”
아빠의 중재를 아들과 엄마는 수용했던 것이 11월 초순이었다. 그리곤 아들은 엄마와 아빠를 번갈아가며 문제집을 풀고 채점한 펼친 면에 날짜를 써오며 검사를 받았다.
“어머? 애 좀 봐? 날짜를 자꾸 바꾸면서 검사를 받았네? 몇 장 풀지도 않고?”
엄마는 화들짝 놀라서 아빠한테 문제집을 들고 왔다. 엄마한테 확인 받은 날짜 위에 다른 날짜를 덧써서 아빠한테 보여주는 식이었다.
가끔 풀었던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물어보곤 했지만, 그게 이틀이나 사흘 간격으로 날짜갈이 한 걸 몰랐던 아빠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반성문을 쓰라고 했다가 어차피 형식적인 글 몇 줄 그어올 거 같다는 생각에 이른 아빠는 문제집을 가져오라고 해서 가운데를 펼치고 반으로 북북 찢어버렸다.
찢어진 문제집은 여덟 조각이 되어 거실에 뒹굴었다.
“너는 엄마 아빠 속이면서 공부 잘하는 사람이 될래? 공부는 못해도 사람을 속이지 않는 사람이 될래?”
콧물과 눈물을 질질 흘리는 아들은 남을 속이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고 했다.
하룻밤 찢어진 문제집은 아빠의 엄명으로 거실 가운데에서 뒹굴었다.
“만약에 저걸 붙여서 그 전에 풀지 않은 날짜까지 풀면 12월 말에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자.”
한 번의 기회를 더 얻은 아들은 쌍둥이 남매 딸의 도움을 받아 문제집을 테잎으로 붙였고, 앞으로 열심히 풀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최근에도 밀린 걸 풀기는커녕 매일 풀어야할 양도 제대로 하지 않는 아들을 본다.
한 과목에 5분 정도 걸리는 20분짜리 공부. 학원도 과외도 숙제도 거의 없는 5학년. 집에서 하는 공부가 20분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약속은 아빠가 화낸 시간이 지나자 서서히 식어버렸다.
머리칼을 헤집고 찬바람이 머리와 이마에 와 닫는다. 혼자서 묻고 답한다.
‘공부가 그렇게 중요한가?’, ‘공부가 모든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가장 기본적인 상식 수준의 공부는 필요하지.’, ‘그럼. 계속 이렇게 공부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건가?’, ‘약속을 지켜서 농구 선수반은 못하는 거지.’, ‘반항하면 어떻게 할 건가?’, ‘서로가 겪어야 할 과정이다.’....
질문과 답은 맨살에 닿는 바람과 달리 시원하지 않다. 문득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난다. ‘우리 부모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답이 너무 간단하게 나왔다.
우리 부모님은 공부를 시키고 싶어도 경제력이 부족하여, 자식교육에 있어서는 기대와 함께 걱정으로 힘들어하셨던 분들이었다.
아마 문제집을 아궁이에 넣어 버리셨을 것이고 학교도 더 가지 마라 하셨을 거다. 생각해 보니 좀 폭력적이다.
시대가 달라졌다지만 폭력적인 행동을 했으면서 아닌 것처럼 외면한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다.
부모의 잣대로 아이에게 폭력적인 면을 보여줬다는 자책과 남을 속이고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해 과하지만 필요한 행동이었다는 생각이 아직도 뒤죽박죽이다.
며칠 전에 감나무 가지를 잘랐다. 너무 자르면 나무가 죽고, 너무 자르지 않으면 과일이 작고 맛이 없다. 바람이 잘 지나가고 햇살이 잘 들게 적당히 잘라야 한다. 그 적절함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들은 아빠 나이가 되어 바람이 불고 나뭇가지가 흔들리면 벌컥 화를 내며 문제집을 찢었던 아빠를 생각하게 될까? 그때도 바람은 휘몰아 옷깃을 스쳐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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