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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누리 웹진 제93호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

인권누리 2023. 1. 16. 10:05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95)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전북이 아닌 경남 남해바다 충렬사 입니다.
위치는 경남 남해군 설천면 노량로 183번길 27번지에 있습니다.

충렬사는 불천위사당(不遷位祠堂)입니다.
불천위는 덕망이 높고 큰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 사당에서 제사를 모시도록 국가에서 허가한 신위를 말합니다.

남해 충렬사(忠烈祠)는 남해대교 아래 노량포구 동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임진왜란이 끝나던 해 마지막 해전인 노량해전(1598년 11월 19일)에서 순국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충의와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입니다.
충렬사에는 1604년에 선무공신 1등으로 서훈되고 덕풍부원군, 좌의정의 직위가 내려지고, 1613년에는 영의정으로 책봉된 충무공의 구국충정의 얼이 서려 있습니다.
남해 충렬사는 통영 충렬사와 함께 ‘충렬’이라는 현판을 처음부터 같이 사용해 왔으며 조선시대 인조 임금 때 지어졌습니다.
노량해전에서 순국한 충무공의 시신은 이락사에 최초로 안치되었다가 그해 이곳 남해 충렬사로 이장, 안치되었습니다. 시신을 충청남도 아산으로 운구하기 전에 3개월간 이곳 가묘자리에 안치했습니다.
1599년 2월 11일 유해가 충렬사에서 군영지인 전라도 고금도를 거쳐 아산 현충사로 운구되어 안장되었습니다.

충렬사의 건립은 충무공의 순국을 슬프게 느낀 남해사람 김여빈과 고승휴가 충무공 사당 건립을 주장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1633년(인조 10)에 한 칸짜리 초가 사당을 건립하고 위패를 봉안하여 처음으로 제사를 지냈는데 이것이 충렬사의 시작입니다.
남해현령 이정건은 이 사당 앞에 충민공비(忠愍公碑)를 세웠고, 조정에서는 1643년에 이순신에게 ‘충무공’이라는 시호를 내렸습니다.

1658년에 조정에서 어사 민정중에게 명하여 통제사 정익으로 하여금 낡고 초라한 초가 사당을 철거하고 사당을 신축하도록 하여 모습을 갖추었는데 이것이 충렬사의 중건입니다.
이때 충민공비는 땅속에 묻었습니다. 현재 사당 앞에 있는 ‘유명 조선국 삼도 통제사 증시충무 이공 묘비’는 1660년에 송시열이 글을 짓고 송준길이 쓴 것입니다.
1663년 남해 충렬사는 통영 충렬사와 함께 현종 임금이 친필로 써서 내려준 ‘충렬사’ 현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1726년에 충렬사에 노량서원을 세웠는데 1871년(고종 8)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서원은 철거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22년 향사 윤기섭과 고준홍 등이 모여 조직한 ‘보존회’의 기금으로 사우를 건립했습니다. 이들이 사재를 털어 모은 자금으로 사당을 새로 짓고 제사를 지내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충무공의 11대손이 되는 이민봉은 1925년에 청해루 누각을 지었고, 1948년에 남해군민과 경상남도 초등학생들이 모은 성금으로 한글비를 청해루 앞에 세웠는데 글은 정인보가 짓고 김충현이 썼습니다.
1949년에 ‘보존회’는 해체되고 남해 충렬사 모충회가 조직되어 현재까지 충렬사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충렬사는 1965년에 박정희 대통령이 써 준 ‘충렬사’와 ‘보천욕일(補天浴日)’이라는 액자 현판을 달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