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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누리 웹진 제102호 회원의 붓

인권누리 2023. 3. 20. 10:20

 

일본 훗카이도대학교 : 왼쪽-"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클라크동상


1. 사유


25년 전 일본 홋카이도대학교에서 교육임상심리학 석사를 공부했다. 첫아이 임신과 함께 히라가나, 가타카나도 모른채 육아휴직으로 동행한 남편 유학길...첫 아이 출산후, 일본어라도 제대로 하고 돌아가자고 잠깐씩 보육원(어린이집)에 맡기며 어학공부를 하던 중, 보육시스템이 집에서 혼자 기르는 것보다 더 안심하고 신뢰할 수 있어 석사과정에 들어갔고, 둘째까지 낳고 키우며 행복한 유학생활을 했다.














홋카이도 삿포로는 눈이 사람키 두배는 쌓인다. 하루종일 눈이 내린다


교육임상심리학은 말그대로 교육심리에 임상을 가미한 것으로, 학교 현장에 밀착하여 교사-학생, 학생-학생 등 관계에 얽힌 심리적 문제와 해결책을 고민하는 학문으로 당시, 일본에서도 신생학과여서 교토대학과 홋카이도대학 밖에 없었고, 지도교수였던 요코유 소노코선생님을 찾아 일본 방방곡곡에서 학생들이 몰려들던 상황이었다. 

일본어도 많이 부족했지만 다행히 입학시험에 합격했고, 또한 장학금까지 받으며 교수님들의 많은 사랑과 관심 속에 공부할 수 있었다. 뭐든 미리 고민하고 망설이기보다 과감하게 도전하는 스타일이어서 겁없이 입학했고, 당당하게 공부했으며, 두 아이를 키우며 타국에서 공부하는 모습이 대견했는지, 60년대 학생운동으로 성장한 교수들과 80년대 민주화운동세대인 나와는 정서적 공유가 비교적 잘 되어 많은 지지를 받았고, 나는 항상 씩씩하게 생활했었다.

석사과정 중 학회에 나가 한국교육에 대해 발표할 기회가 있었다. 1997~98년 당시 종군위안부 문제가 막 불거져 심각한 상황이었는데, 일본인 교수가 한국과 일본의 예민한 역사문제를 질문하여 내가 알고 있는 역사적 진실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어서, 너무도 기쁘게 생각했으며 나는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었다.

그리고, 두번째 기억나는 질문은 아동학과 교수의 질문이었다. 일본육아와 한국육아의 차이점에 대해서 말해달라는 질문이었다. 나의 대답은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 객관성과 보편성은 떨어지며 주관적인 것임을 미리 고지하고, 답변했다. 그것은 일본인들은, 자녀들을 키우며 남에게 해만 끼치지 않으면 하고싶은 것은 맘껏 하도록 격려하는 문화지만, 한국의 경우는,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삶을 살라고 가르치기 때문에 앞으로의 미래는, 한국이 훨씬 밝고 더 발전할 것이라고 자신있게 대답했었다. 

1999년 귀국 당시, 한국은 막 IMF를 벗어나려던 참이었고 일본을 따라잡기엔 너무도 요원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어느덧 우리나라는 눈부신 성장으로 세계경제 13위권으로 진입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잘 산다는게 반드시 좋은 것인가. 경제적으로 잘 사는 것과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은 왜 일치하지 않는지...특히, 빈부격차가 더 심해지는 우리나라 상황을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 안에 있는 바른 마음과 정의로운 마음들을 발현할 수 있는 아름다운 사회를 꿈꾸지만 갈수록 쓸쓸해지는 사람의 마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는 요즘이다. 

특히, 부조리한 사회구조와 불의한 제도 앞에서 무력한 인간군상들을 보며, 나 자신을 보며, 분노를 넘어 슬픔을 느낄 때도 많다. 끊임없이 성장주의에 매몰되어 소유에 급급한 현실이다. 한 사람의 삶이란 그 사람이 맺는 사회적 관계의 앙상블이다. 우리 사회는 한 사람이 맺는 사회적 관계를 온통 경제적 관계로 치환한다. 자본에 매몰되지 않는 소유에서 관계로! 성장에서 성숙으로! - 깨어있는 개개인의 의식이 중요함을 안다. 내가 살아가는 공간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들과 조금이라도 소통하고 협력하고 연대하려는 마음...사회현상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사유...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전진과 답보를 반복하고 때로는 퇴보도 하지만, 그 다음엔 두세걸음 더 나아갈 힘이 생기길 우리 모두에게 염원해본다. 개개인의 삶과 사회 모두....


좋아하는 풍경1 - 삿포로 오오도리공원



좋아하는 풍경2 -오타루 운하



좋아하는 풍경3 -후라노 라벤다


좋아하는 풍경4 -눈오는 자작나무 숲



좋아하는 풍경5 -쿠시로 습지.


2. 끝에서


2일차 - 여유로운 아침을 맞는다. 교토의 아침은 맑음이다. 호텔 레스토랑에서 일본 정식을 먹고, 카페에 나가 맛있는 커피를 마신다.



택시를 타고 교토의 유명 관광지로 이동하여 기요미즈테라(청수사)와 니넨자카와 산넨자카의 거리를 걷고, 간식도 사먹고, 좋은 카페도 들어가고, 가장 맛있는 식사도 하고, 시장도 가고, 쇼핑도 하고...그야말로 원주민이 되어 그 속에서 겨울을 만끽했다.

파란 하늘 사이로 눈발이 날리는 오묘한 교토의 하루였다. 내 마음처럼...









3일차 - 호텔 레스토랑에서 어제 먹은 일본 정식을 피해 양식 코스를 먹었다. 그리고 그녀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교토를 떠나 오사카를 향한다. 오사카는 너무 자주 갔던 곳으로 어딘들 편안하지 않으랴...그저 카페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하루종일 책을 읽어도 좋으련만...우리는 관광객.

그녀는 사고 싶은 것도 많다. 보고 싶은 것도 많다. 가고 싶은 곳도 많다. 생의 환희로 터져오르는 그녀의 젊음에 모두를 할 수는 없어도 다 동행하려했다. 그래도 도톤보리 강가에서의 여유로움은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거면 충분했다.




4일차 - 온천욕을 워낙 좋아하여 저녁에도 가고 일본을 떠나오기 전에도 굳이 온천욕을 하였다. 차가운 겨울 날씨에 노천탕에서 느끼는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는, 항상 나를 행복하게 하였기에...그녀와 다시 한번 노천탕에 들렀다. 그거면 충분했다.

일본에서의 4일 동안, 나는 어디에서든 충분히 나를 만끽했고, 동행했던 그녀와 교감했으며, 일본의 하늘과 공기와 바람을 온 몸으로 느끼고 돌아올 수 있었다. 환상이 끼여들 여지도 없는, 충동도 없고 욕망도 없는 무념의 여행이었다. 그래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