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110)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전북 고창 동학농민혁명 무장기포지입니다.
위치는 전북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에 있습니다.
고창 무장 동학농민혁명 기포지는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에 있는 동학농민혁명의 시발점이었습니다. 2014년 10월 31일 전라북도의 기념물 제12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동학농민군의 무장기포지는 한국 근대사에서 스스로 전국에 걸쳐 사회개혁 의지를 처음으로 드러낸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동학농민혁명의 시발점의 하나로 상징성이 매우 큰 유적지입니다.
무장기포지는 동학 농민 혁명 과정에서 고부 농민봉기가 전국적인 무장봉기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깊은 역사적인 유적지입니다.
당시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등은 이곳에서 동학농민들을 훈련시키고 투쟁을 준비했습니다.
1894년(고종 31) 1월 고부에서 봉기한 농민들은 후임 군수 박원명의 설득으로 3월 초에 해산하였으나 안핵사 이용태가 고부 봉기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농민들에 대한 횡포가 극심해지자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등의 농민군 지도부는 무장현에 전라도 일대의 농민군을 결집시키고 3월 20일경 「무장포고문」을 발표하고 재봉기를 선언하였습니다.
무장기포는 고부 지역에 한정되었던 농민봉기가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새로운 국면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1894년 4월 25일(음력 3월 20일) 무장기포가 일어난 공음면 구수마을은 예부터 당산마을로 불리어진 곳입니다.
고부 농민 봉기를 일으킨 전봉준이 관군의 소탕을 피해 고창 무장의 대접주 손화중을 찾아 함께 손을 잡고 농민들을 모아 훈련시켜 봉기했던 곳이 바로 이곳 당뫼입니다.
당뫼는 고창 공음의 구암 또는 구수라는 마을 앞에는 큰 당산나무가 있었다하여 마을 이름을 당뫼라 불렀습니다.
1894년 3월 20일경에 재봉기하면서 밝힌 무장포고문에는 봉기의 이유와 목적 등이 담겨 있습니다.
이는 세상에 거대한 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19세기 후반 지역적 민란의 성격을 뛰어넘어 반봉건, 반침략을 지향하는 개혁운동이자 전국적 항쟁이었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은 조선의 봉건 사회에 마지막 결정타를 입혔으며 열강의 침략에 대한 아시아 민중의 저항 의지를 확연히 보여준 반제국주의 운동이었습니다.
농민혁명은 실패로 끝났으나 뒤의 항일 의병운동과 3.1운동 독립만세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고창 무장 동학농민혁명 기포지에는 소나무 3그루가 있습니다.
소나무 3그루는 동학농민혁명을 이끈 총대장 전봉준(중앙), 총관령 김개남(좌), 총관령 손화중(우) 등 3대 지도자를 상징하며 동학농민혁명 당시 고창군으로 통합되기 이전인 고창현. 무장현. 흥덕현을 의미합니다.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난 직접적 원인은 잘 알려져 있듯이 전라도 고부(古阜)군수 조병갑의 가혹한 폭정 때문이었습니다.
동학농민군 지도자 전봉준 장군의 최후 진술을 읽어보면, 조병갑이 저지른 폭정은 고부군 한 곳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 조선 팔도 대부분의 지방에서 일반적으로 일어나고 있던 현상이었다고 합니다.
19세기말 조선 민중들은 ‘삼정문란(三政紊亂)’으로 일컬어지던 지배체제의 모순 아래 지방관으로부터 가혹한 수탈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는 제1의 배경입니다.
당시 참여 인원은 200~300만이었다고 하니 당신 인구의 1/3, 1/4 정도였다고 합니다.
고창 무장 동학농민혁명의 기포지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민권, 인권운동의 정신을 기억해보는 체험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인권누리 뉴스레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권누리 웹진 제108호 인권누리에서 불어오는 인권바람이야기 (0) | 2023.05.02 |
---|---|
인권누리 웹진 제108호 회원의 붓 (0) | 2023.05.02 |
인권누리 웹진 제107호 인권누리에서 불어오는 인권바람이야기 (0) | 2023.04.28 |
인권누리 웹진 제107호 회원의 붓 (0) | 2023.04.28 |
인권누리 웹진 제107호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 (0) | 2023.04.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