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의 붓 원고
“신기하네요”
“사랑의 주파수는 모든 걸 가능하게 만들어요.”
“단팥빵 좀 사오세요.”
20년 전 평화운동 현장에서 목을 다쳐 병원에 입원했을 때 만난 수녀님이 오셨다. 남한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인 군산 이성당에 들려 빵을 사들고 오셨다.
무주구천동 입구에서 버섯전골을 대접하고 구천동 계곡을 갔다. 맑은 물소리를 들으며 어사길 산책로를 걸었다. 다리 교각 귀퉁이에 병꽃나무가 꽃을 피웠다.
한 뼘도 안 되는 시멘트 땅에서 싹을 틔우고 자랐다. 생명의 신비, 기적이다.
새소리가 귀를 씻어주고 물소리가 눈을 씻어주었다. 계곡물소리 따라 걷는 숲길은 마음의 길을 넓혀주었다. 숲속 나무들의 연푸른 정기는 마음과 영혼을 말끔히 씻어주었다.
그래서였을까. 어느 가수는 산을 걷고 나서 사람을 만난다고 했던가.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여유가 생겨서 더 깊은 만남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김근수 형님이 보내온 책 예수평전을 수녀님께 선물했다. 단팥빵 두 개씩 봉지에 담았다. 무주구천동 맑은 계곡 숲길을 걸었으니 독거어르신을 방문할 마음의 자세와 사랑이 준비된 것이다.
단팥빵을 배낭에 메고 자전거에 올랐다. 가파른 골목길을 턱까지 숨이 차오르도록 자전거 폐달을 밟았다.
효부 밑에 효자 나는 것일까?
“우리 아들이 자다가도 일어나서 내 어깨를 주물러주어요.”
“우리 어머니가 부모님에게 효도해서 그 걸 보고 배웠나 봐요.”
“우리야 당연히 해야 했지만, 지금 누가 그렇게 효도하는 자식이 있나요.”
“할머니가 효도한 것을 자식에게 받는 거예요. 인생에 공짜가 없잖아요.”
구순이 넘으신 어머니를 칠순이 넘은 아들이 모시고 있다. 향로봉 산불 감시원으로 일하고 있다. 내가 산행 중에 잠시 숨을 돌리며 오미자차를 대접받는 일터다.
연탄리어카만 들어갈 수 있는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멀리 보이는 대문이 잠겨 있다. 옆집 할머니댁 현관문을 두드렸다.
“옆집 할머니 단팥빵 드리려고 왔어요.” “대문이 잠겨 있는 것을 보니까 병원에 갔나 봅니다.” “그럼 한 봉지는 할머니 드시고 하나는 옆집 할머니 드리세요.
할머니 안 계셔도 대문 앞에서 기도하고 강복을 드리시게요.”
급경사 골목을 내려온다. 삐삐ㅡ삐이익! 귓전을 울리는 소리도 콧노래처럼 들리는 이유는 뭘까. 한 참을 신나게 달렸다.
"아리랑 아리랑 홀로 아리랑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 보자 가다가 못가면 쉬어 가더라도 손잡고 가보자 달려가보자" 홀로 아리랑도 흥겹게 흐르고 등줄기에는 땀방울이 구른다.
철대문을 자전거로 밀고 들어갔다. 라디오 뉴스소리만 시끄럽다. 드르륵 미닫이를 열고 방으로 들어가도 모르고 주무시는 독거어르신 손을 잡았다.
“아버님 저예요.”
“신부님이 오셨네요.”
“수녀님이 단팥빵을 사 오셔서 배달왔어요.”
“사골국물 드세요.”
“저는 잘 먹으니까, 아버님 드셔야죠.”
“제가 잘 안 먹어서 신부님 드리려고 했는데, 드릴 방법이 없었는데, 어떻게 알고 오셨네요. 신기하네요”
“사랑의 주파수는 모든 걸 가능하게 만들어요. 근데 아버님 진짜 저는 사골국물 안 먹어요.”
“그러면 다른 분들 챙겨주세요.”
“예, 그러면 독거어르신들 챙겨드릴게요.”
사제를 챙겨주고 싶은 독거아버님의 사랑을 기쁘게 받아야 할 상황이었다. 자전거 핸들에 사골국물 선물상자를 매달고 달린다.
사랑의 단팥빵을 배달 와서 사랑의 사골국물을 매달고 간다. 자전거 페달도 신이 나서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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