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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누리 웹진 제110호 인권누리에서 불어오는 인권바람이야기

인권누리 2023. 5. 15. 19:45

고등학교 성고충심의위원회 조사과정에서 피조사자 방어권 보장 등 인권보호 강화 권고

□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송두환, 이하 ‘인권위’)는 2023년 4월 26일 △△△△△△△고등학교장에게,
성고충심의위원회 조사과정에서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 등 피조사자의 방어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고등학교(이하 ‘피진정학교’)의 성고충심의위원회 위원장인 교감(이하 ‘피진정인’) 및 성고충 상담원에 대한 직무교육을 실시하고, 향후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하였다.

□ 피해자는 피진정학교에 재직 중인 교사이며, 진정인은 피해자의 변호사이다. 진정인은 2022년 4월 7일경 피해자가 재학생 6명에게 성비위 행위를 하였다는 신고가 접수되어
피진정인과 피진정학교 성고충심의위원회(이하 ‘심의위원회’)의 조사 및 심의를 받는 과정에서 ①피진정인이 신고내용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아 신고자들이 어떠한 내용으로 성희롱 피해를 주장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고,
②진정인과 함께 출석한 심의위원회에서 피진정인이 피해자의 변호사인 진정인에게 발언권을 주지 않는 등 피해자의 방어권을 침해하였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하였다.

□ 이에 대하여 피진정인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① 신고 사실에 대한 구체적 내용 및 정보 미제공 관련
신고자들이 2차 가해를 우려하여 익명으로 조사가 진행되기를 희망한 점과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발간한 「2022년 성희롱·성폭력 고충상담원 업무 매뉴얼
(이하 ‘업무 매뉴얼’) 및 교육청과 외부전문가의 자문을 참고하여, 피해자에게 신고자들의 신원은 밝히지 않되, 대신 조사문답서의 질문과 심의위원회 질의를 통해 충분한 정보 및 소명기회를 제공하였다.

② 피해자의 변호사에 대한 발언권 제한 관련
△업무 매뉴얼에 “피신고인은 심의에 출석할 때 변호사 등 대리인을 동반할 수 있고 신뢰관계인이 동석할 수 있으나 이때 신뢰관계인의 진술권은 없다”는 내용이 있어 이에 따른 것이고,
△변호사의 발언권이 없음을 사전에 고지하였으며, △피해자가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진술할 수 있었고, △조사문답서 및 변호사 의견서를 사전에 제출할 수 있도록 하였기에 변호사의 조력권을 침해하지 않았다.

□ 인권위 아동권리위원회는 이 진정사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판단하였다.
① 피해자의 변호사에 대한 발언권 제한 관련
피해자의 이익을 적극 방어하는 역할을 하는 조력자로서 변호사의 조력권은 피해자가 스스로 진술 가능한지 여부와 관계없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또한 업무 매뉴얼에 명시된 진술권 제한은 해석상 신뢰관계인에만 해당하며 변호사의 진술권까지 제한하는 것으로는 볼 수 없는바,
피진정인의 업무 매뉴얼에 대한 해석상 오인으로 인하여 피해자가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와 방어권을 침해당하였다고 보았다.

② 신고 사실에 대한 구체적 내용 및 정보 미제공 관련
조사 결과 피해자 스스로도 신고 내용을 잘 알고 있었고, 성고충 사건의 조사과정이나 심의위원회의 심의과정에서도 방어권이 충분히 보장될 정도의 정보를 제공받은 것으로 판단되어,
적법절차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볼 만큼 피해자의 방어권 행사에 실질적인 지장이 초래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았다.

□ 이에 인권위는 △△고등학교장에게 관련자에 대한 직무교육을 실시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하였다.

□ 판단
헌법 제12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ㆍ구속ㆍ압수ㆍ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ㆍ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같은 조 제3항은 “체포ㆍ구속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여,
적법절차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적법절차의 원칙은 형사절차뿐만 아니라 국가작용으로서 모든 입법 및 행정작용에도 광범위하게 적용된다(헌법재판소 1992. 12. 24. 92헌가8 결정, 헌법재판소 1998. 5. 28. 96헌바4 결정 등).
한편, 적법절차 원칙에서 도출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절차적 요청 중의 하나로,
당사자에 적절한 고지(告知)를 행할 것, 당사자에게 의견 및 자료 제출의 기회를 부여할 것이 있다. 다만 이 원칙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절차를 어느 정도로 요구하는지는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려우므로,
규율되는 사항의 성질, 관련 당사자의 사익, 절차의 이행으로 제고될 가치, 국가작용의 효율성, 절차에 소요되는 비용, 불복의 기회 등 다양한 요소들을 형량하여 개별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헌법재판소 2003. 7. 24. 2001헌가25 결정 등).
나. 진정요지 가항에 대한 판단
인정사실에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은 학교 교사의 학생들에 대한 성희롱 및 성추행 사건에서 비롯된 것이다.
피진정인은 대학 입시를 앞둔 피해 학생들의 상황, 2차 피해의 가능성 등을 신중히 고려하여 이 사건 피해자(교사)에 대한 조사 및 심의위원회의 심의에 임했다는 취지로 답변하고 있다.
성희롱·성폭력 고충상담원의 조사는 형사절차 상의 수사는 아니므로, 형사절차 수준의 적법절차 원칙을 적용할 것을 요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조직 내의 성고충 사건 등에 대한 조사는 그 구조가 형사 사건의 처리와 유사하고,
심의위원회의 조사 및 결정은 피조사자의 사회적 평가 및 인격권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거나 더 나아가 실제적인 인사상 불이익 등도 예정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피조사자에게 최소한의 방어권을 적절히 보장하는 것은 헌법상 적법절차 원칙에 따른 기본적인 대응일 것이다. 따라서 성고충 사건에 대한 조사 및 심의위원회의 심의 과정에서 피조사자가 실질적으로 소명 기회를 박탈당하였거나
조사과정에서 본인의 소명을 하는 것이 현저히 어려운 상황이었는지 등에 대해서는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인권침해 여부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살펴보면, 성고충 사건의 특성상 정보의 출처가
한정되어 있고 특히 학교 내에서 교사 및 학생 간에 발생한 일이므로, 피해자(교사)의 입장에서는 별도의 정보가 없더라도 피해 학생들이 누구이거나 피해 주장 사실이 어떠한 것인지 인지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다.
따라서 피해자(교사)에게 사건 발생의 대략적인 시기와 장소 그리고 상황 등의 정보가 제공되어 피해자가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추상적인 정보만 제공되었다고 보기는 어렵고, 더 나아가 피해자가 제출한 답변서를 살펴보면
피해자는 문제가 되는 상황과 내용 그리고 피해 학생 중 한 명의 실명까지 스스로 특정하고 있으며, 피진정학교 심의위원회 심의에서도 참석한 위원들이 질의를 통해 피해 학생들에게 2차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피해자에게
신고내용을 중심으로 질의응답을 하며 심의를 진행하였던 점이 인정된다. 이와 관련하여 대법원은, 성비위 행위 관련 징계에서 징계대상자에게 피해자의 실명 등 구체적인 인적 사항이 공개되지 않은 경우에 있어,
성비위 행위의 경우 각 행위가 이루어진 상황에 따라 그 행위의 의미 및 피해자가 느끼는 불쾌감 등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징계대상자의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각 행위의 일시, 장소, 상대방, 행위 유형 및 구체적 상황이 다른
행위들과 구별될 수 있을 정도로 특정되어야 함이 원칙이나, 각 징계혐의사실이 서로 구별될 수 있을 정도로 특정되어 있고, 징계대상자가 징계사유의 구체적인 내용과 피해자를 충분히 알 수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징계대상자에게 피해자의 실명 등 구체적인 인적 사항이 공개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사정만으로 징계대상자의 방어권 행사에 실질적인 지장이 초래된다고 볼 수 없고, 성희롱 피해자의 경우 2차 피해 등의 우려가 있어
실명 등 구체적 인적사항 공개를 신중히 처리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2022. 7. 14. 선고 2022 두 33323 판결).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면, 피해자(교사)는 “신고자들이 어떠한 내용에 대해 성희롱 피해를 주장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라는 진정요지와는 달리, 스스로도 신고 내용을 잘 알고 있었고 성고충 사건의 조사 과정이나
심의위원회의 심의 과정에서도 방어권을 충분히 보장받을 수 있을 정도의 정보를 제공받은 것으로 판단되므로, 적법절차의 원칙에 위배되어 피해자의 방어권 행사에 실질적인 지장이 초래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 진정요지 나항에 대한 판단
행정절차법 제2조 제1호 나목에 따르면 ‘행정청’이란 법령 또는 자치법규에 따라 행정권한을 가지고 있거나 위임 또는 위탁받은 공공단체 또는 그 기관이나 사인을 의미한다. 피진정학교 심의위원회는 법령에 의하여
권한을 위임 또는 위탁받은 행정청의 지위를 가지는 것으로 일견 볼 수 있고, 설사 심의위원회 그 자체가 행정청의 지위를 가지는지에 대해 논란이 있다하더라도, 학교 내 심의위원회의 결정에 대하여
행정절차법상 사전통지 조항 등이 적용된다고 본 법원의 판례(서울행정법원 2020. 1. 30. 선고 2019 구합65658 판결 등)를 감안할 필요가 있다.
행정절차법 제12조 제1항 제3호, 제2항, 제11조 제4항 본문에 따르면, 당사자 등은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할 수 있고, 대리인으로 선임된 변호사는 당사자 등을 위하여 행정절차에 관한 모든 행위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행정조사기본법 제23조 제2항에서도 조사대상자는 법률ㆍ회계 등에 대하여 전문지식이 있는 관계 전문가로 하여금 행정조사를 받는 과정에 입회하게 하거나 의견을 진술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
이러한 법률대리인의 선임 및 입회를 제한하기 위해서는 행정절차법 제3조에 따라 ‘국회 또는 지방의회 의결을 거치거나 동의 또는 승인을 받아 행하는 사항’ 등
주요 국가기관의 의사결정으로서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 해당하여야 하는데, 이 진정사건은 이러한 예외 규정이 적용될 여지가 없다.
피진정인은 진정인(변호사)의 발언권을 제한한 데 대하여, ① 2022년 업무매뉴얼에는 조사과정에서 “(성희롱 등)피해자는 출석할 때 변호사 등 대리인을 동반할 수 있고
신뢰관계인이 동석할 수 있으나 이때 신뢰관계인의 진술권은 없다”는 내용이 있어 그에 따른 것이고, ② 변호사의 발언권이 없음을 사전에 고지하였으며, ③ 피해자가 변호사의 도움을 얻어 스스로 진술할 수 있었고,
④ 조사문답서 및 변호사 의견서를 사전에 제출할 수 있도록 하였기 때문에 변호사의 조력권을 침해한 바는 없다고 주장한다. ①과 관련하여 살펴보면, 신뢰관계인이란 ‘연령, 심신의 상태 등을 고려하여,
현저하게 불안 또는 긴장을 느낄 우려가 있는 범죄피해자에 대하여 심리적 안정과 원활한 의사소통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으로, 신뢰관계인의 법적 지식 부족으로 사건의 요건을 파악하지 못하고
오히려 진술의 오염 등을 가져올 수 있기에 신뢰관계인의 진술을 제한하는 취지로 이해된다. 그런데 2022년 업무매뉴얼에서 명시하고 있는 진술권의 제한은 해석상 신뢰관계인에만 해당하는 내용임이 명백하고,
변호사의 진술권까지 제한하는 것으로는 볼 수 없다. 즉 피진정인이 피해자의 법률대리인을 신뢰관계인과 동일시하여 진술을 허용하지 않은 것은 피진정인의 2022년 업무매뉴얼의 해석상 오인에 따른 것으로,
그로 인해 피해자는 적절한 조력을 받을 권리를 침해당하였다고 인정할 수 있다. ②와 관련하여 살펴보면, 피진정인은 사전에 심의위원에서 변호사가 발언할 수 없음을 고지하였으므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나,
단지 사전에 발언권이 없음을 알렸다는 것만으로는 피해자 및 진정인의 기본권 침해가 해소되지 않음은 명확하다. 기본권의 제한은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라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는바, 피진정인 및 피진정학교 성고충심의위원회가 내부적으로 결정하여 안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③과 관련하여 살펴보면, 모든 피해자는 스스로 진술할 수 있지만 법리적인 부분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을 진술하지 않을 권리가 있고 또한 사건의 내용을 정리해서 말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으므로, 법률대리인
으로서 변호사의 참여는 포괄적으로 이루어지며 피해자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방어하는 역할을 하는 조력자의 지위에 있다. 따라서 진정인이 스스로 진술할 수 있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변호사의 조력권은 인정되어야 한다.
다만 이 사건에서는 변호사의 일부 조력을 받아 피해자가 발언한 사실이 있음이 확인된다. 마지막으로 ④와 관련하여 살펴보면, 조사문답서 및 변호사 의견서를 사전에 제출한 것은 피진정학교의 성고충심의위원회
심의의 편의를 위한 것으로 당일 피해자가 진술하였고 그 진술이 명백하게 이 사건의 심의를 위한 여러 증거로 사용되는 경우이므로 당일 현장에서 변호사인 진정인의 조력권은 미리 서면을 제출한 것과는 별개의
문제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면, 피진정인 및 피진정학교 심의위원회는 2022년 업무매뉴얼의 내용을 오인하는 등의 이유로 피해자가 진정인(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와 방어를 할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한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향후 유사한 피해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피진정인 및 피진정학교 성고충 상담원에 대해 직무교육을 실시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