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밭에서
지난 일요일 고추를 따러 밭에 갔습니다.
섭씨 36도를 오르내리는 기온이 좀 누그러질까 싶어 오후 4시에 밭에 갔습니다.
고추를 10분이나 땄나? 주변이 후두둑후두둑 요란해졌습니다. 얼른 따던 고추포대를 들고 창고용으로 쓰는 비닐하우스에 들어갔습니다.
비는 멈출 기색이 없이 더 요란하고 세차게 내렸습니다.
언제 태양이 온 천지를 다 말려버릴 듯이 타올랐나 싶을 정도로 거세게 내리는 비가 고랑에 물을 흐르게 하고, 천지를 질퍽하게 적시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기다려도 비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요즘 고추를 따면 비료포대로 한 포대 정도를 따는데, 집에서 말리기엔 버거운 양입니다.
김제에서 농사를 짓는 누나 집에 건조기가 있어 건조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일요일이 다 가는 시간, 그 때가 아니면 고추를 따서 김제에까지 가지고 갈 시간이 없어 보였습니다.
모자 쓰고, 가슴까지 올라오는 장화 신고, 비료포대 바닥에 물빠짐 구멍을 내고 밭에 나갔습니다.
오랜만에 맞아보는 후련한 비였습니다. 그냥 비가 아니라 모자를 후려치고, 등을 두드리는 거센 비였습니다.
순간적으로 내린 비에 고추밭 고랑이 물길이 되어 흙탕물이 줄줄 흘러갔습니다.
벌레가 구멍을 뚫어 먹은 고추, 성한 고추, 잘못해서 떨어진 풋고추, 가지가 부러져 어쩔 수 없이 따는 암갈색 고추 등을 정신없이 땄습니다.
덥지 않고 시원했지만, 눈앞을 가리는 물줄기와 질퍽거리는 바닥이 불편한 점도 있었습니다.
누군가 지나가면서 봤다면 뭐하는 짓인가 하며 혀를 끌끌 찼을 것입니다.
고추를 다 따고 나니 곧 비가 그쳤습니다.
젖은 몸을 어찌할 수 없어 흙을 씻어내고 김제로 향했습니다.
신기한 것은 완주와 김제 경계를 지나는 순간 길바닥이 바짝 말라 있었고, 김제에 가니 논에 물을 대고 있었습니다.
젖은 몸으로 고추를 물에 비벼 씻고 정리하여 건조기에 넣었습니다.
누나도 고추를 씻어 정리하고 있던 터라 누나네 고추 정리도 한참을 도왔습니다.
우리가 먹을 것이니 더 깨끗이 씻어야 했습니다.
어릴 때에도 부모님께서는 고추농사를 많이 지었습니다.
도시에 살며 땅을 사두셨던 작은아버지 땅까지 빌려 고추농사를 지으셨고,
따온 고추는 항상 물로 깨끗이 씻어 말리곤 하셨습니다.
행여 살충제와 살균제로 줬던 농약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몹쓸 짓이라 생각하셨습니다.
지금처럼 잔류농약 검사니 뭐니 기준도 규제도 없었지만 그분들은 자신들의 신념대로 고추를 따서 씻고 말리곤 하셨습니다.
“2만 5천원에 고추모 50개 사서 한 근에 2만원 하는 고추 한 번에 세 근 씩 따면 겁나게 남는 거지?”라고 누나한테 물었더니, “야야. 자동차 기름값도 안 나오겠다.”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누나는 제가 농사지어 뭔가를 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합니다.
동생이 직장 다니면서 사서 고생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누나들과 형에게는 고추와 저에 대한 기분 좋지 않은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대학을 졸업한 후 노동자 시위에 나갔다가 수배가 떨어지고 결국 잡혀 경찰서 유치장 신세를 졌을 때,
그해 부모님께서 고생하셔서 지은 고추 판 돈 300만원을 변호사비로 훌렁 날렸던 안타깝고 화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저 공부나 하고 있을 줄 알았더니, 덜컥 큰 사고를 치고 원망과 안타까움과 절망의 시간을 보내며 부모님께서는 고추를 따고 씻어 말려 팔았던 것입니다.
제게도 매운 시절이었지만, 특히 부모님과 형제들에겐 맵고도 아린 기억입니다.
지금도 여전하지만 이십대의 저도 충동적이고 우발적인 사람이었던 것을 인정합니다.
맵고 아린 경험치가 쌓여 조금 더 책임감을 갖고 세상일을 대하고 싶어도 불쑥 솟아나는 감정을 쉽게 숨기지 못합니다.
비에 젖은 몸으로 축축하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다시 완주군에 접어드니 비가 내렸습니다.
천둥벌거숭이 같은 저를 다시 만나는 것 같아 부끄러움, 반가움, 자포자기, 후련함 등이 뒤섞여 빗물이 되어 차창에서 흘러내렸습니다.
가슴 속의 더운 김도 누그러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늦은 저녁을 먹는데, 서울과 분당에서 무차별 칼부림이 있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습니다.
잠잠하던 속에서 다시 불길이 솟았습니다.
제가 그 자리에 있었고, 옆에 몽둥이나 옷걸이 행어가 있었다면 그 사람을 후려 갈겨서라도 사람들을 구하는 상상을 했습니다.
아! 그러다가 문제가 생기면 제가 다치거나 고추밭을 다 팔아도 죄를 면하지 못할 수도 있겠고, 가족들이 힘들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묻지마 범죄에 저항하는 저를 상상하다가 가족과 돈과 이래저래 엮인 관계를 생각하게 되는 나이가 되었나봅니다.
젊은 시절 그렇게도 비겁하다고 비난하던 기성세대들과 다를 게 없는 제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성세대였던 부모님께서는 고추를 씻어 깨끗한 고추를 세상에 내놓으시며 자신들의 일에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물론 제게도 그럴 만한 일은 차고도 넘칩니다.
하지만 그런 일들에 대해, 나중에 대해 생각하면서 오늘의 현실에서 놓치고 사는 것들이 있지 않나 생각하면 씁쓸한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항상 그 어딘가를 부유하는 마음들. 안일과 불안함 사이에서 갈등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말갛게 고추를 씻어 나와 남에게 부끄럽지 않은 매콤함을 줄 수는 없는지. 혹은 불같이 화끈하게 타오를 수 있을지.
고추를 따고 비를 맞고 말리러 다니며 생각이 많았던 주말이었습니다.
올해 고추는 잦은 비와 강렬한 땡볕에도 불구하고 색이 좋고 유난히 맵습니다.
가끔씩 무딘 뱃속을 땀나게 후려갈길 만합니다.
'인권누리 뉴스레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권누리 웹진 제123호 인권누리에서 불어오는 인권바람이야기 (0) | 2023.08.18 |
---|---|
인권누리 웹진 제123호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 (0) | 2023.08.18 |
인권누리 웹진 제122호 인권누리에서 불어오는 인권바람이야기 (0) | 2023.08.10 |
인권누리 웹진 제122호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 (0) | 2023.08.10 |
인권누리 웹진 제121호 회원의 붓 (0) | 2023.08.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