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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125) |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의암 손병희 선생 유허지 입니다. 위치는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의암로 234번지에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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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희 선생 유허지는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분인 의암 손병희(1861~1922) 선생이 태어난 곳입니다. 손병희 선생은 1882년 동학에 입문하여 1894년 동학농민혁명 때 충청도와 경상도에서 10만의 교도를 이끌고 관군과 싸웠습니다. 1897년 동학의 3대 교주가 되었습니다. 1901년부터 일본에 머물며 근대문명 수용을 위해 한국 청년들의 유학을 추천하였고, 1904년 진보회를 조직하여 교도들에게 단발령을 내리고 신생활운동을 펼쳤으며, 1905년에는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한 뒤 출판사 보성사를 설립하고, 보성학교와 동덕여학교를 인수하여 교육활동과 문화 활동에 앞장섰습니다. 1908년 교주 자리에서 물러난 손병희는 3.1운동 당시 천도교를 대표하여 독립선언을 주도했다 붙잡혀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습니다. 이듬해인 1920년 병보석으로 풀려났으나 요양 중 병세가 악화되어 1922년 서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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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희 선생의 생가는 조선 철종 12년 4월 8일 손병희 선생님이 태어나서 22세가 되는 고종 19년 동학에 입교하기 전까지 살던 집입니다. 유허지에는 옛 생가의 원형 그대로 유지되어 보존되고 있습니다. 본체에는 주변의 지형에 따라 서향으로 지어졌으며, 가옥 형태는 정면 4칸 측면 11칸 반의 목조 초가집으로 지붕은 우진각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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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허지에는 사당이 있는데,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필두로 조선 독립을 선언한 의암 손병희 선생의 영정을 봉안하고 제사하기 위하여 1994년에 건립한 영당입니다. 유허지에는 3.1운동의 민족대표인 의암 손병희 선생님을 포함한 민족사관을 정립한 단재 신채호 선생님, 의병장 한봉수 선생님 등 독립 운동사에 있어 선도적 역할을 해 온 충청북도의 독립지사들과 민족사관을 정립한 소개 자료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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