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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와 정치하기 |
정관성
“어? 저놈들 또 지*하네!” 뉴스를 보다가 문득 입에서 튀어나간 말이었습니다. “어? 아빠도 욕하시네?” 아빠의 흥분과 욕설을 듣고 아들의 말이 이어졌습니다. 실수를 인정하고 다시 안 하기로 했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욕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평소 했지만, 거짓말쟁이 장관 후보를 두둔하며 자기들 편리한 대로 이말저말 갖다 붙이는 정치인들의 행태에 그만 욕이 나오고 말았습니다. 욕과 거친 말도 하다 보면 느는 습관이란 경험을 하곤 합니다. 중학교 다닐 때, 절대 욕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욕을 하지 않으며 생활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착하고 성실한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더군요. 다른 이유들도 있었겠지만, 말하기를 고치려고 노력하자 친구관계와 사제관계가 좋아지더군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를 하고, 대학에 들어가고, 군대를 갔다 오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서서히 제 입도 거칠어지고 어떤 때엔 남에게 대놓고 욕을 하는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곁에 있지도 않은 누군가를 심하게 욕하는 저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화가 나고, 그 사람이 잘못한 일이 분명히 있음을 알지만, 청소년시절의 다짐과 경험을 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최근에 국정감사가 여러 곳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뉴스에서 보던 장관 후보 청문회와 비슷합니다. 상대방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으려 애를 쓰는지 말을 톡톡 자릅니다. 여야가 서로를 향해 삿대질과 거친 말을 쏟아 냅니다. 가끔은 자기 당을 대표한다는 사람들이 혐오와 차별을 담고 있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그들에게 뭔가를 기대하기보다 그들의 말에 귀를 막고 싶을 지경입니다. “지금 국정감사에 참여하는 여야의원님 모두 존경합니다. 국회의원 되기 정말 어렵습니다. 한 분도 빠짐없이 모두 존경합니다. 근데, 이번 국정감사 너무 살살하시는 거 같습니다. 세게 해 주세요. 세게 해 주실 것을 존경하는 의원님들께 부탁드립니다.”라는 말을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회의 주관하는 위원장이 하는 것을 듣고 참 놀랐습니다. 자기가 국회의원을 존경하는 것은 중요하고, 국정감사에 나와서 대답하는 사람들의 인격은 존중받을 필요가 없는 것일까요? 국정감사는 국회가 정부 및 산하기관을 감사하여 어긋남을 밝히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기 위한 자리입니다. 궁극의 목표는 국민을 위한 행정을 요구하기 위한 자리입니다. 답답한 부분이 있었을 것이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피감기관이 있을 것이고, 여러 번의 지적에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행태에 화가 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비위 사실에 대해 지적하고 근거와 규정을 바탕으로 조목조목 따져야 할 것입니다. 겁박하고 큰소리로 호통치며 다그쳐서 범죄인 신문하듯 하는 게 “국정감사를 세게”하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더 탄탄한 근거에 기반한 “세게”인지, 더 큰 목소리로 호통치는 게 “세게”인지 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정치의 발전은 정치인의 말하기의 발전과 맥을 같이 할 것으로 믿습니다. 자기가 하는 말이 사실에 근거하고,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지고, 자기가 사용하는 말이 국민 전체에 미치는 영향의 무게를 제대로 가늠할 때, 우리의 정치는 성숙한 민주주의를 일궈낼 것입니다. 문득, “날리면” 우화가 생각납니다. “바이든”을 아무리 들어봐도 “날리면”으로 들린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들은 말한 사람의 “말” 보다 말한 사람의 “지위”를 통해 말을 해석합니다. 지독한 문해력 부족입니다. 사회의 소통과 연대는 대화에 바탕을 둡니다. 서로 다른 언어로 서로 다른 의도로 서로 듣지 않으며 양쪽에서 떠들기만 하는 정치가 우리나라 정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냥 아우성을 치며 악을 쓰는 길거리 무뢰한들의 싸움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길거리 무뢰한들도 가끔은 상대방의 말에 수긍하고 깽판을 접을 때도 있지만, 이권과 권력과 명예가 걸린 정치판에서는 이마저도 실종되었습니다. 사회 전체의 행복과 복리는 어디에 있을까요? 거칠어지는 말을 따라하고, 서로 악을 쓰며 싸우는 통에 상대의 장점까지 모두 배척하고, 뉴스를 듣는 사람들을 화나게 하고, 아이들도 따라서 욕하고 싸우는 걸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세상으로 간다면, 사회의 행복과 복리는 어디로 갈까요? 공자님은 오래 전 예(禮)와 악(樂)으로 통치하라고 하셨습니다. 서로 대화하고, 서로 존중하며, 높은 문화적 교류를 하라는 말로 이해합니다. 오늘도 싸우는 정치인들도 어디서 들어봤을 겁니다. 혹은 어디 가서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하는 행동은 정반대이면서 말입니다. 202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기저기서 시끄러운가 봅니다. 올 연말이 되면 세력을 나누고 규합하며 이권을 나눠갖기 위해 모진 다툼을 할 거라고 예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들은 무엇을 위해 그러는 걸까요? 자신들의 말과 자신들의 소통능력을 어찌하고 들이댈까요? 우리는 또 반짝 입술놀림에 놀아나야 할까요? 당선자들을 모아서 한 달만 말하기와 소양 교육을 시키는 것은 어떨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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