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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들" 영화를 관람한 소감 |
전준형(인권누리 운영위원장)
"소년들"이라는 영화를 관람하였다. 영화는 1999년 2월에 발생한 삼례 나라슈퍼 강도 살인사건의 억울한 소년들 이야기를 다뤘다고 엄청나게 홍보하였다. 이 사건의 진실에 대해 나름 알고 있기에 이 억울함을 세상에 맨 처음에 알린 박영희 여사님과 당시 언론 기자인 손우기씨와 백병걸 교수님과 함께 관람을 하였다.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줄여서 삼례사건)은 1999년 2월 6일 새벽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의 나라슈퍼에서 발생한 강도치사 사건이다. 3명의 강도가 당시 잠들어 있던 박 씨와 아내 최 씨, 장모 유 할머니를 위협하여 테이프로 묶은 뒤 금품을 훔치고 달아났는데 이때 77세였던 할머니는 질식사에 이른다. 사건 발생 9일 만에 인근에 살고 있던 19~20살의 청년 3명 임00, 최00, 강00가 잡혔다. 이들은 범행 사실을 자백한 것으로 밝혀져 재판에 회부 되었다. 대법원까지 재판에 갔으나 이들은 최종적으로 3~6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이들은 "조사 과정에서 경찰의 폭행으로 인해 거짓 자백을 했다"고 10년 이상 주장해 왔다. 3명의 소년 중 한 명은 당시에도 현재도 언어나 논리 구사 능력이 매우 낮아서 긴 문장을 쓸 수 없는 정도였다. 1999년 11월 부산지검은 진범이 따로 있다는 제보를 받고 용의자 3명을 검거한 후 자백을 받아낸 뒤 전주지검으로 넘겼으나 2000년에 전주지검 측은 이들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 사건의 진실을 처음으로 알아낸 건 당시 전주교도소 천주교 교화위원으로 일하던 박영희 여사였다. 1999년 여름 당시 복역 중이던 3인조 중 하나인 임00을 상담하는 과정에서 임씨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수사 당시 담당 검사의 이름을 언급했다. 이에 박영희 여사는 해당 검사의 존재를 전주지방검찰청에 물어본 결과 사실임을 알아낸 후, 동료 교화위원과 함께 처음 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완주경찰서를 찾았으나 경찰서 측의 비협조로 무산되어 대신 사건 현장인 나라슈퍼로 가서 피해자들과 주변 주민, 현장에 남은 물건 등을 살펴서 사건을 떠올린 끝에 당시 피해자 유족들을 찾고자 했지만 이들이 이미 이사 간 탓에 찾을 수 없었다. 어렵사리 수소문한 끝에 유족 최00에게 연락하여 6개월 동안 조심히 설득한 끝에 그녀와 함께 전주교도소에서 임00의 목소리를 들으러 간 결과 최씨 측이 기억하는 목소리가 아님을 확인했고, 같은 시기 최씨 측도 부산지방검찰청으로부터 강도 사건으로 빼앗긴 패물 등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고 하자 박영희와 최씨, 동료 교화위원 1명이 부산지검을 찾아 진범의 육성 녹음테이프를 청취한 끝에 최씨로부터 그때의 범인 목소리가 맞다고 소견을 이끌어 냈다. 같은 시기 수감자 3명의 가족들로부터 어렵사리 찾아갔으나 이들은 생활형편이 어려워서 재심청구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박영희 여사는 진범을 수사할 당시의 담당 검사에게 진실을 요구하자 검사 측은 서울에 있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을 찾아가도록 권유했고, 이에 박영희는 서울로 가서 여러 변호사들과 인권단체, 언론사 등을 떠돌았다. 부산지검을 찾아간 후 민변 소속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재심을 청구했는데 교도관들과 동료 교화위원들의 만류 등으로 강00, 임00로부터 관련 서류를 받지 못해 간신히 서류를 갖출 수 있는 최00만 재심했으나 2000년 9월 29일 전주지방법원에서 기각되었고(2000재고합1), 광주고등법원에도 항고했으나 2001년 또 기각당했다.(2000년 12월 10일 MBC <시사매거진 2580>, 2002년 5월 18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각각 잠시나마 다루어진 바 있다. (전북의소리 언론기사 참조)
2016년 1월 말, 자신이 이 사건의 진범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등장했다. 그는 1999년에 무혐의 처분을 받은 용의자 3명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유족 앞에서 사죄하고 자신 대신 무고하게 살인 누명을 뒤집어 쓴 피해자 3명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협력하겠다고 나오면서 상황은 반전되었다. 나머지 진범 중에서 한 명은 2015년 말에 자살하였고 그리고 남은 한 명은 자신의 범죄를 부인하였지만 결국은 2016년 10월 28일 재심에서 3명의 청년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3명의 무고한 청년의 무죄를 처음 입증하고자 나섰던 사람은 "소년들" 영화 속의 황 반장이라는 경찰도, 변호인도 언론인도, 인권단체도 아닌 다름 아닌 전주교도소에서 교화위원으로 활동하던 박영희 여사였다. 박 여사는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임00·최00·강00 등 3명 청년의 무고한 죄를 입증하기 위해 그들의 가족과 피해자 가족을 만나고 경찰서와 검찰·법원 등을 오간 끝에 경찰의 강압적이고 부실한 수사였음을 밝혀냈다. 때문에 "소년들"이라는 영화는 삼례 나라슈퍼 사건에서 소재만 가져왔을 뿐 완전히 허구이며, 영화 속 상상력만이 연출한 작품이다. 영화를 보고 난 뒤 관람한 모두는 입을 모아 이 영화는 삼례라는 지명과 3인조 범인이라는 것 외에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창작한 것에 불과한 것일 뿐임을 확인하였다.
1999년 삼례 나라슈퍼 사건에서 시작하여 2000년 7월 익산택시기사 살인사건, 2002년 9월 금암파출소 경찰관 살인사건에서 전북 경찰과 검찰은 억울한 희생자를 연이어 만들었다. 사건의 진실은 당시 경찰이 잡은 소년들은 모두 억울한 국가폭력의 희생자였다. 삼례에서는 3명의 소년들을, 익산택시기사 사건에서는 10대의 소년을, 금암파출소 사건에서도 3명의 억울한 소년을 피의자로 만들었다. 그들은 피의자가 아니라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의 피해자였다. 그러나 20년 이상이 지난 현재에도 인권침해를 저지른 경찰과 검찰은 제대로 된 사죄를 하지 않았다. 물론 어떠한 징계나 처벌도 받지 않았다.
10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단 한 명의 억울한 희생자를 만들지 말 것을 공권력을 집행하는 이들에게 다시 한번 호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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