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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하나되는 길은 인류를 살리는 길 |
최종수 신부(천주교 전주교구)
주지스님께서 다급히 부르십니다. 보광사 대웅전 앞 하늘에 무지개가 떴습니다. 하나가 아닌 쌍무지개입니다. 어릴 적 무지개를 따라 친구들과 뛰어갔던 쌍무지개였습니다. 여름 하늘에 뜬 무지개가 아니라 쪽빛하늘에 떠 있는 무지개입니다. 회주 형님스님의 배려로 속초 인근 지역 목사님과 교무님, 은퇴 선생님들과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하는 환경운동가들과 양봉농민까지 여러 계층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불교, 원불교, 천주교, 개신교 4대 종단 성직자도 함께 자리했습니다. 11월 11일 하나의 날을 앞당긴 모임이었습니다. 20여명이 보광사 공양간 식탁에 둘러앉았습니다. 하나가 되는 만남은 기적입니다. 먼저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고, 사람들과 하나가 되고, 자연과 하나가 되고, 진리(신)와 하나가 되는 날인 11월 11일을 기념해서 서로의 마음과 삶을 나누고 점심공양을 하는 자리였습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유. 이해와 용서, 화해와 소통을 통한 사랑. 약자와 동행하며 아픔을 치유하는 정의. 닫힌 문을 열고 막힌 담을 허물고 맺힌 한을 푸는 치유와 회복을 통한 상생의 감동감화가 일어나기를 바라는 염원, 그 무엇보다도 자연과 하나가 되는 간절한 염원을 나누었습니다.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 운동하시는 75세 박그림 형님의 고백이 가슴에 긴 여운을 남깁니다. 오늘 아침 무지개를 보자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어디로 달려가야 무지개를 잡을 수 있을까? 무작정 무지개만 보고 내달려 그 자리에 섰습니다. 하늘에 걸린 일곱 빛깔 무지개, 하눌님을 만나러 가는 다리처럼 이어진 쌍무지개를 보며 가슴에 품고 있는 바람을 간절하게 올렸습니다. 설악산 어머니를 아름답게 지켜주시기를! 산양 형제들이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있기를! 설악산 오색케이블카를 취소시켜 주시기를! 이 세상에 사랑과 평화가 가득하기를 빌었습니다.
11월 20일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착공식이 열리고 내년 봄이면 공사가 본격화되면서 나무들이 잘립니다. 산양 형제들이 비명 속에 삶터를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산이 설악산이라고 하면서 왜 침묵하는가? 설악산의 아름다움으로 삶이 풍요로워졌다면 왜 침묵하는가? 산악문학, 예술의 바탕인 산이 병들고 죽어 가는데 왜 침묵하는가? 아이들이 누려야 할 자연유산을 가로채는데 왜 침묵하는가? 설악산을 계단 삼아 히말라야를 올랐다면 왜 침묵하는가? 침묵은 설악산에 대한 권력과 자본의 폭력에 동의하는 것이며 우리들의 삶과 아이들의 미래를 무덤 속으로 몰아넣는 일입니다. 우리들의 삶을 결정하는 존재를 이렇게 함부로 해도 되는가? 마지막 한 그루의 나무가 잘려진 뒤에 후회는 너무 늦습니다.
설악산과 이어지는 모든 생명들이여! 일어서라! 저항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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