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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139) |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익산 미륵산성입니다. 위치는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신용리 산124-1번지에 있습니다.
익산 미륵산성은 둘레 1776m, 높이 2.4m이며, 정상에서 사방으로 능선을 따라 성이 만들어졌고, 그 중 하나는 물 흐르는 곳을 향하여 내려가는데 여기에는 동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성문에는 작은 성을 따로 쌓아 방어에 유리하게 하였으며, 성안에서는 돌화살촉, 포석환 등 기타 유물이 발견되기도 하였습니다. 포곡식 석성으로, 미륵산 정상부와 북쪽 봉우리를 포함해 동쪽 계곡을 에워싸고 있습니다. 익산 지역 11개 성곽 중 규모가 가장 큽니다. 북쪽으로 낭산산성, 동쪽으로 용화 산성과 선인봉 산성, 남쪽으로 익산 토성(사적)과 금마도 토성이 미륵산성을 겹겹이 둘러싼 형태를 지니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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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미륵산성은 원래 기준성(箕準城)·용화산성(龍華山城)이라고도 불렸는데, 미륵산의 옛 이름이 용화산이었기 때문입니다. 고조선 기준왕이 이곳으로 내려와 쌓았다고 해서 ‘기준성’이라고 불렀다는 기록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미륵산성은 축성 연도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지만, 통일신라 이후 《고려사》 《신증동국여지승람》 《세종실록지리지》 《와유록》 등 시대마다 문헌에 등장하며 그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고 합니다. 익산의 방어진지로 북쪽으로 논산과 부여, 서쪽의 금강, 남쪽으로는 멀리 김제·전주까지 넓은 지역을 조망할 수 있습니다. 세 갈래 어느 방향이든 미륵산(430m) 정상으로 갈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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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미륵산성은 1973년 6월 23일 전라북도기념물 제1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익산 지역은 5세기 중엽부터 백제 지방의 중심세력이었고 7세기를 전후하여 금강변의 웅포지역보다 내륙에 위치한 금마 지역을 중심으로 백제 문화의 꽃을 피웠습니다. 익산미륵산성은 기준왕이 도읍하였다기 보다는 마한의 여러 나라 중의 하나가 이곳을 중심으로 세력을 누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산성도 그때부터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다만 고려초에 전주를 근거로 할거하였던 후백제의 신검이 부왕 견훤을 쫓았을 때 고려 태조가 이를 토정(討征)하여 마성(馬城)에서 신검의 항복을 받았다고 하는 그 마성이 바로 이 미륵산성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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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신앙의 중심은 미륵(Maitreya)입니다. 원래 ‘친구’를 뜻하는 미트라(mitra)로부터 파생된 마이트레야는 자비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한자문화권에서는 미륵보살을 자씨보살(慈氏菩薩)이라고도 불러왔습니다. 미래불 미륵은 석가모니불이 구제할 수 없었던 중생들을 남김없이 구제한다는 대승적 자비 사상을 근거로 출현하였습니다. 미륵신앙은 백제, 신라의 국가통치이념으로 응용되었고, 특히 역사의 변혁기에는 미륵불이 도래하여 고통받는 민중의 구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기를 기대하는 신앙 운동이었습니다. 미륵산성, 미륵사지 등 익산의 유적지는 만백성의 행복과 평등을 구현하고자 하는 미륵 사상이 남아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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