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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에서 생긴 일 |
정관성
10월 하순에 핀란드로 출장을 갔습니다. 10월 22일에 출발해서 31일에 왔으니, 한 달의 3분의 1을 객지에서 보냈습니다.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숙소에서 취사가 가능하다는 말에 시골 아재답게 햇반 7개, 라면 10개, 참치 2캔, 돌김 자반 2봉지, 자르지 않은 김 1봉지, 김치 약 500g 등을 알뜰히 챙겨 갔습니다. 준비한 것들은 객지에서의 매일 아침 식사와 일부 저녁을 책임져 주었습니다. 같이 간 직장 후배들의 아침을 챙겨주며 뿌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핀란드의 도서관, 문해력 증진 기관, 헬싱키도서전, 대형 서점 등을 다니며 나름 소중한 시간을 잘게 썼습니다. 발트해에 연한 핀란드는 대체로 구름이 두껍게 하늘을 덮었고, 바람이 차가운 날도 있었고, 눈이 오는 날도 있었습니다. 손이 시려 잡화점에서 장갑을 서서 끼고 다녔지만, 얼굴이 따가운 것을 대비하여 로션을 준비하지 못한 맹점이 있었습니다. 출장 막바지에 장갑을 샀던 잡화점에 가서 로션을 찾았습니다. 구글 번역기로 번역하며 이것저것 둘러보니 “사워”라는 말과 “건성피부”라는 말이 적힌 로션 같아 보이는 화장품이 있었고, 비교적 가격도 싸서 숙소로 샀습니다. 다음날, 아침 샤워를 한 후에 촉촉한 상태에서 로션을 짜서 얼굴에 발랐습니다. 약간 따갑긴 했는데, 출장 중 피부가 거칠어져서 로션에 닿자 예전 알콜 성분 많던 스킨로션처럼 따가운 정도로 생각하고 외출했습니다. 밖에서 돌아다니는 중에는 얼굴이 추운 건지 따가운 건지 약간 불편한 상황이 계속되었습니다.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나니, 얼굴이 더 따가웠습니다.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아침에 바른 로션을 자세히 보기 시작했습니다 뒤에 적힌 자잘한 글씨는 성분이 여러 가지 적혀 있었고, 로션 이름과 그 아래 적인 단어의 열거는 샤워 후 건성 피부에 바르라는 말이 아니라 건성피부에 적합한 샤워용품이라는 말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부를 짜서 물에 비벼보니 거품이 엄청나게 일어났습니다. 아뿔사! 샤워용 물비누를 샤워 후 바르는 크림으로 여겼던 생각이 크게 틀렸던 걸 알게 되었습니다. 무척이나 부끄러웠고, 답답한 시골 아재의 초라한 모습에 한심하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정신적인 충격보다 피부에 더 있었습니다. 얼굴에 스며들었던 물비누는 피부 각질을 일으켜 얼굴 피부가 버짐처럼 들고 있어났습니다. 다행히 출장 막바지 일정이어서 다시 로션을 사서 바르고 다녔지만, 인천공항에서 내릴 때의 피부 몰골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얼굴에서 각질이 벗겨지는데, 로션으로 잠재우는 건 한계가 있었습니다. 매우 거칠고 검게 변한 얼굴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집에서 애들 엄마가 마사지하기 전 각질 제거할 때 바른다는 뭔가를 바르고 살살 조심스럽게 문지르고 씻어내기를 이틀이나 하고 나서 피부는 잠잠해졌습니다. 무시하게도 화학적 요법으로 얼굴 피부 한 겹을 벗겨낸 것입니다.
아무리 문명이 발달한 세상이고, 구글 번역기가 똑똑하다고 해도, 그걸 적응하고 이용하는 사람의 잠깐 실수가 큰 고생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심지어 문해력 향상을 위한 선진국의 노력을 보고 우리도 문해력을 향상시켜야 한다며 갔던 출장에서 철저하게 문해력 부족을 이유로 낭패를 봤던 것입니다. 그래서 더 무참한 심정이었습니다.
문해력은 참 다양한 영역에서 다양한 능력을 요구합니다. 한글을 읽을 줄 안다고 해서 문해력을 갖췄다고 할 수 없습니다. 조금만 긴 문장을 대하면 글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문해력의 부족이지만, 디지털 문해력의 경우에는 회원가입, 사용법, 의견 전달 등이 어려운 현실입니다. 오히려 글씨를 잘 읽지 못해도 귀신같이 뭔가를 찾아 자기 편한 것을 골라 보는 아이들을 보며 감탄하기도 합니다. 음식점과 커피숍의 주문은 키오스크와 태블릿으로 대체되고 있어, 주문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갈수록 문해력에 어려움을 겪는 세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나마 우리는 열심히 오류를 수정하며 배우고 있습니다.
심각한 문제는 한심하기 그지없는 위정자들의 문해력입니다. 김포시와 서울시를 통합하여 메가시티를 만든다면서 지역의 균형적인 발전을 이야기합니다. 가진 자들의 세금을 깎아 주면서 민생을 걱정한다고 하던 것과 같습니다. 국가 연구개발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겠다고도 했습니다. 미국에 올인하고, 일본에 굽실거리며 다양한 나라와 외교적 성과를 높이겠다고도 했습니다. 이쯤 되면, 위정자들의 문해력에 비해 시골 아재가 핀란드 가서 “사워”와 “건성 피부”를 읽고 물비누를 샤워 후 얼굴에 바른 일은 대단한 문해력일 수도 있겠다고 우겨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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